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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훈 Aug 06. 2024

유도등은 죄가 없다

    불이야! 불이야!


    건물에 화재 발생, 또는 건물에 피뢰침을 통해 번개를 맞았다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형광등이 꺼진 어두컴컴한 건물에서 지상으로 나올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방법은 유도등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다. 유도등은 종류와 크기도 다양하다. 그중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유도등은, 복도통로 유도등, 계단통로 유도등, 피난구 유도등이 있다. 화재가 발생해서 차단기가 내려가면 전기로 켜져 있는 유도등이 꺼지면 소용없는 것 아닌가?

 

    화재 발생으로, 전기 차단기가 내려갔을 때도 유도등은 작동되어야 한다. 유도등을 열어보면 ‘예비전원’ 건전지 모양의 배터리가 있는데 이 배터리가, 차단기가 내려갔을 때도 환하게 유도등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건물의 소방점검을 하면 자주 불량상태가 되는 것은 배터리가 다 닳아서 유도등 불이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교체 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으면 그자리에서 바로 바꾸어 준다.


    그날도 평범한 소방점검 날이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유도등이 불량상태인 것을 확인하고 준비된 자재를 가지러 차로 가는 길에 1층의 유도등이 몇 개가 파손되어 있고, 심지어는 1층 술집의 통유리가 깨져있는 다소 황당한 광경을 보았다.

    

    곧 옆 상가의 부동산 아저씨께서 "어제 새벽에 젊은 사람들끼리 싸움이 났고 경찰분들이 왔다 가고 구급차가 오고, 시끌벅적한 새벽이었다. 술이 문제다." 며 혀를 차셨다. 나는 속으로 ‘유도등은 왜 부신건지… 일만 더 늘었다…’ 며 피곤해했다.

    

    젊은이들의 싸움 이외에도 유도등 파손은 종종 있는 일이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복도통로 유도등, 계단통로 유도등은 참 그 위치가 시원하게 걷어차기 딱 좋은 위치에 있다. 위기상황에 시민들을 지상, 건물 밖으로 안내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가끔 속상한 사람들, 술에 취한 사람들에게로부터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 그 임무 참 막중하다.

 

    살다 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당장 생각나는 건, 처음 간 미용실에서 비싼 돈 줬지만 내 머리를 빙구 머리로 만들어 놨을 때. 캠핑을 가려고 짐을 다 챙겨놓고 세시간 거리에 도착했지만 중요한 물건들은 모두 놓고 왔을 때. 인기 많은 영화표를 예매해놓고 영화관에 도착했는데 어제 날짜로 예약돼 있을 때. 이런 상황일 때마다 유도등을 걷어차면, 유도등을 만들어 파는 사장님들은 즐겁겠지만, 유도등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의 발도 다칠 수 있다. 심호흡을 하고 박수 두 번 크게 치고 ‘오히려 좋아’ 하며 다가올 역경과 고난을 즐겁게 맞아보자. 유도등이 여러분의 앞길을 환하게 비춰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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