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왜 그래 또
“우리얘기좀해” 보다 더 무서운 “우리 얘기 좀 해” 띄어쓰기가 두 칸, 세 칸씩이면 더 무섭다. 생각해 내야 한다.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지난 한 시간 동안 내가 잘못한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 아니 지난 일주일 동안 아니 지난 한 달간…!
그녀가 아닌데도, 내가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길거리를 걷고 있으면 뜬금없이 내게 다가와 이야기 좀 하자는 분들이 종종 있다. 적은 날에는 한 팀, 많은 날에는 세 팀까지 받아봤다. 차갑지만 따뜻한 나의 매력을 알아보신 것인지 아니면 조금은 만만상(‘만만하게 생겼다.’의 준말.)처럼 생겨서 말 걸기 쉽게 생겨서 그런 건지.
처음에는, 그러니까 스무 살 적에는 얘기 좀 하자 하면 이게 뭔 일인가 싶어서 이야기하자는 대로 다 해줬다. ‘대학교 과제를 하고 있어서요’, ‘시민들 투표를 받고 있어서요’, ‘공부를 하고 있는 게 있어서요’, 결국은 카페에 나란히 앉아야 하고 내 증조 뻘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게 그들의 패턴이었다. 시골 대구 촌놈이라고 하더라도 번화가에 나갈 때라면 이들을 대적하는 방법 정도는 알고 돌아다녀야 한다.
무시 – 정면을 응시하면서 걷고 있을 때도 그렇지만, 개미를 죽이지 않기 위해 땅바닥 블록 모양을 구경하면서 걷는데도 불구하고 정면 대각선 어디쯤부터 강렬한 시선이 느껴진다. 절대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말고 뚜 벅 뚜 벅 당찬 걸음으로 가던 길 가시라. 혹여나 정말 당신에게 관심이 있어서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이성일 수도 있겠으나, 그런 일은 우리네 인생에 없다.(나는 그딴 거 없었다.)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운 날씨에 나와 고생한다 싶어 가끔은 그들도 안타까워 보일 때가 있어 마지노선의 인사를 하는 방법 - “아니요ㅎㅎ괜찮습니다.” 보통은 아니요 괜찮습니다. 하면 괜찮은 줄 알고 그런갑다 떠나가야 하는데, 나는 그래도 응답을 해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에 괜찮다고 한 건데, 그들은 보통 ‘어 얘 대답해 주는 물렁물렁한 사람이다!’ 하고 더 덤벼든다. 그때는 “죄송합니다ㅎㅎ”라고 두 눈을 쳐다보며 –끝- 하듯 해야 한다.
나는 사람이 착해서 보통 2번의 방법을 사용한다. 사용하면서도 ‘내가 뭔 죄송.. 나 뭐 잘못한 거 있나..?’
지난주 일요일에는 또 나의 도화살 때문에 대화 좀 하자는 팀이 두 팀이나 지나가는 흔한 날이었다. 교보문고에 다다를 때쯤 한 팀이 더 다가왔다.
“저기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괜찮습니다ㅎㅎ”
“아유 우리 뭐 이야기 많이 안 할 건데ㅎㅎ 종교 있어요?”
(눈을 정확히 보며)“죄송합니다ㅎㅎㅎ”
“아유 우리가 뭐 잡아먹나ㅎㅎ잠깐 이야기 좀 해요~”
2번의 방법을 멋지게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거머리 같은 사람이 걸렸다. 이럴 땐 그냥 1번의 방법 – 무시로 지나쳐 가야 한다. 근데 세 번째 팀(보통 한 팀이 두 명이다.)의 행동파께서 선을 점점 넘기 시작했다. 팔을 잡아 끈다던지. 유유히 떠나는 내 뒤에다 대고 “아 거참 비싸게 구네!”라고 한다던지. 하지만 내가 누군가? 유도력이 6년이고 단증으로 친다면 4단에 가까운 나의 실력인데! 나는 잡힌 도복을 뜯어내듯 아주 멋지게 팔을 뿌리치고 약간 비웃으며(ㅋㅋ) 유유히 떠나갔다. 교보문고에서는 사려고 했던 김승옥 님의 ‘무진기행’을 찾으며 ‘팔을 뿌리치고 떠나갈게 아니라 죽빵을 털어서 이빨 몇 개 우수수시켜야 했나.’ 따위의 허세 가득 담긴 후회 같은 것을 했다.
군인 시절 썼던 일기가 생각이 났다. 의경 출신이라 한 달에 몇 번 외출(09:00~18:00)을 보내주는데 그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6.12.07. 수
며칠 전에 외출 때 갑자기 부대에서 ‘출동 대기 상태로 바뀌었으니 얼른 복귀하세요!!!’ 한 적이 있었다. 거지 같은 군대 생활...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적당히 늙어 보이는 아줌마와(이 사람은 나이 들어 보이는 것에 비해 얼굴에 검버섯이 있었고 피부도 엄청 별로였다. 화장층이 두꺼워 보였다.) 젊어 보이지 않는 아들(?) 둘이서 내게 근처에 228 공원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한일극장 앞이었는데... 이때 듣고 있던 노래가 끊겨서 약간 세미 빡침 상태였다. 듣고 있었던 노래는 ‘치즈’의 ‘어떻게 생각해’였다. 개가 한참 나한테 어떻게 생각하냐면서 쪼듯이 노래 불러 주고 있었는데... “이 길로 조금만 앞으로 더 가시면 돼요” 그럼 그 근처에 유명한 떡볶이 집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본인도 잘 안 돌아다녀봐서 모른다고 했더니 그럼 대구에 볼만한 것이나 여행할 만한 곳이 없냐고 물어왔다. 여행 같은 거 잘 안 해봐서 모른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남자가 “젊은 사람이 그런 걸 모르면 누가 아냐” 며 핀잔을 줬다. 그냥 아... 네... 하하 하고 속으론 너넨 서울 살면서 서울여행도 해가면서 사냐? 안 그래도 복귀해야 해서 짜증나 죽겠는데 씩씩. 그러고 가려는데 아줌마가 내 눈이 너무 매서워서 주변 사람들을 다 잡아먹겠다며 웃으면서 다니라고 했다. 뭔 전개야 싶어서 멀뚱멀뚱 있었더니 자기는 지금은 그 일을 하지는 않지만 점쟁이(?) 였다고 했다. “미간이...(눈썹 사이라고 했나? 잘 모르겠다.) 고집이 엄청 세네. 그리고 좀 웃고 다녀요. 엄마한테도 잘하고.” 이때 이만한 효자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라고 생각했다. “스물하나 정도 돼 보이는데?” 하길래 나는 홀린 것처럼 “스물두 살이요.” 했다. “스물두 살? 돼지띠네. 돼지띠가 자기 연애가 그렇게 잘 안되는데.” 했다. 이때까지 곳곳에 분배되어 있던 세미빡침들이 모여 개빡쳐가지곤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 낯선 사람은 늘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