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빛과 어둠 - 01
재희네는 우리에게 첫 ‘가족끼리 친구’이다. 이솔이가 두 돌쯤 되었을 때, 아내는 양재동 집 앞의 놀이터 에 갔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재희와 재희 엄마를 만났다. 사실 아내가 적극적인 대시(?)를 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처형(아내의 언니)이 적극적으로 주선을 해준 덕에 서로 만나게 되었다. 만남은 살짝 어색했어도 와이프는 육아 친구가 필요했고, 이솔이는 나이는 어리지만 나름 사회생활을 같이 해볼 친구도 필요했으며, 무엇보다 재희 엄마와 아내가 서로 생각이 잘 맞았다. (아이끼리만큼이나 엄마/아빠들끼리 잘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두 가족은 가까워지고, 그 뒤로는 우리 아빠들도 함께해서 가족 모두가 과천 동물원도 다녀오고 했다.
그랬던 두 가족이 떨어지게 된 것은 나의 이직이 컸다. 나는 2020년 송도 쪽 회사로 이직을 했고, 내 독립 기간까지 치면 거의 10년 동안 살았던 양재동을 떠나야 했다. ‘거리가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고 누가 그랬던가. 마음이 멀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가깝게 살았던 시기보다 확실히 덜 만나게 되었다.
7월 28일은 오랜만에 두 엄마와 아기가 만나는 자리였다. 오전 내내 ‘예술의 전당’에서 시간을 보낸 두 팀에, 강남쪽에서 치과를 갔다와야 했던 내가 합류했다. 일단 두 가족들은 조금은 이르지만 배도 고프고 해서, 재희네 집과 가까운 좋은 양재동 ‘소호정’에 갔다. 소호정은 정말 오랜만이였는데, 오랜만이라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무척이나 맛있었다. 이제는 어린이 티가 나는 아이들도 국수 국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사실 그날 하루의 일정은 그때 모두 끝났다. 우리는 각자 집에 가려다, 아이들이 ‘그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하여 그 놀이터로 갔다. 그러니까,
사실 그곳에 간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이솔이는 틈 만나면 자기가 우주에서 왔고, 부처님 곁에서 놀다가 우리에게 왔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 말과 상관없더라도, 우리의 아이들이 부처님, 그리고 예수님과의 함께 있을 때 뛰어놀던 곳이 ‘놀이터’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러니 수많은 인연과 우연들을 거쳐 우리가 ‘구룡사와 포이동 성당 사이의 놀이터’에 2023년 7월 28일에 잠시 스쳐 지나가기로 '결정'되어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절과 성당으로 진입한 위치는 구룡사가 왼쪽, 포이동 성당이 오른쪽에 위치한 길이었다. 개인적으론 이쪽 방향이 반대 방향보다 예쁜 방향이었다.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 구룡사와 예수님을 모시는 포이동 성당이 길 하나를 마주 보고 있는 곳이, 분명 세계 어딘가에는 또 있겠지만, 어쨋든 이 지구의 일부분만을 볼 수 있는 나에게는 다툼과 시기, 폭력과 미움만이 전부인 세계에 잘못 생성된 '틈' 같이 느껴졌다. 부처님과 예수님을 함께 볼 수 있는, '신들을 엿볼 수 있는 세계의 틈'말이다.
그리고 이곳에 두 종교가 위치함을 넘어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점은, 두 성스러운 장소는 맞이웃의 기념일이 되면 – ‘부처님 오신 날’이 되거나, ‘크리스마스’ 되거나 하면- 빠짐없이 상대의 종교를 존중하고 함께 축하해 주는 플래카드가 걸린다. 예를 들면 포이동 성당 앞에 초파일 근처가 되면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합니다 ’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식이다. 나는 그렇게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고 배려하는 것이 쪽이 더 좋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힘의 우위를 논하는 것보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협력을 우선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신비한 공간에 들어서서, 우리는 길에서 왼쪽으로 들어갔다. 왼쪽 계단으로 몇 계단을 오르자 놀이터가 나타났다. 이솔이와 재희가 일주일에 1~3번씩 놀던 바로 그 놀이다. 앗, 그런데 놀이터가 좀 달라졌다. 놀이터가 리모델링된 거 같았는데, 디자인이 약간씩 바뀐 것 말고는 전체적으로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앞뒤로의 절과 성당과 좀 더 잘 어울리게 디자인된 것 같았다.
자꾸만 아빠를 부르는 이솔이를 위해 약 5분 간 열심히 놀아주고, 이후에는 이솔이랑 재희랑 놀게 했다. 두 만 5세 아이들은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오랜 친구답게 금방 친해져서 신나서 함께 놀았다. 그 사이에 엄마들과 나도 이야기를 좀 했고, 또 그 후에 재희 아빠도 놀이터에 퇴근하고 왔다. 재희 아빠는 꽤나 지쳐 보였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회사에서 많이 힘들다고 하다고 한다. ‘회사에서 힘들어서 육아휴직까지 쓴’ 나는 그 마음을 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석양은 이미 1시간 전쯤 넘어가 있었다. 그네 근처에 네모로 모여 앉은 우리는 하늘이라는 뚜껑 아래 마치 7월 말의 더운 공기로 쪄지고 있는 만두 들이 된 듯한 기분이었지만,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야”라고 하자 예상했듯 계속해서 더 놀고 싶다고 하는 두 아이였다. 하지만 재희 아빠도 저녁을 안 드셨고 피곤하기 때문에 얼른 집에 가야 한다는 말에 두 아이는 더 이상 보채기를 그쳤다. 이제 안녕하라는, 작별인사를 하라는 말에 두 아이는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봤다. 안녕 하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일까? 오랫동안 못 볼 테니 서로 인사하라는 말도 별로 이해가 되지는 않아 보였다. 두 아이는 주변 어른들의 보챔에 못내 잠깐 서로 안아주고는 1분만에 인사를 끝냈다. 그 모습을 보고 문득 깨달았다.
그렇다. 슬픈 작별이 아니라면, 작별 인사는 길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다. 마치, 절과 성당 사이에 있는, 마법의 놀이터 같은 데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어느 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