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글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종군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명언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피사체에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과 2004년 올림푸스 광고의 슬로건인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를 섞어 놓은, 어디서 본 듯한 이 문구는... 사실 내가 만들었다. 비록 '글쓰기 실력을 높이기 위해선 기록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생각보다 평범한 주장을 표현하기에 다소 억지로 붙여놓은 감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평가절하만 하기엔 꽤나 절묘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이 두 문장이 합쳐지게 된 이유에 대해 나의 경험을 되짚어가며 이야기해 보겠다.
2023년 7월
나는 최근 거의 몇 년만에 나 자신과 관련된 글을 많이 보고, 많이 썼다. 특히 현대자동차가 주최한 ‘포니와 함께 한 시간’ 공모전은, 비록 공모전에서 수상되진 않았만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에 비해 훨씬 자유스럽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공모전은 나 자신이 스토리텔러로서 어느 정도 재능이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지할 수 있게 된 효시였다. (사실 이런 말하면 부끄럽지만 내 글은 발표 당일까지도 '솔직히 이 정도의 스토리와 이 정도 글 이면 대상은 나 아닐까?’하는 자뻑을 할 만큼 괜찮은 글이었다. 하지만 대상은 이름이 '포니'이신 분이었다. 사람 이름이 '포니'인데 어떻게 이기나.) 그리고 단순히 재능 있다는 점을 넘어, 9월 중순 캐나다 밴쿠버로의 이주를 앞두고 있는 나는 과거의 나의 유물들을 정리하며 나의 과거에는 단순히 글만을 넘어, 생각보다 꽤나 많은 기록을 충분히 남겨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8~2009년
최근 과거의 내 행적을 되짚으면서, 2023년 9월 현재 서비스 종료 중인 블로그 플랫폼 ‘이글루스’에 2008년부터 2009년까지 62개의 글이 써져 있음을 발견했다. 2009년은, 전체적으로 우울함이 더 많았던 내 인생에서도 빛나는 날들이 꽤 많았던 시간이다. 이 시기는 내가 상업 영화 연출부로 일하기도 했고, 이제 1년 동안 동거했던 선배 형과 자취를 끝마치기도 하고, 첫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두 번째 여자 친구를 만나는 등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이 당시의 글들은 지금 오글클에 쓰는 글처럼 목적을 분명히 하고 효용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구조화를 시켜서 쓰는 글들은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의 ‘감정 총량’이 넘쳐나서 ‘기록이라는 쿨 다운’ 행위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때 글들은 20대 중반이거나, 연애 중인 사람들의 풍부한 감수성으로, 지금의 나는 솔직히 따라 하기도 힘들 정도의 '감수성 터지는' 묘사력이 심심치 않게 나오기도 한다. 그중 한 편을 수정 없이 여기에 올려본다. 제목은 날짜만 적혀있지만, 내 생의 두 번째 여자친구와 마음이 통함을 발견했을 때를 일종의 산문시로 기록한 것이다. (다만 나는 이게 산문시의 형태 같은것부터 먼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2009. 06. 06
이상한 일
우리가 아닌 그렇다고 그들도 아닌 그 자리에
잠깐, 대신했던 그 순간에
네 눈동자를 흩던 나와
내 입술을 바라보던 너 사이에
그것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착각은
짧은 순간이었건만
모든 사람이 쳐다보고 있던 그 자리가
오히려 진실로 두 사람만의 공간이라고 생각되어짐에
내 가슴은 심차게 뛰고 있었고
행여나 그런 내 마음이 들킬까 가슴을 졸였다
이제는 어쩌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타인과의 만남이건만
또한 만남이란 것은 항상 시작이라는 선물을 내게 안겨준다
너의 매력은 꼭 남자가 아니라도 알 수 있기에
모든 사람이 너를 사랑할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너를 사랑하되
모든 사람이 너를 사랑하듯 할 것이다
이제 헤어짐이란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나이인지
만남이 시작되자마자 서로에게 남은 시간들을 헤아려본다
그리고 나는 그저
너와 함께 할 시간이 어느 시절의 한 순간 끌림으로 단축되지 않기를
스스로 기대할 뿐이다
2017~2018년
이 당시는 거의 200개가 넘는 글을 썼다. 이 기간 동안은 내 우울증이 매우 심할 때라 대부분이 아픔을 호소하는 글이 많다. 하지만, 일단 슈팅 숫자가 많으면 골을 넣을 확률이 높아지듯이(...), 일단 글의 양이 많다 보니 그것들 중에 괜찮은 글들이 하나씩 나오기도 했다. 그중 몇몇 글들을 공유해 보겠다.
2019/01/25 – 극한 직업을 보고
일을 마치고 나니 너무나 집에 가기 싫었다.
마음을 달래러 극한직업이라는 코미디 영화를 봤다. ‘열심히 웃어주지!’라고 다짐하고 갔지만,
우울한 마음에 코미디를 보는 것이 극한직업이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기가 힘들었고, 결국 집에 와서는 작은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가 어렵다. 내가 너무나 못나 보인다. 나의 한계가 나를 무너뜨린다.
그런 날, 우울이라는 계절이 다시 나를 찾아온다. 그런 계절이 왔음을 몸이 느낀다.
어떻게든 컨트롤 해보려고 무의식적으로라도 애쓰겠지.
그러다 더 악화되지나 말아야 할 텐데,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서 더 피곤하다...
2017/05/28 - 인간관계
요즘엔 그래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기존에 알던 사람들부터 새로운 사람들까지 지금껏 닫아왔던 인간관계의 폭을 조금씩 넓히려고 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에 극도의 불안감을 갖고 있었던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어쨌든 내 상태가 조금은 나아졌고, 사람들과 대면해 볼 만큼의 에너지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 인간관계에, 내게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사실 잘 알 수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주로 사회적인 네트워킹을 위해서 또는 나 자신의 재미를 찾기 위해서, 만나서 같이 놀고 수다를 떨고 맥주를 마시고 하고 있지만, 만남 뒤에는 이 행위의 내부는 어쩐지 텅 비어있는 것 같다. 애초에 이런 정도의 관계가, 어느 정도나 내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관계들인지 모르겠다.
나는 누군가와 재밌게 놀고 싶기도 하고, 또한 누군가와 깊이 마음을 나누고 싶다.
하지만 같이 놀고 싶다는 이유로, 마음을 깊이 나누고 싶다는 이유로도 나를 찾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뭐, 사실 내가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지.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가 단지 재미로만 이루어져 있진 않잖아.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하루의 작은 조각을 공유하며 유대감을 느끼는 관계도 있는데, 내 주변에서는 그 러한 그림이 보이질 않는다.
다가오지 안는다면 먼저 다가가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내가 먼저 다가간다. 그런데 결국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인지,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 뒤로 나를 찾질 않는다. 그들도 나처럼 '누군가 나에게 찾아와주길 바라는' 사람들이라서 내게 다가오지 않는 것일까?
혹, 나란 사람은 그들에게 '필요하지 않 은 존재' 이기 때문일까? 그런 면에서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되고자 하는 이유 자체가 '좋은 교육자'라는 건전한 목표와는 좀 다른 것 같긴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가 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해서 먼저 다가와 주면 좋겠다는 다소 개인적인 이유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게 어쩐지 좀 정당한 이유 같진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어떤 것을 원할 때 무척이나 개인적인 목표로 움직이는 것 같더라. 나도 좀 그런 걸 추구해서는 안 되는 건 아니잖아.
약간 말이 다른 곳으로 샜는데, 어쨌든 최근의 인간관계는 참 피상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누군가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그것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사람들에게 필요가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지금은 이사 중이라서 원본 글을 찾을 수가 없는데, 내 졸업영화 <그녀의 메모>의 근원은 어떤 글쓰기 수업에서 했던 1Page 짜리 짧은 이야기였다. 사실 내가 졸업 영화 컨펌을 위해 약 5개월간 공들여 쓰던 시나리오는 굉장히 우울한 내용이었고, 그다지 특별한 주제의식도 없어서 교수님께 자꾸 거절을 당하고 있던 차였다. 서랍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 1Page 이야기는, 기존 시나리오를 쓰레기통에 보내 버리고 3일을 밤샌 끝에 만들어진 시나리오고, 나는 이 이야기로 3명의 교수님들의 컨펌을 통과하고 영화 제작도 원하던 시간 내에 끝내어 그 해의 과내 영화제에서 ‘실사영화상’ 수상을 받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이 영화는 내가 5개월 동안 끙끙거리며 써 내려간 시나리오가 아닌, 다른 어떤 '글쓰기 수업에서 대충 써낸 1페이지의 이야기'로 졸업 영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나에겐 이것이 '기록은 힘'이란 신앙적 고백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다시, 2023년 9월 -
나는 요즘 글을 쓰는 것이 행복하다. 비록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쓰는데 어려움을 주었지만, 이 정도는 내가 겪어온 우울의 아픔과 비교하면 아주 행복한 아픔일 뿐이다. 그만큼 나는 이 글쓰기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이 '즐거움'은 내가 어느 정도 글을 ‘잘 쓰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으로 내가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었을까?
대답은 무척 뻔한 말이다. 어느 길에도, 왕도는 정도가 왕도이다. 재능이란, 숫적으로 말하면 적어도 지구의 모든 인구수를 지나 맨 앞에 가게서 설 수 있는 특수한 능력과 직업(e.g. 프로스포츠 선수 등)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재능은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보통 이상의 실력을 갖게 된다. 그러니 당신 자신의 글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본인이 과연 얼마만큼 많은 기록(글)을 해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글쓰기 세계에 있는 모든 여러분, 우리 짧아도 좋으니 글을 쓰자. 하루에 무엇을 했는지 간단하게라도 써보고, 가능하다면 긴 글도 써보고 또 여러 사람에게 피드백도 받자. 왜냐하면,
"당신이 충분히 기록했다면,
당신의 글은 만족할만한 수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