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캐니 Nov 06. 2020

오늘의 엄마 이야기(20.11.5.)

가장 쉬운 효도, 날로 먹는 효도

오늘은 목요일! 아파트 알뜰시장이 들어오는 날이다.


무엇보다 아이들도 엄마도 신나는 것은 타코야끼, 닭강정, 떡갈비 같은 간식거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배달이 흔한 시대에 도리어 나가서  먹는 것이 불편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날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파트 단지에 나가 작은 포장마차 앞에서 예진이와 승규의 손을 잡고 줄을 서서 기다려 따끈한 타코야끼를 받아 들면서 코끝으로  달짝지근하고 뜨끈한 소스 냄새를 맡으며 집에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재미난 지, 치킨팝을 먹을까 콜팝을 먹을까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는게 얼마나 웃긴지, 생선을 무심하게 툭툭 토막내는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란 아이들의 모습 등 소소한 재미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승규는 타코야끼 집 사장님이 되는 게 장래희망이다.

타코야끼를 뜨거운 불판 위에서 리드미컬하게 빙글빙글 돌리는 그 손짓이 꽤나 멋있어 보이는지 보면서 언제나 감탄하고 감탄한다.

사장님 부부는 늘 그런 승규를 매주 알은척하시며 말린 문어를 듬뿍 얹어주신다.


집에 돌아오면 의기양양하게 시장 봐온 것들을 식탁 위에 턱 하고 펼쳐둔다.

엄마도 같이 신이 나신다.

엄마도 달달하고 짭짤한 타코야끼를 좋아하시고, 떡볶이나 순대, 어묵 같은 분식도 좋아하신다.  

다 같이 와구와구 먹으며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어쩔 땐 마치 행복한 드라마의 한 장면 속에 내가 들어있는 느낌도 난다.




하지만 한편으로 좀 찝찝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사실이다.

엄마는 사실 비만이기 때문이다.

키는 155 정도인데 몸무게는 거의 80킬로그램 정도 나가신다.

아프시기 전에도 살집은 있으셨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살이 찌셨다.


가끔 만나는 친척들은 엄마의 몸무게 관리를 해주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하신다.

그런 잔소리는 신기하게도 주로 고모들의 몫이다.

역시 '시누이'라는 자리는 그런 자리인가 보다 하고 애정이 1도 섞이지 않았음을 생각하고 귓등으로 듣지 않았으나, 점점 살이 찌는 게 이젠 정말 내 눈으로도 보이니 걱정이 되긴 했다.


엄마는 5~6살 정도의 아이와 비슷하다.

운동을 해보려고 했지만 어떤 일이든 집중시간이 굉장히 짧다.

가벼운 산책을 나가도 10분 정도가 지나면 지금 내가 왜 걷고 있는지, 어디를 가고 있는지,  집에는 왜 안 가는 건지 머릿속이 리셋된다.

그러면 계속 집에 가자고 재촉하신다.

요양보호사님이 오셨을 때는 가끔 같이 마트도 다녀오시고 수다 떨면서 산책을 종종 하셨는데, 코로나 때문에 요양보호사님이 오시지 못한 이후로는 더욱 운동하기가 어려워졌다.

집에 계시면 주로 누워서 티브이를 보시기 때문에 엄마가 의식적으로 운동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요즘엔 현미밥을 하고, 인스턴트를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물론 치킨과 햄버거를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그도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운동을 하시는 것보다는 조금 더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알뜰시장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나도 느슨해지고 만다.

"엄마, 많이 먹어! 맛있지?"

나도 모르게 이런 말까지 튀어나온다.

못 먹게 하는 것은 힘들다. 인생에서 절제가 가장 힘든 일이 아닌가.

심지어 치매에 걸린 노인에게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먹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처럼 서러운 일이 있을까?




그냥 맛있는 음식 먹으며 행복해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이런 것이야 말로 가장 쉬운 효도가 아닌가 생각했다.

정말 돈만 약간 쓰면 되는 날로 먹는 효도이다.

나와 아이들도 같이 음식을 먹으니 오히려 면죄부가 되는 효도이다.

가짜 효도이다. 정말 엄마를 위해서라면 하지 않아야 하는 효도. 오로지 나만을 위한 효도가 아닐까.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달콤한 사탕을 드리는 것이 맞는지, 엄마의 건강에 맞는 쓴 약을 드리는 것이 맞는지 말이다.

치매환자는 정말 어렵다.

더군다나 엄마는 말씀도 유창하게 잘하셔서 만약 내가 물어본다면

"당연히 몸에 쓰더라도 약을 먹는 게 좋지! 열심히 운동해서 살도 빼야지!"라고 대답하실 거다.

하지만 몸은 늘 누워계시고, 씻는 것조차 귀찮아하셔서 씻으라고 얘기하면 도리어 나에게 아까 씻었는데 또 씻으라고 한다면서 화를 내신다.

그리고 다시 티브이 앞으로 가서 누워계시고 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와 타협한다.

그래, 엄마도 남은 인생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좋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그렇게 힘들게 다그치겠어하면서 다시 한번 참아본다.

물론 이렇게 타협하게 되기까지는 힘들었다.


엄마가 아픈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 엄마와 크고 작은 트러블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엄마의 감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외출 준비를 해야 해서 꼭 씻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엄마가 싫다고 하면 머리에 허연 비듬이 낀 채로 모시고 나갔다.

옷을 갈아입지 않아 냄새가 많이 나더라도 싫다고 하시면 일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그냥 기다렸다.

부끄러운 것은 엄마가 아니라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교회에 가서 잔치국수를 두 그릇을 말아 드시는 엄마를 보았을 때에도 그랬다. 주변에 식사하시던 다른 분들은 어느새 다 일어났고 혼자 한 그릇을 더 받아서 드시다가 나를 보자마자 큰소리로 반갑게 아는 척을 하실 때, 엄마는 분명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나와 달리 엄마에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도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울 때도 있었다.

10년 전 처음 엄마가 퇴원하고 집에 모시고 왔을 때엔 깨끗하고 단정하지 못한 엄마의 모습이 마치 나의 잘못처럼 느껴져 강박감으로 엄마를 대했다.

엄마의 등짝을 때리기도 하고, 옷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욕실로 질질 끌고 간 적도 있었다.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엄마도 나도 마음과 몸이 모두 다치고 힘들었다. 그때 나는 첫아이를 유산하기도 했다.


그제야 나는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면서 천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되지 않는 일은 내려놓는 법도 배웠다.

지금 아니면 나중에 할 수도 있다는 것도 배웠다.

물론 아직도 종종 투닥거리긴 한다.

오늘의 일처럼 너무 내려놓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람이 결심과 행동의 균형을 잡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어린아이 같은 엄마에게 만족과 절제 사이의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걷게 하는 것은 더욱더 힘든 일이다.

실수하면서 반성하면서, 그냥 주어진 인생의 실수를 조금씩 줄이면서 사는 게 최선이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잘못이 아니었다.

엄마의 인생의 실패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아픈 것일 뿐, 아프게 된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고 오로지 그런 인생이 눈 앞에 펼쳐진 것뿐이었다.

엄마와 손잡고 구르고 넘어지고 아파하더라도 그냥 “감정”을 중요시 하면서 “기쁨”과 “절제”의 사이에서 넘어지고 까지더라도 조금씩 걸어가기로 마음먹어본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엄마 이야기(20.11.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