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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캐니 Nov 04. 2020

오늘의 엄마 이야기(20.11.4.)

엄마의 인생과 밥

 아침 7시 30분에 알람이 울린다. 눈을 비비고 거실로 나오면 주방에 앉아 같이 밥을 먹고 있는 남편과 엄마가 보인다.

"얼른 밥 먹어라!"

엄마의 아침인사는 늘 똑같다. 나에게 밥을 먹으라고 한다.

나는 평생의 숙제라고 하는 다이어트를 언제나 하고 있으므로 아침은 거의 거르는 편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회사에 늦을 까봐 먹지 않았고, 지금은 간헐적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해 보아도 내가 아침을 먹지 않은 게 5년 이상은 된 듯 싶은데 엄마는 아직도 나를 보면 잊지않고 늘 밥을 먹으라고 하신다.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시절 아침 나를 깨우던 엄마의 말도 늘 "밥 먹어라!" 였다.

도대체 '밥'이 뭐길래,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지.

퇴근하고 돌아오면 인사 대신 "밥 먹었나?" 하신다.

밥에 대한 집착은 이제는 나를 넘어서 사위와 손자, 손녀에게까지 뻗친다.

"예진아, 밥 먹었나?"

"네, 아까 같이 먹었잖아요."

"아참, 그랬지. 허허허허. 할머니가 이렇게 정신이 없다."

한 십분쯤 지나면 다시 묻는다.

"예진아, 밥 먹었나?"

그때가 되면 예진이는 내 눈치를 본다. 다시 먹었다고 대답해야 할지, 아니면 엄마가 나서야 할 차례인지 보는것이다.

"엄마! 아까 같이 먹었잖아. 미역국에 말아서 먹은거 생각 안나? 잘 모르겠으면 시계를 봐. 지금 시간이 몇신데 벌써 밥 먹었지."

그러면 상황이 종료되며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고 아이들은 다시 아무일 없다는 듯 놀이를 한다.

어떤 날은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면 예진이가 대신 대답한다.

"할머니, 조금 전에 밥 먹었어요."

기특하게도 예진이는 그 이후의 질문에도 똑같은 대답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저녁을 먹고 나면 이젠 끝났을까 싶지만 이번에는 사위에 대한 밥집착이 이어진다. 나는 밥통에 보온상태의 밥이 남는게 싫어서 조금씩 해먹고 싹 치우는데, 문제는 거기서 부터다.

밥통에 밥이 없으면 거의 매일 야근하다시피 하는 사위의 끼니걱정이 이어진다.

"기하는 밥 먹고오나?"

"응. 학교에서 먹고오지."

"아휴, 다행이다. 밥이 없어서 밥을 다시 해야하나 했다."

"걱정말어. 일 시키면서 밥은 꼬박꼬박 주니까."

이 질문과 대답도 서너번이 반복된다.



아이들과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는 아이들 시중을 드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오늘은 젓가락대신 포크를 달라는 승규, 물컵을 달라는 예진이에게 포크와 물컵을 느린 걸음으로 건네고, 식탁의자에 떨어질 듯 앉아있는 승규에게 똑바로 앉으라고 말을 해야한다. 그리고 더 국을 더 줄까, 밥을 더 줄까, 김을 꺼내줄까, 끊임없이 이야기하신다. 그냥 앉아서 엄마 밥을 먹으라고 해도 - 행동이 느릿느릿하셔서 대부분은 내가 먼저 포크와 물컵을 건네주기 때문에 엄마는 늘 말 뿐이지만 - 아이들 챙기고 나까지 챙기느라 혼자 식사시간이 늘 분주하시다.




승규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빈 식판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꺼내둔다. 그걸 열어보는 것 또한 엄마의 크나큰 낙이다.

"아이고, 세상에나! 뭘 아주 싹 다 먹었구나. 세상에!

정말 걸지게 자알 먹고 왔나보다. 허허허허허."

아이들이 밥을 먹고 남은 잔반은 다 털어버리고 빈 식판은 씻지 않은 채로 보통 가지고 돌아오는데, 엄마는 그게  밥과 반찬을 한톨도 남김없이 다 먹은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였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승규가 점심에 뭘 먹었는지 생각해보고 얼마나 먹었는지 헤아려보며 그렇게 한껏 기분좋아 하신다. 그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승규가 잔반을 다 털었다는 얘기는 아직 해드리지 않았다. 물론 해드린다해도 금세 잊어버리실테지만.


정도는 다르지만 나도 우리 아이들의 밥에 집착한다. 어려서부터 영유아 검진으로 백분위(%)를 매겨 줄세우기를 하기 때문에 우리 두아이의 키와 몸무게가 그래프의 상위에 있는지 하위에 있는지 친절하게도 알수 있다. 늘 중간이상 가지 못하는 우리 두 녀석들덕분에 나도 밥 집착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왜 아빠가 아니고 늘 '엄마'에게 밥에 대한 책임감이 부여되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처음 밥을 먹이는 순간을 경험하기 때문이 아닐까?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낳으면 - 내가 다니던 병원은- 낳자마자 갑자기 내 환자복 앞섶을 막 풀어헤치더니 가슴 가운데에 아기를 턱 하고 올려놓는다. 한 오분정도.

그때는 만감이 교차한다.

너 이녀석 왜 이렇게 오래걸렸니? 엄마 배를 빵빵 차던 게 너였구나.

'가슴'이 의미하는게 무엇일까. 내 심장소리를 뱃속에서 오랫동안 들었다는 이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따뜻하고 물렁한 내 가슴에 누워 심장소리를 들으며 조금의 안정감을 느꼈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작은 생명을 꼭 지켜내리라는 책임감에 도취되어 모유수유라는 대단한 일을 해내게 된다.


첫 모유를 먹던 그 모습이 둘다 잊혀지지가 않는다. 신생아는 입주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제비처럼 입을 쫙쫙 벌리며 젖을 찾는다. 눈을 감고 있어도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조그만 입을 벌려댄다. 그 모습이 정말 신기하고 귀여워 울때까지 젖을 안 준적도 있다. 계속 보고싶어서.

오로지 먹겠다는 그 본능에 충실한 태초의 순수함에 내가 지금 당장 응답해주지 않으면 그건 큰 죄악이다.


그렇게 큰아이는 18개월, 작은아이는 15개월을 완모(완전모유수유: 분유를 전혀 먹이지 않고 모유로만 수유하는것)를 했다.

축복받은 가슴이라서가 아니었다. 본디 유선이 엄청 꼬여있었고, 기름지다고 했다. 편평유두여서 유두보호기없이 수유할수 없었다. 그래서 유선염을 열번이상 앓았고, 마사지, 항생제, 유축, 또 마사지, 식단조절 등 모든 산을 넘고 넘어 가능했던 일이다. 두번다시 겪고싶지 않던 고난과 희열의 연속이었다.

 

모유수유가 끝나면 이유식을 만들어 먹였다. 비싸서 한번도 내돈내고 사먹어보지 못한 쇠고기 안심을 샀다. 손바닥만한 안심의 기름기를 떼어내고 삶아서 잘 다지고 갈고나면 엄지손톱만한 갈아진 고기조각이 남는다. 그걸 쌀미음에 섞어 쇠고기미음을 만들어 먹였다. 초록색 점이 콕콕 박힌 브로콜리미음, 먹고나면 주황색 응가를 만들어내는 당근미음, 아기 똥꼬에 낀 기다란 하얀줄을 빼내고 식은땀이 나게 했던 팽이버섯죽.

입을 벌려 내가 만든 이유식을 먹는 걸 바라보는 기쁨은 과정의 모든 고난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그건 정말 분명하다. 이유식 만들기의 고난은 3시간이나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쁨은 약 5분~10분정도에 끝이 나긴 해도 기쁨의 크기는 상당하다.

그 반대로 잘 먹지 않으면 그 좌절감과 패배감은 며칠 동안이나 나를 괴롭혔다. 아기의 몸무게가 늘면 내가 잘 한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못한것이라는 생각에 쓸모없는 책임감이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고, 슬럼프에 빠지게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제 나와 우리엄마, 그리고 이 땅의 많은 엄마가 왜 밥집착에 빠지게 되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옛날에는 밥이란 곧 생명과 연결되니 얼마나 더 집착이 심해졌을까 싶기도 했다.

엄마가 나에게 오롯이 해주는 사랑과 정성의 전달은 '밥'이라는 매개를 통해 내 입속에 매일매일 넣어지게 되었던 거였다.

그걸 납죽납죽 받아먹는 걸 바라보는 엄마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자식에게 그런 본능의 해결 조차 해주지 못할 때 죄책감과 '밥'을 만들어 먹여야 한다는 책임감이 얼마나 컸을까.



엄마는 이제 요리는 못하신다.

국 데우고 밥통에 취사버튼 누르는 정도는 하실 수 있지만, 그나마도 인덕션으로 바꾸고 나니 터치버튼을 전혀 다룰 줄 모르게 되셨다. 나도 요리 실력은 그저 그래서 반찬을 종종 사다먹는다.


엄마는 이제 당신 손이 아닌 남의 손을 빌어 비록 '밥'을 준비하지만 그걸 먹이며 바라보는 사랑의 기쁨은 치매에 걸린 엄마에게 중독처럼, 화석처럼 새겨져 남아있다.

아이들이 클수록 '밥' 이외의 욕구를 더 많이 해소해 주어야 하지만 탯줄로부터 연결되었던 그 밥 책임감의 기억은 도무지 기억장치가 고장난 뇌속에서도 떠날 줄 모른다.

그리고 그 어떤 기억보다 강렬해서 하루종일 온 식구에게 '밥'을 먹이려고 노력하시는 걸 본다.


우리 엄마 참 열심히 살았구나.

우리 엄마 자식 먹이는 데에 진짜 최선을 다했구나.

고맙다, 잘했다, 수고했다고 얘기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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