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25 토요일
의왕에서 서울까지, 그것도 성북구에 위치한 미아까지 가야 하는 일정이라 게으른 나도 나름 부지런히 움직여 준비했다. 새벽 2-3시 타임 수유는 내가, 6-7시 타임 수유는 남편이 맡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남편보다 조금 더 늦게 일어나는 편인데 그럼에도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만한 물리적 거리였다.
이래저래 투닥투닥 움직여 준비하는 중... 요 며칠 전부터 걸걸하던 1호의 목소리가 결국 콜록이는 기침을 내뱉었다. 2호가 태어나기 전 같았으면 좀 더 민간요법(?)으로 버텨봤겠지만 아직 많이 어린 2호가 있기 때문에 빠른 치료가 우선이라 생각해 1호와 남편을 소아과 진료를 보냈다. 그 사이 나는 집에서 2호 수유를 하고 짐을 챙겼다. 나름 빨리 준비해 봤지만 결국 우리의 타임 테이블에 맞춘 출발시간을 훨씬 넘겼고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겨 겨우 도착했다.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훌쩍 지나있었다. 애당초 제시간 도착은 포기하고 미안함과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가지만 애 둘을 데리고 준비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이해해 주지 않을까란 약간의 뻔뻔함도 올라왔다. (다음엔 출발 드림팀처럼 초 시계를 두고서 해봐야겠다) 다행히도 감사한 것은 다섯 가정이 모이는 모임이었고 질책하는 사람 누구도 없이 기다려주고 있었다는 것.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우리 가족 넷이 합류했다. 그리고 우리의 미안함보다 더 크게 반겨주고 인사와 환영을 받았다.
다들 2호를 신기해하며 에워싸고 인사를 나누기 바빴다. 존재만으로도 사랑받는 아기라니... 새 생명은 대단한 일이긴 하나보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1호. (원래는 이모 삼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듬뿍 받던 1호지만 요즘은 2호의 등장으로 조금 늦게 관심을 받고 있다) 조금 섭섭한 눈빛으로 2호를 둘러싼 인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조금 짠하다. 아! 물론 섭섭한 눈빛은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흔히들 동생이 태어나면 첫째는 시기와 질투를 한다고 그렇게 말한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 걱정하고 염려하지만 1호는 생각과 다르게 2호를 애정 어리게 대해주고 있다. 기특하기도 하지만 짠하다. 화를 내거나 때리지는 않지만 눈빛으로는 ‘엄마 나 조금 섭섭해요, 서운해요, 나도 봐줘요’라고 말하는 듯해서 마음이 쓰인다. 그런 말도 있다 하더라 둘째의 등장이란 남편이 집에 내연녀를 들이는 듯한 느낌이라고. ㅎㅎㅎ 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1호는 어떨까 싶다. 그래서 사람들과 있을 때 전보다 더 1호에게 마음을 쓰고 있다.
1호는 정말 순하다. 나와 남편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주위에서도 꽤나 많이 듣던 말이다. 자신의 관심을 2호에게 빼앗기고(?) 있는데도 단 한 번을 때리거나 괴롭힌 적이 없다. 아직 만난 지 두 달뿐이긴 해도... 오히려 동생이 울면 엄마 아빠보다 먼저 달려가 쪽쪽이를 물려주고 토닥거려주곤 한다. 착하기만 한 행동거지와 마음도 칭찬받지만 하는 행동과 모습이... 너무 귀엽다...!!(도치 엄마 생각이 대부분이지만 정말 많이 듣는 말이다) 아마 유니콘 같은 1호의 이런 모습들은 어렸을 때 옆집이 애 키운 줄 몰랐다던 순돌이 엄마와 사람들로부터 귀여움 받던 귀요미아빠의 콜라보아닐까?
2호는 1호에 비해서는 조금 맵지만 2호 역시도 순하다. 먹고 놀고 자고... 배고파 우는 것 이외엔 우는 일이 거의 없지 싶다. 깨어있을 땐 놀다가 안아달라고 찡얼대는 정도...? 딱 그 정도지 정신적으로 시달릴 만큼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기억력이 퇴화돼서 기억 오류일 수도) 그래서 생각보다 큰 어려움 없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아가들을 만났다는 건 정말 감사할 일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 하 더라도 아이들이 내게 와서 가족이 되어주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난 주목을 받거나 칭찬을 받으면 곧이곧대로 누리지 못한다. 마치 칭찬받는 내가 자격이 없는 듯 겸손을 포장해 시선을 돌려내려고 애쓴다. 내가 주어지는 칭찬은 비꼬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보내는 인정에 대해 누릴 필요가 있는 것이란 걸 알지만 그대로 누리기엔 아직 어렵다. 나에게만 그러면 다행인데 말이다.
지금까지 1호와 사람들을 만난 시간이 많기 때문에 1호의 예만 들어도 그렇다. ‘애 있는 줄도 모르겠다’,‘엄마 고생 안 시킨다’ 등등 1호의 온순한 기질로 인해 칭찬을 제법 들었는데도 난 거의 대부분을 아니라며 둘러대기 바빴다. ‘안 그래요~ 지금 남들 앞이라고 예의 차려서 그래요’,‘저랑 있을 땐 고집도 엄청 부려요’ 등등 아이가 듣는 앞에서 부정하는 말만 가득 늘어놓았다. 왜 그랬을까?
내가 엄마라고 아이의 칭찬을 받아들일 권리마저 쥐고 있을 수 없는데 말이다. 내가 겸손 떠는 척 아이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다. 마음 같아선 ‘동네 사람들 우리 아이 좀 봐요~ 세상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없다니까요? 순하기도 순하고 착하기도 착하지만 다른 예쁜 모습들이 얼마나 많게요?!’라며 동네방네 떠들고 싶다. 그렇게까지 할 필욘 없지만 그렇게 한다면 또 누군가 흉볼까 봐, 자랑이 덕이 되지 못할까 봐 마음의 십분의 일 정도만 내비친다는 것이 아이를 작게만 키우고 있게 한다.
타인 앞에서 겸손한 척 작아지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스스로도 움츠러든다. 아이의 세상 전부인 부모가 본인을 움츠러들게 한다면 아이는 어디에서 자랄 수 있을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칭찬을 듣는다는 것이 춤출 만큼 기쁜 일이지만, 반대로 고래를 춤추게 할 그 칭찬을 하는 사람도 있다. 뭐... 의미 없이, 인사치레로 칭찬을 할 수도 있지만, 칭찬을 한다는 것은 상대의 어떠한 무엇을 ‘인정’ 한다는 말이다. 칭찬 한마디에 상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담아 준 것이다. 그게 내 아이를 춤추게 하고 마음 밭을 풍성하게 자라게 할 하나의 씨앗이라 생각하면? 마다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
나는 미안하게도 1호와 2호의 그 씨앗들을 아이들의 마음 밭이 아닌 길가에 흩뿌리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이 칭찬 씨앗이 아이에게 자존감을 한 겹 단단하게 해주고 그 자존감이 숲을 이뤄 세상 어디 가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되어준다면... (흠... 그래서 어릴 때 포도송이 칭찬 스티커를 그렇게 모으고 싶어 했나 보다. 그냥 문방구 가서 똑같은 스티커를 사고 그걸 붙여 단순히 채울 수 있는 포도송이가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준 칭찬 스티커) 지금은 기질과 행동에 대한 자그마한 칭찬이지만 나의 겸손한 척을 보고 배운 아이들이 똑같이 씨앗을 버릴 수도 있겠다.
부모와 가족이 주는 사랑도 사랑이지만 아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사랑도 아이에게 그대로 흘려보내주어야겠다. 인격체로서 아이와 타인의 교제 사이에 내가 막아서서 ‘아니에요’하며 쳐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아이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잘 통역해 주고 그 칭찬이 아이의 마음 밭에 작은 씨앗이 되어 숲을 이룰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나의 민망함과 같잖은 척하는 겸손에 밀려 아이가 싹 틔울 자존감과 자신감의 씨앗이 썩지 않게 해줘야겠다.
그리고 내가 먼저 배우고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은...!
칭찬을 당연한 듯 덥석 받지 않고 인정해 준 상대에게 감사하게 기쁜 마음으로 칭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연습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