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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Feb 25. 2024

"저걸 내가 썼어야 했는데!!"하는 후회

김부장 이야기 읽고 현타 온 썰.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라는 웹툰을 봤다. 너무 재밌어서 한번에 9화를 다 봐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쿠키까지 굽고 싶었지만, 완결 나오면 구우려고 일단 남겨두었다.


그런데 현타가 왔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첫 번째는 김부장이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직장 동료와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더 높이 올라가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여겨왔던 김부장처럼, 나도 사회 생활에 찌들어버린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 현타가 왔다.

두 번째는 김부장의 아들이었다. 명문대 나와서 대기업 들어가길 원하는 아버지와 끊임없이 대립하면서도 자기의 꿈을 묵묵히 밀고 나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글로 성공하고 싶었던, 하지만 그 꿈을 포기하고 말았던 내 모습이 생각나 현타가 왔다.

세 번째는 송과장이었다. 부동산 투자로 큰 돈을 벌었다는 송과장과 당장 회사 일거리 처내기에도 바쁜 내 모습이 대비되어 현타가 왔다.




하지만 그게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이었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김부장 이야기가 김부장과 송과장, 정대리, 권사원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는 제약회사 영업 담당자인 김현민 대리와 무명작가 김현민, 그리고 혼기가 꽉찬 노총각 김현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김부장 이야기가 직장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각자의 시선에서 담았다면 나는 나라는 인간이 가진 여러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하지 못했다. 그딴 이야기는 아무도 안 읽어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5년부터, 10년째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작가로서 나의 실적은 처참하다. 브런치 구독자 100여명, 네이버 구독자는 1000여명. 그나마도 나는 솔로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블로그도 300명 따리였을 것이다. 출간된 책도 한 권 있긴 하다. 나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는 책을 갖고 있는 진짜 작가다. 하지만 그 뿐이다. 초판 1000권 중 100권 겨우 넘게 팔렸다. 나머지 900권은 창고에서 썩고 있다. 어쩌면 자리 아깝다며 내다버렸을지도 모른다.

시류를 타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나는 솔로에 출연했던 2021년 11월부터 12월, 불과 2달의 기간 동안 내 블로그 구독자는 300명에서 1000명이 되었다. 0에서 300명이 되는데는 7년이 걸렸는데 300명에서 1000명이 되는 건 2달 걸렸다. 아무도 읽지도 않던 글들이 유명 연애 프로그램 출연자가 쓴 글이라고 하니까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유명세라는 건 그런 거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럼 네가 똥을 싸도 사람들은 좋아해줄 것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유명해지기로 결심했다. 직장에서 상사한테 깨졌던 일,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주변인들에 대한 서운함, 누군가에 대한 마음이 거절당했을 때 느끼는 상실감.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 따위 것들 말고 이제는 남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걸 쓰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유명해지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솔로 리뷰를 썼다. 내가 나갔을 땐 관심 많이 받았으니까, 이게 요즘 핫한 프로그램이니까, 내가 잘 아는 것 중에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게 이것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별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읽는 사람도, 구독을 누르는 사람도 없었다. 이 글이 어느 게시판엔가로 퍼날라져 이슈가 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지금 현재 출연자들의 이야기지, 이미 잊힌지 오래인, 심지어 방송에서조차 별 존재감이 없었던 듣보잡 출연자의 의견이 아니었다.

성과는 없이 글쓰기의 재미만 반감되었다. 나는 솔로에 나가기 전 내 글은 나의 내면의 결핍을 풀어내는 하나의 도구였다. 그때의 내 글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기 이전에 나 자신을 위한 글이었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그 글을 써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보는 사람도 없는 글을 7년 동안이나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거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재미가 없어졌다. 보여주려고 쓰는 글인데 보는 사람이 없으니 쓸 맛이 날 리가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글을 놓고 살았다.


그런데 그러는 와중에도 누군가는 김부장이야기와 같은 글을 썼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김부장과 송과장, 권사원과 박대리 이야기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웹툰으로도 만들어졌다. 이런 걸 썼다가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지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만 하며 내가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실천을 했고, 성과를 냈다. 그래서 현타가 왔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보려 한다.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써보려 한다. 안 읽으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다른 거 써도 안 읽는 건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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