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걸 느낄 때
여자 친구 때문에 이직을 결심했다. 사내 연애가 하고 싶어서 여자 친구네 회사로 옮긴 건 아니다. 여자 친구랑 자주 만나고 싶어서 여자 친구 집과 가까운 곳으로 옮긴 것도 아니다. 여자 친구가 "오빠! 연봉이 왜 그것밖에 안 돼? 오빠 같은 삼백충이랑은 더 만날 수 없어!"라고 한 건 더더욱 아니다. 그 밖에 어떤 이유도 아니다. 막상 여자 친구는 나의 이직 결정에 자기가 영향을 미친 줄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자 친구 때문에 이직을 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여자 친구를 통해 이 회사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야근이 많다. 여섯 시 퇴근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은 이만 먼저 들어가보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들 '오늘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나?'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가끔 근처에서 친구와 밥을 먹거나 운동을 하고 저녁 늦게 회사 건물 앞을 지날 때도 내가 근무하는 B동 8층은 불이 환히 밝혀져있다.
이전까지는 그게 정상인줄 알았다. 다들 그러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침 여덟 시에 출근해도 먼저 나와 있는 사람들이 있고, 일을 도저히 다 끝마치지 못해서 주말에 출근을 해도 사무실에 사람들이 있다. 일과 시간이 끝나면 주변에서 "수고하셨습니다!"나 "내일 뵙겠습니다!" 대신 "자~ 저녁 먹고 와서 합시다!"하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 시간에 구내 식당에 가면 점심 때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그 사람들은 대체로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늘 야근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 중에 하나다. 그래서 이상한 줄 몰랐다. 야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여섯 시에 퇴근하는 건 무책임하고 조직에 대한 소속감과 프로의식이 없는 엠지세대들이나 하는 짓인줄 알았다.
그런데 여자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모든 회사가 다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여자 친구네 회사는 매일 정시 퇴근을 한다. 오 분 정도 팀장님 눈치를 보는 시간도 없이 퇴근 시간이 되면 정말 모두 나가버린다. 아침에 일찍 나오는 사람도, 저녁에 남아서 일을 하는 사람도, 주말에 나오는 사람도 없다. 구내 식당이 있지만 아무도 저녁을 먹지 않는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걸 알고 나니 회사가 싫어졌다. 저녁 여섯 시에 여자친구로부터 "오빠, 퇴근했어?"라는 메시지가 올 때, "아니 ㅜㅜ 난 오늘 야근해야 돼."라고 답장을 보낼 때, "잉 정말? ㅜㅜ 불쌍하다.."라고 답장이 올 때. 그때마다 회사에 대한 정내미가 팍팍 떨어졌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회사에 내 피 같은 여가 시간을 갖다 바치고 있는 건지, 눈 딱 감고 사표 한 번만 쓰면 되는데 왜 내가 이 회사를 고집하고 있는 건지 현타가 왔다. 그래서 더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