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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Jun 18. 2024

대화는 잘 통하는데 안끌리는 남자

오랜만에 결혼정보회사에서 주선해준 소개팅에 나갔다. 그리고 말아먹었다. 이제 10회 중에 3회 남았다. 3번만 더 말아먹으면 300만원이 공중분해되는 거다.


보자마자 확 꽂힐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건 아니다. 키가 조금만 컸으면, 옷차림이 여성스러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지 말수가 적어서 대화를 이끌어나가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이야기하다 보니 좋은 점들이 하나씩 보였다. 정이 많고 순수한 사람 같았고, 자기 일에 열정도 있고 부지런해보였다. 그래서 애프터 정도는 해봐야지 했다. 한 번 보고 그 사람에 대해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두 번까지는 부담없이 만나자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실패다. 다음주에 저녁 식사 하고 싶은데 일정 어떠냐는 물음에, 현민씨 좋은 사람이고 같이 보낸 시간 너무 즐거웠지만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성 관계로 발전하기는 어려울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집에 가서 생각해보긴 뭘 생각해봐. 만난지 5분 만에 결론 내렸겠지. 아니, 5분도 길려나? 사람 첫인상은 3초만에 결정된다고 하던데?




대학생 때는 연애를 3번 해봤다. 처음 만났을 때 이 여자와 연애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가서 연락이 안 되겠군, 싶은 여자는 연락이 안 됐고, 두 번 정도는 만날 수 있겠군, 하면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점점 그 감이 안 맞는다. 분명 잘 맞는 것 같았는데 집에 가서 연락을 해보면 안 받는다. 좋은 사람인데 어쩌구 하는 말로 거절을 표한다. 예전에는 70% 정도만 맞아도 연애를 했다면 지금은 체감상 90%가 맞아도 거절당한다.


사회성이 늘어서 그런 것 같다. 예전에 나는 지금보다 더 사회성이 안 좋았다. 상대방이 하는 말이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달라졌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윗사람이 하는 말, 다수가 하는 말이 곧 맞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굳이 논쟁을 벌여서 그걸 이기려고 들어봤자 내 손해라는 걸 알았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굳이 언성을 높여가며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을 거다. 그 사람을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생각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설령 내가 x소리를 하더라도 적당히 맞춰줬을 거다. 대화가 잘 통했다는 건 내 착각일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정말로 70% 이상 대화가 잘 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이번에 만난 여자는 90년생, 나보다 한 살 연하였다. 아마 그 동안 몇 번의 연애를 했을 것이다. 썸을 타거나 고백을 받았던 적은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 중에는 나보다 더 말이 잘 통하는 남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거겠지. 그러니 나에게는 그 이상을 기대할 것이다. 너 정도 만나려면 그냥 지난 번에 걔랑 결혼했지.




좀 전에 결혼정보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물어봤다. 여자분은 뭐라시냐고, 대체 뭐가 문제기에 이렇게 매번 실패만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런데 모르겠단다. 대화도 잘 통했고, 분위기도 편안하게 잘 이끌어주었고 매너도 좋았는데 이성적인 끌림이 부족했단다. 아니, 그래서 그 이성적인 끌림이 뭐냐고. 그걸 말해줘야 말투를 고치건 헤어 스타일을 고치건 외제차를 끌고 나가건 할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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