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가는 독서 동호회에서 한 여자 회원이 [컬쳐 코드]라는 책을 소개했다. 사랑, 아름다움과 젊음, 가족, 직업 등의 키워드에 대한 각 국가들의 문화적 코드가 어떻게 다른지 소개하는 책이었다.
그 중에 인상깊었던 건 이탈리아 남자들의 사랑에 대한 관점이었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쾌락이다. 즐거움이다. 아무런 목적 의식 없이 그냥 즐기는 거다. 유혹에 성공하면 성공해서 좋고, 거절당하면 당하는 대로 좋은 거다. 어차피 재밌자고 하는 거니까. 우리가 게임을 하거나 친구와 술을 마실 때 이 행동이 우리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 지를 생각하지 않듯이 말이다.
그러니까 여자들도 그냥 즐기면 된다. 이탈리아 남자들이 "어이, 거기 이쁜이!"하면서 휘파람을 불면 "어머! 나더러 예쁜이래!"하면서 꺄르르 웃어 넘기면 된다. 어차피 그냥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쟤들은 늘상 저러기 때문이다. 꼬시려고 하는 말도, 정말로 예쁘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담가질 필요가 없이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
한편 우리는 너무 진지하다. 2000년대 초반 조성모 뮤직 비디오에 나올 것 같은, 불치병에 걸린 그녀를 살리기 위해 내 장기를 내어주고, 조폭들에게 납치당한 그녀를 구하기 위해 싸움도 못하면서 뛰어들었다가 반죽음을 당하는 것. 그게 사랑에 대한 우리의 문화 코드다.
또한 우리에겐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 코드도 있다. 재수를 해서 대학을 1년 늦게 가거나 적당한 시기에 취직을 하고 장가를 들지 못하면 하자가 있는 인간 취급을 받는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모태솔로는 굴욕과 조롱의 대상이며 이성에게 고백했다가 차이는 건 창피한 일로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늘 힘이 들어가있다. 우리는 차이면 안된다. 그러니 즐길 수 없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최적의 멘트와 최적의 말투, 최적의 표정과 옷차림을 도출해내야 한다.
상대방도 그걸 느낀다. 그러니 여자들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거절하면 나쁜 년이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연락이라도 받아주면 당장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까지 가야할 것만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주었다가는 나중에 어장관리니, 여왕벌이니 하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양끼라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여자들은 늘 진실된 사람, 자기에게만 집중해주는 사람, 다정다감하고 배려심 넘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행동은 다르다. 양끼와 날티가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왜 그런 건지 궁금했다. 나쁜 남자에게 지배당하고 싶은 마조히스트적 기질인지, 매운 떡볶이나 마라탕을 먹을 때처럼 강렬하고 얼얼한 감정의 서스펜스를 느끼고 싶은 건 아닌지.
그런데 양끼나 날티라는 건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진심이 아니기에 부담스럽지 않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