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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Jun 11. 2024

10년 동안 책 100권 판 무명 작가의 한탄

"졌잘싸"는 이제 그만

모임에서 새로 알게 된 사람(이하 A)과 이런 대화를 했다.

A: 글을 쓰신다면서요? 얼마나 쓰신 거에요?
나: 2015년부터 10년 정도 썼어요.
A: 보통 뭐에 대해 쓰세요?
나: 제가 겪고 느끼는 모든 거요. 직장, 사랑, 가족, 그 밖에 모든 이야기.
A: 그럼 보통 책을 통해 영감을 얻으시는 거에요?
나: 겪고 느끼는 모든 게 영감이 되죠. 누군가와의 대화가 될 수도 있고, 유튜브나 책, 영화, 웹툰이 될 수도 있고.
A: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오래 몰입한 취미가 없거든요.
나: 대단하긴요. 보는 사람도 몇 명 없는 글인데요. 책도 얼마 못 팔았구요.
A: 그래도 저는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대가 없는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 정말 부러워요.


그때 나는 알았다. 유명해지고 싶구나. 돈 많이 벌고 싶구나.


A는 내가 대단하다고 했다. 책을 만들기 위해 바친 나의 노력과 시간이 대단하다고 했다. 그 순수한 열정이 부럽다고 했다. 그런데 과정이나 노력, 최선을 칭찬하는 건 보통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지 않을 때 하는 일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16강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 우리 태극전사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달 영업실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잖아. 한 잔 하고 털어내자."

"결국 차였지만 그래도 용기내서 고백은 해봤잖아. 다음 사람에게는 더 잘하면 되지."


단적으로 말해서 내가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라면, [역행자]를 쓴 자청이라면, 그 밖에 요즘 잘 나가는 책을 쓴 작가라면 저렇게 말했을까? 아마 아니었을 거다. 제목만 듣고도 자지러졌을 거다. 헉! 그 책이요? 저 그 책 완전 감명깊게 읽었는데! 팬이에요. 작가님!


돌이켜보면 이런 말만 들으며 살았던 것 같다. 


"유튜브 채널을 해보셨다구요? 구독자는 많이 모았어요? 아, 500명이요?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유튜버한다고 말만 하면서 아무것도 안해본 사람들이 90% 이상인데."

"나는 솔로에 나가보셨다구요? 커플은 되셨어요? 안되셨다구요? 와, 그래도 용기가 대단하시네요. 저 같으면 절대 못 나가요."


빛나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남들처럼 뻔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남들이 잘 안하는 것들에 도전했다. 하지만 다 실패했다. 그래서 나는 "그래도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과감하게 시도라도 해본 사람, 최선을 다해 부딪혀보기라도 한 사람, 하지만 결국 이룬 건 없는 사람.


이제는 싫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은 이제 듣고 싶지 않다. 나는 명예로운 패자가 아니라 그냥 승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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