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태평하고 안온했던 죽음 전 날
아기는 생후 39일에서 40일로 넘어가던 9월 25일 02시께에 숨이 멎었다. 그때는 몰랐으나 돌이켜보면 그 때 멎은 것이었다.
형광불이 환하게 켜진 거실에서 나는 아기를 안은 채로 쇼파에 앉아 아기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어어 얘 동공이 왜 이렇게 커지지' 의아해하면서도 아기가 마악 변을 지린 기저귀를 괜찮은 징조라고 여기면서 이 밤을 어떻게 지새울 것인가 걱정하고 있었다.
침대에 아기를 눕혔고 아기가 크게 숨을 한번 내뱉고는 눈을 감았다. 나는 그 모습이 잠이 든것인줄 알았다. 아기 특유의 들썩이는 호흡이 없어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도 곤히 잠든 모습을 보니 순간 안심도 올라왔던 것 같다. 그러나 남편은 아기를 일으켜 안아 거실로 나와 이름을 외치며 아기 발을 때렸다. 하온아. 하온아.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 발에도 가슴께에도 대보았다. 하온아. 하온아. 아기는 눈 뜨지 않았다.
2020년 9월 24일은 시간대별로 기억이 난다. 마치 소설 '운수좋은 날'과 같았다. 한가을 날씨와 수목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남편은 며칠 뒤 입사할 새로운 직장에 대한 흥분이 있었고, 나는 그 날 아이 둘 엄마답지 않게 태평하고 안온하단 느낌을 가졌었다. 남편과 나는 그날 몇년만에 둘이 점심 외식도 하며 앞으로의 나날에 대해 기대와 푸념을 나눴었다.
24일 오전 9시경 남편은 첫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새로운 직장 입사 전 쇼핑을 하러 갔다.
나는 입주 산후도우미 아주머니가 잠에서 깨어난 것을 확인하고 아기를 일별하고, 9시 30분경 동네 도서관에 잠시 들러서 첫째 아이 책을 오전에 빌릴 수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걸어서 산후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출산 이후 오전에 외출한 것은 처음이었고, 산후 마사지도 처음이었고, 20분씩 걸은 것도 처음이었다. 가을 아침 햇살을 맞으며 공원을 가로질러 걷는데, 오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나 낯선 행복감을 느꼈었다.
마사지샵 원장이 출산하고 왜 이제 왔냐며 부은 몸을 부지런히 풀어야된다길래, 내일 또 올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버스정류장 임시 매장에서, 이틀 뒤 추석 연휴에 친정에 입고갈 옷을 골라 샀다. 십대애들이 입을 법한 우스꽝스러운 루즈핏에, 새빨간 티셔츠였다. 결혼 이후 이런 빨간 옷 따위 입어본 적 없지, 그래도 이제 출산도 했겠다 무려 친정에 가는데 새옷입어야지, 경쾌함마저 느끼면서 검은 봉지에 담긴 만원짜리 티셔츠를 들고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남편을 만나 스시를 먹었다. 우리 둘 다 그렇게 장시간 개인시간을 가진 것은 너무 오랜만이었다. 출산 이후 그렇게 장시간 집을 비운 것도 처음이었다. 내심 불안함이 왜 없었겠는가. 출산장려금 수령을 위한 지역페이를 유선으로 신청하면서 3시가 좀 안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문을 열때는 비밀번호를 잽싸게 누르고 문을 잽싸게 열었다. 다녀왔어요. 싱크대 위 새 반찬이 담긴 반찬통들을 보면서, 아 그냥 아기나 많이 안아주시지 그런 볼멘소리가 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입주 산후도우미는 그 다음날이 마지막 근무일이었기 때문에 , 그 다음날 개인 빨래, 반찬만들기도 하리란 계산으로 나는 그전날에 그리 긴 외출을 계획했던 것이다. 일하시는 동안 내가 아기를 안고 있으려고. 아기는 오후에 B형간염 2차 접종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미 말갛게 목욕을 한 상태였다.
나는 집에 들어갔다 금새 다시 나와 어린이집으로 첫째를 데리러 갔다. 그리고 도서관에 들러 예약했던 책들을 대여했다. 둘째가 태어나 집에 온 뒤로, 첫째가 느낄 소외감을 지레짐작하여 노파심이지만 매순간 애썼었다. 책을 받아들고 들뜬 첫째랑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이 또한 행복한 시간이라 느꼈던 기억이 떠오른다.
첫째를 집에 데려다놓고선 남편과 함께 둘째 B형간염 2차 접종을 맞히러 갔다. 그것이 그날의 마지막 일정 계획이었다. 신생아 접종은 통상 오전에 하지만, 한동안은 다시 없을 남편과의 단둘이 점심식사가 아쉬웠고, 접종 이후에 집을 비우는 건 내키지 않아 부득불 오후 5시경 소아과에 갔다.
별다를 것 없는 사전 진료 후 접종을 했다. 아기가 웃었을 때 여의사의 호의적인 목소리, 간호사의 둔한 몸짓 같은 것이 떠오른다. 소아과 아래층 정육점에서 국거리를 사서 남편과 돌아왔다.
비교적 빡빡했던 하루를 마쳤다 만족하며 나는 샤워를 한 뒤 아기를 받아안았다. 산후도우미는 저녁상을 준비하셨다. 남편과 나, 첫째가 저녁식사 하는 동안 아기는 방안에서 산후도우미 품에서 분유를 먹었다. 분유를 먹을 때마다 울면서 실갱이하듯 할 때가 있었는데 그냥 뒀다. 아기들 그렇지 뭐.
산후도우미가 식사하시고 샤워하시는 동안은 내가 아기를 안고 있었다. 입술이 좀 파랗지 않은가.. 손끝/발끝이 좀 창백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얼핏 했다. 그러나 쌔근쌔근 잘 잤고, 주사 맞아 컨디션이 좀 안 좋을 수도 있지 그렇게 눙쳤다.
조잘조잘 말이 많은 첫째와 부엌 바닥에 앉아 자몽을 짜 쥬스를 만들었다. 이거 할머니 갖다드려. 쥬스잔을 첫째를 시켜 산후도우미와 아기가 있는 방에 전달했다.
한글이야호2 책이 배송되서 첫째를 앉혀놓고 아 야 어 여를 처음 가르치고 스티커 붙이기를 했다.
안방에 들어와 깔대기 2개를 동시에 사용해 유축을 했다. 첫째가 젖소가 어쩌구하며 놀리는 소리를 해서 웃었던 거 같다. 유축한 젖병을 들고 산후도우미와 아기가 있는 방에 들어섰다. 아기가 방금 토를 했다고 했다. 태어나서 한번도 토한 적이 없는 신기한 아기였는데. 그런데 토사물 흔적 없이 산후도우미가 입가만 닦아내길래, 분수토가 아니라요? 되물었고 먹다 사레들린듯 하다고 했다. 아기가 괜찮은 모양새여서 방을 나왔다.
그 날 도서관에 빌려온 책을 성심성의껏 첫째에게 읽어주고 열시경에 잠이 들었다. 전날 늦게 잤었고, 오전 마사지 영향인지 보통 때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그리고 23시 45분경 아기 울음소리에 깨어났다. 나는 불안감에 단박에 몸을 일으켜 거실로 뛰쳐나왔다.
화장실 불이 켜있고 아기가 변을 봤다고 산후도우미가 설명했다. 아기는 땀을 흘리고 있었고 얼굴이 회색이었다.
응급실에 가야겠어요. 나는 남편을 깨웠다.
분유병이니 보온병이니 가재수건을 얘기하다가, 나는 산후도우미에게 응급실에 같이 가시라고 말했다. 저녁나절에 분유를 얼마나 언제 먹었는지, 이상징후는 없었는지 내가 의사한테 해줄 얘기가 부족하다 생각했다. 아기가 입원해야 할 수 있다 생각했고 내가 짐을 챙겨 쫓아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산후도우미 가방을 열어보고 싶었다. 여보, 아주대 응급실로 가. 나는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방금 싼 똥귀저기까지 비닐에 싸서 남편 편에 들려보냈다.
우리 부부는 첫째를 키우면서도 한번도 응급실에 가본 적이 없었다. 119에 전화라도 해볼걸 그랬나..
둘째가 밤에 우는 소리에 내가 깨어난 적도 없었다. 그 전날은 내가 거실에서 배회하다 2시 넘어 잠들었는데 아기가 울지 않았다. 두 사람이 떠난 집에서 '아기가 파래요'를 네이버 검색창에 넣어보고 며칠 입원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죄책감도 없이 급히 산후도우미 가방을 열었다. 꽤 많은 종류의 조제약이 나왔는데 렉사프로정5mg(정신신경용제), 콜린페트정(뇌기능개선제)에서 불안을 넘어선 분노가 화악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