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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상 Apr 15. 2024

내 띠가 뭐였더라

그림책<열두 띠 이야기>를 읽고

#치매노인#치매노인케어센터#그림책열두띠이야기#띠별성격#띠별공헌


어르신들을 만나뵈러 가는 길. 봄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는 오후 어르신들을 다시 뵈었을 때, 오수를 마치고 들어오신 어르신 몇 분은 아직고 눈을 감고 계셨다. 건강체조로 몸을 두들기고 발을 버둥거리다 앉은 자세에서 걷기까지 하고 난 후 자신을 안아주는 자세로 마무리를 했다. 몸을 움직이고 자극을 한 후 이제는 목을 풀어본다. 주로 동요를 부르거나 트롯트를 부르게 해드렸다. 굳이 그림책 읽기 전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말을 할 수 있다는 자극을 드리려는 의도가 있다. 노래를 부르셨을 때와 안 부르셨을 때의 차이가 수업시간의 반응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태평가>를 골라와 민요를 부르니 은근히 풍취가 있어 즐거워졌다.


책을 읽기 전 어르신들의 띠를 좌라락 물어보았다. 자신의 띠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어르신이 두 분이었다. "내 띠가 뭐였더라?" 난감해하시는 어르신 한 분에게는 태어난 해를 물어 호랑이띠라는 것을 알았고, 한 분은 말띠라고 예측을 하였다. 그림책을 읽으며 12띠의 동물들을 알아 보고 각자의 성격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어르신들께 "올해는 어떤 띠의 해인가요?" 하고 물으니 한 분만 "토끼띠인가" 하신다. " 올해는 갑진년이라 용의 해예요."라고 조용히 환기시켜 드렸다.


어르신들께 띠그림을 나누어 드리고 머리띠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띠를 소개하고 자신의 성격은 어떠신지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게 하였다. 의외로 비슷한 띠가 많으셨다. 그리고 띠와 상관없이 뱀띠도 쥐띠도 용띠도 자신이 성격이 급하다고 하신다. 다행히 한 어르신이 말띠처럼 자신은 열심히 돌아다녔다고 하신다.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다가 띠를 기억하지 못했던 어르신에 이르니 그제서야 "나 뱀띠야." 하신다. 말띠 머리띠를 하고 뱀띠라 성격이 급하다고 하신다. ㅎㅎ 뭐든 이야기를 나누면 그걸로도 좋다고 생각해보며 한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누신 어르신들께 모두 잘하셨다고 칭찬을 해드렸다. 띠별로 내가 세상에 공헌한 게 있는지 생각해 보시라고 말은 드렸지만 아무도 답을 하지는 않으셨다. 가족들의 띠를 기억해 보시라 질문하니 한 어르신만 여덟 자식 중에 첫째가 용띠라고 기억난다 하신다. "다른 자식은요?"하고 물으니  " 다른 자식은 잘 기억이 안 나네."하신다. 그래도 열두 띠 중 여덟 띠는 있으실거라 웬만하면 걸리시겠다는 생각이 속으로 들었다.


마무리로 다시 <태평가>를 부르며 이제 어깨를 들어올려 춤사위까지 함께 해본다. 어르신들도 따라하시며 좋아하신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싸 좋다 얼씨구나 좋다. 벌나비는 이리저리 훨훨 꽃을 찾아서 날아온다...' 에고 모르겠다. 거창한 수업은 안되지만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걸로 만족하고, 잠시 노래를 부르며 춤사위를 했다는 것에 또 만족하고, 나가시는 어르신 몇 분이 잡아주시는 손길에 만족하고, 한 번의 수업이 또 끝났다는 것에 만족해 본다.


늘상 돌아오는 길에는 씁쓸한 기분이 든다. 작년과 다르게 답을 못하시고 소통이 안되시는 어르신의 모습이 떠오르고, 기억력이 떨어져 자신의 띠를 모르시며 난감해 하신 어르신의 얼굴도 떠오른다. 나눠드린 초콜렛에 아이같이 밝아지시는 얼굴들이 떠오르고, 띠 머리띠를 두르고 예쁘게 앉아계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그래서 이상한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터벅거리며 돌아온다. 일주일은 금새 돌아올 것이다. 재미난 이야기를 들고가야 하는데 일단 오늘은 미루고 쉬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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