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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imist Dec 21. 2020

170519

201120

내가 설계로 밤을새던 어제, 할머니가 집에 오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고모할머니, 고모할아버지와 함께 양양에서 올라오셔서 할아버지를 인천 고모할머니네 요양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그리고 우리집으로 오신 것이었다.

어제 아빠가 할머니가 외로워하신다고 어서오라고 하셨는데, 나는 과제를 몰아서 하느라 일찍 오지 못했다.

하루만에 집에 왔는데, 아빠는 운동하러 가셨고, 엄마는 주무시고, 거실엔 할머니만 계셨다.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내가 오자마자 너무 피곤해서 소파에 발을 올리고 누워있는데, 할머니가 발 마사지를 해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해드리면 잠에 드신다고하셨다. 나도 나른해졌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떨어진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벌써 걱정되고 보고 싶다고 하셨다. 마음이 절절하다고 하셨다. 이런 얘기를 막내 작은아빠와 전화하시다 꺼내셨는데, 작은아빠께서는 지금 상황에서 큰형이 가장 힘들텐데, 큰형 앞에 가서 그런 모습보이면 안된다고 혼내셨다고 했다. 위로를 바랬는데 잔소리 들으신게 이해는 했지만 마음은 조금 서운하셨나보다. 그래서 나는 나한테는 그런 얘기해도 된다고 나한테 하시라고 했다. 할머니는 웃으시며 "그래 너한텐 해도 되겠다" 하셨다.  사실 나도 마음이 무겁지만, 아직은 괜찮다.

갑자기 할머니는 지금 누가 가장 보고싶으신지 궁금했다. 물론, 할아버지 빼고, 그다음으로.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어머니가 가장 보고싶다고 하셨다. 언제 돌아가셨는지 여쭤보니 할머니가 21살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할머니가 77세시니까 56년이나 되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생각하시면 이런 마음이 떠오른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고 하셨다. 그렇게, 할머니의 엄마는 세남매를 홀로 키우셨다고 하신다. 할머니의 어린시절 피난길에 올랐다가 다시 돌아오셨을 때, 대전으로 돌아오셨다고 했다.(할머니는 대전사람이셨다. 할머니가 대전사람인지 처음알았다. 그런것도 몰랐다니.) 그래서 할머니네 가족은 할머니의 친척의 집을 빌려서 살았다고 하셨는데, 그 집이 대청마루도 있고 좀 컸다고 한다. 그리고 마당에 정원도 있었다고 하셨다. 옛 한옥답게 화장실은 밖에 있었고, 화장실 가기 귀찮을 때를 위해 요강이 대청마루에 있었다고 하신다.

어느날 밤, 할머니가 화장실을 가려고 나오셨는데, 그날은 달이 밝았다고 하신다. 얼마나 밝은지 대낮같이 밝아서 아직도 기억하신다고 하셨다. 그때, 할머니의 어머니는 마당에서 식물들에 물을 뿌리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는 엄마가 얼마나 고독하셨을지 생각하셨다. 그 모습이 항상,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난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하모니카나 오카리나가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어릴적 할머니가 하모니카를 갖고계셨던거 같은데, 어디갔는지 지금은 모르겠다. 그냥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지더니 어느샌가 돌아보니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사드리고 싶다. 

 할머니는 하나의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것은 진짜 좋다고 하셨다. 지금은 이렇게 그냥, 흘러가는데로 살아오셨지만 어릴적 할머니는 문학을 좋아하셨고, 문학소녀가 되고 싶다고 하셨다. 이 얘기를 하시는데 할머니의 표정이 참 수줍어 보였다.

할머니의 오빠인, 교문리에 사시는 김동진 할아버지는, 노래를 참 잘하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대전의 방송국에서 노래 담당으로 일하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할머니의 어머니께서 딴따라 해서는 못 먹고 산다고 해서 그만두셨다고 하신다. 그 시절엔 연예인에 대한 인식이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그 후로 이것저것 하셔서 하모니카도 잘 부시고 아코디언도 잘 연주하셨다고 하셨다. 그러다 김동진 할아버지의 부인분께서 빚을 안게 되어 급히 돈이 필요해서, 아코디언을 팔게 되었다고 하신다. 아코디언을 팔고나서도 돈이 필요해서 할아버지는 아는분을 통해 사우디로 가셨다고 하신다.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로 가셨단다.

거기서 돈을 벌고 계시면서도, 아코디언이 너무 갖고싶어서, 쉬는 날마다 가게에 가서 돈벌어서 사야지, 사야지 하시면서 만져도보고 눈으로도보고 오셨다고 하신다. 그러나 가족들 챙기느라 당신의 행복은 사지 못했다고 하신다.

그러던 어느날 사우디의 지부에서 노래자랑을 열었는데, 할머니의 오빠께서 나가셔서 일등을 하셨고, 커다란 전축을 타셨다고 하신다. 그렇게, 아코디언은 없이, 전축을 들고 돌아오신게 기억이난다고 하신다. 사우디에서의 고생으로 자식들을 잘 키워서 유학도 보내고 하셨단다. 

할머니의 오빠에 대한 얘기를 또 들려주셨는데, 절대 싸우지 않았다고 하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문제 없이 행동 하셨고 화도 안내시고 술을 마셔도 싸우는일이 없었다고 하신다. 또한, 신뢰의 아이콘이었다고 하신다. 동네에서 누가 돈을 빌리고 싶을때 김동진 할아버지가 좀 빌려줘어 하시면 할아버지를 믿고 빌려주셨고, 사우디에서 돌아와서 하셨던 오이농장 때도, 남들은 좀 꼬부랑꼬부랑한 것들을 섞어서 팔았지만 할아버지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셔서 오이박스에 김동진 이름만 써있어도 몇천원씩 더 받았다고하신다. 그 분께서는 꼬부랑한거는 꼬부랑한거대로 모아서 덜 받고 팔면되고, 잘 된건 잘 된거 끼리 팔면 된다고 하셨단다.

할머니의 자부심이 대신 느껴졌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나른함에 들어서 꿈같지만 열심히 적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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