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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imist Jan 02. 2021

170614

201130

그저께, 밤을 샜다. 


어제 낮엔 할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엄마아빠는 치료를 받고 집에 가고 계시는 중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심심하다 하셨다. 그래서 옥상에 올라가서 엄마아빠 언제오는지 쳐다보고 계셨다고 한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할머니가 처량해서 마음이 아팠다.


저녁이 되어 학교에서 건축인의 밤 행사를 했고, 나는 멍하니 앉아 구경하다 상을 준다고 이름이 불려 앞에 나가게 되었다. 받는줄 몰랐는데 장학금을 받았다. 나도 받을 줄 모르고 대충 반팔 입고 갔는데, 좀 아쉬웠다. 행사에서 주는 밥을 먹고 집가는 버스에서 기절했다. 좀 더 일찍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행사가 길어져서 생각보다 늦어졌다.


할머니가 계셨고, 엄마는 약을 드시고 누워 계셨고, 아빠는 모기약을 사러나가셨다고 한다.


나는 장학금을 받았다며 자랑했다. 엄청 대단한 건 아니라서 자랑하기 민망했지만 다들 좋아하셨다. 금액이 크지 않고 나는 한 것도 없이 그냥 받은거지만, 다들 좋아하셨다. 작게나마 가족들이 좋아할거리가 생겨서 자랑하길 잘했다 생각했다.


자랑하고나니 슬슬 잠이 왔다. 할머니는 엄마를 위해 샀지만 정작 엄마는 딱딱하다고 안쓰시는 편백나무 베개가 당신한테 딱 좋다고하셨다. 높이도 적당하고 무거워서 베개가 도망가지도 않는다고 하신다.


 아빠는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 잠드셨고, 할머니도 쇼파에서 잠드셨다. 나는 두분께 이불을 덮어드리고, 장학금으로 카메라를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며 검색하다 잠이들었다. 잠깐 깨서는 Y에게 잔다고 얘기하고, 다시 잠들었다. 잠들고나니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깬 아침에는 정말 생생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만 기억이 나는데, 내가 아빠가 되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리 저리로 할머니를 모시고 다니며 할머니의 외로움을 타파할 어떤 것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돌아다닌 건물의 중정엔 호랑이가 있었다. 아마 자기전에 아빠,할머니와 함께 보던 여우와 곰과 늑대가 나오는 '가장의 판타지?' 라는 프로그램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꿈을 꾸는데, 꿈에서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지금 너무 외롭고 심심하시다고, 듣다보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현실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만 깬 채로, 눈을 감고 얘기를 듣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빠와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목소리가 조금 커지셨다.

할머니가 어제 나와 전화하고 옥상에서 엄마아빠를 기다리시면서, 노래를 100곡이나 불렀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하셨다. 내가 괜히 죄송하고 마음이 아팠다. 내가 마음이 더 아팠던건,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셔서 말씀하시길, 지금 제일 힘든건 아빠일 거라고 하셨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아빠 먼저 잘 챙기자고 하셨을 정도로 아빠의 아픔을 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저렇게 얘기하신건 당신의 아픔을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정말 어쩔 수 없이 아빠께 말씀하셨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슬픔이 슬픔을 부르고 있다.


그리고 아빠는 어딘가로 나가셨고, 엄마와 할머니가 얘기를 나누시길, 할머니는 당신한테 딸이 없는 게 아쉽다고 하셨다. 아들들이 잘 해도, 같은 여자로서의 고민이 있는데, 그런걸 못 나누는게 아쉽다고, 그래서 딸이 없는 엄마도 불쌍하다고 하셨다. 엄마가 상처받진 않으셨을까. 내가 좀 더 잘하면 될까.

그렇게 얘기가 끝나고 나는 아주 잠시 잠들고, 다시 깼다. 현실로 돌아와 일어나니, 모든게 꿈인가 싶었다.


할머니에게 갔다가, 엄마에게 가니, 엄마가 우셨다. 모든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계속 미안하다고, 계속 우셨다.

우니까 눈물이 나오고, 코가 나오고, 가래가 나와 기침이 나왔다. 기침 하시면 안 되는데...


원래 운동을 하려고 일찍 일어난건데, 엄마가 우셔서 달래드리느라 저녁으로 미루기로 했다. 엄마를 달래드리고, 주무시는걸 보고 거실로 나왔다. 할머니와 아빠와 식사를 했는데, 아빠가 잘 드시질 않았다. 할머니는 할머니도 억지로 라도 드신다고, 아빠도 억지로 라도 먹으라고 하셨는데, 아빠는 도무지 드시질 못 했다. 아빠는 엄마를 오늘 요양원에 입원 시키셔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아빠도 굉장히 힘드시겠지.


그렇게 집을 나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모두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슬픈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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