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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건아 Apr 10. 2020

노가다가 아니라 건설노동자다!


17년전 경기도건설노조에서 활동할 때 경인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올리기에 부끄럽지만 그 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서 다시 올립니다.


'노가다'가 아니다!


                 경인일보 2003-10-09

 
며칠 전 강남의 124평형 아파드 매매가격이 39억원의 시세를 형성하면서 연초보다 무려 11억3천만원 이상 올랐다는 내용의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작년 그 아파트 신축공사 당시 현장을 방문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당시 현장에서 자신을 '김씨'라고 소개했던 50대 중반의 목수는 “지금은 우리 '노가다’들이 여기서 아파트를 짓고 있지만, 다 지은 후엔 아마도 이 근처에서 ‘노가다’를 볼 일은 없을 것”이라며 “권력층과 부자들만 살수 있는 아파트라 구입할 수 없을 뿐더러 사회에서 천대받는 우리 같은 노가다들이 얼씬 거려 봤자 부랑자 취급만 당하게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스스로를 ‘노가다’라 부르면서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김씨의 말 속에서 건설노동자들의 처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씨는 30년 이상 목수일을 하면서 지은 집이 수십채가 되지만 아직도 월세방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다.

'노가다’라는 말은 원래 일본어 '도카타(どかた·土方)'에서 온 것으로 '공사판의 막일꾼'을 의미하는 단어다. 이것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현재까지 남아 지금은 못배우고 무능력한 사람들이나 인생의 막판에 간 사람들이 가지는 직업을 지칭할 때 사용하고 있다.

건설노동자 스스로도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자'이지, 하루 10시간 이상의 육체노동을 하고 그날그날 받는 일당으로 먹고사는 자신들은 노동자취급도 받지 못하는 일개 '노가다'일 뿐이라고 자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노가다’가 아닌 '건설노동자’이다. 건설노동자라는 말은 우리 국민을 위해 도로, 댐, 아파트 등 건축물을 만든다는 직업의식, 세상에 존재하는 건축물은 자신의 힘으로 만든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우리는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건축물을 생산하는 건설노동자의 삶에 대해 알고자 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건설노동자보다 많이 배우고 잘 살고 있다는 우월감에서 그들을 '노가다'라 부르며 천대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사회일원인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서 그들을 '건설노동자'로 불러야 되지 않을까?

우리는 한 때 연예인을 '딴따라'라 부르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공돌이' '공순이'라고 비하하여 부른 적이 있었지만, 경제·사회적 지위가 향상된 오늘날은 '문화예술인' '노동자'라 부르고 있다. 물론 건설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지금보다 월등히 높아진다면 더 이상 건설노동자들을 '노가다'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가다’들이 건설노동자로 불리는 시대는 아직 멀기만 하다.

필자는 건설현장 방문상담을 하면서 노가다들이 건설노동자로 불리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앞당기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을 많이 보아 왔다. 30년 이상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온몸이 성한 데 없지만 성실하게 일해서 4남매를 모두 좋은 대학에 보냈다고 자랑스러워하던 60대 초반의 철근공 김아무개씨, 온갖 불법과 비리가 판치는 건설현장을 일할 맛나는 현장으로 바꾸기 위해 전국의 건설현장을 누비는 30대 초반의 전기공 임아무개씨, 어려운 가정형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한달 80만원을 벌기 위해 먼지 날리는 건설현장에서 수건 한장 달랑 쓰고 묵묵히 일하던 아주머니들….

우리가 조그만 관심을 가져주고,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노가다'가 아니라 건설노동자로 바라 볼 때 이들도 늙어서 조그마한 집 한 채 가질 수 있는 세상이 보다 빨리 오지 않을까?


/이영록(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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