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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해나 작가 May 18. 2023

드라마 작가? 고통스럽지만 사랑합니다.

드라마 교육원 시절의 흑역사 이야기




이전 발행글에서 드라마 작가 야심에 취해 기본을 간과했다는 고백을 했었다. 부끄럽지만, 그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나의 이 흑역사의 고백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방송작가 협회 기초반 합격 후,  나의 희망찬 하루하루는 시작되었다. 보통 오후까지 작법서와 과제들(주로 동기들의 합평 작품들 분석)을 하고,  남편과 아이들이 먹을 저녁준비를 해놓고, 여의도 교육원으로 출발했다. 교육원까진 꽤 거리가 되었지만, 지하철 안에서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생각나는 아이디어들을 메모하며 환상적인 날들을 보냈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오는 수강생에 비하면, 아주 양반이었다 나는;)


그리고, 그 당시 풋내기의 나는 생각했다. 김은숙 작가님처럼 곧 시대가 알아주는 작가가 되겠노라고. 그랬다. 근자감이 하늘을 찌르고, 모든 것이 해맑았던 나의 그때 그 시절. 기초반 수강을 무사히 마치고 연수반을 합격해 연수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허나, 기초반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서로를 향해

찌르다



연수반의 합평 시간은 더욱더 과열되었고, 급기야 어떤 수강생은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시간이 아까워 죽는지 알았다. 회사 다녀와서 쪼갠 시간이었는데 너무 화가 난다."는 개인 사적 감정을 담은 울분을 토해내기도 해 수업시간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정말, 총과 칼만 안 들었지, 서로를 향해 겨눴다. 물론, 2할의 배려와 존중도 존재는 했다. 하지만, 8할은 살벌했다. 어떤 수강생은 타인의 작품에 울분을 토해내고, 가차 없이 비판하더니 정작 자신의 작품 합평일엔 증발해 버렸다. 두려워서였을까? 본인에게 쏟아질 화살들이. 이건 지금 생각해도 좀 치사했다.


암튼, 그래도 다행히 나는 사부작사부작 적응을 해나갔고, 다행히 내 작품 합평 시간엔 인신공격성 합평 없이 무난히 넘어가긴 했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그래도 혹평은 혹평이었다. 진물이 나는 상처에 알코올을 부어대듯 쓰라렸다. 합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나는 한없이 작아지곤 했는데, 이때는 내 자식 같은 작품에 흠집을 낸 타인에 대한 적개심이 몽글몽글 생기다, 나 자신의 작품을 돌아보기보다 타인의 평가에 손가락질을 해댔다. 솔직히 시간이 지나 지금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이 근자감만 있어가지고, 좀 겸손하지 못했다. 솔직하지도 못했고.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에 대해 나는 사실 무식자였다. 하루는 강사님께서 질문을 주셨다 나에게.



"박해나 작가는 드라마 좋아해요? 많이 봤어요?"


"아뇨! 많이는 못 봤지만 좋아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나의 대답. 뭐가 당당하다고 눈을 똘망히 뜨고, 자신 있게 얘기했을까? ( 작가님의 방향 잃은 동공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당시 넷플릭스가 활성화되기 이전, 김은숙 작가님의 팬이었던 나는 '시크릿 가든', '파리의 연인'만 정주행 했을 뿐, 여러 장르의 드라마라든가, 인기 드라마들을 정주행 하지 않았다. 보다가 말다가 순전히 내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드라마를 많이는 못 봤지만, 좋아한다는 내 고백의 순간은 그렇게 흑역사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만큼 난 드라마 세계를 만만히 생각했던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 가지고도 충분히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영역이라고 오만하게 생각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그래도 전교에서 크고 작은 백일장에서 상도 받았으니 해낼 수 있다고 정말 착각했다. (나는 몇 년 동안의 무수한 실패들을 맛보고서야 그 시절의 나를 몹시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흑.)


그래서 혹시나 드라마 작가를 준비하려는 분들이 있다면, 꼭 조언을 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7년 차 실패 경험자로서 말이다. 일단, 무수히 많은 드라마를 꼼꼼히 보고, 스토리 구성에 익숙해지면서 작법서를 함께 공부하라고. 열정 하나 갖고 도전하기엔 이 세계는 생각보다 무시무시하고, 많은 좌절을 안겨주는 곳이니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실패할 각오로 진입하라고 조언을 하고 싶다. (물론, 1-2년 안에 당선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 실력이나 총알이 준비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현장 투입은 더욱더 잔인한 시간들을 안겨준다.)



살인적 확률의 지뢰밭

그래도 고!



이 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이다. 실패의 지뢰를 밟고 엉엉 울다 겨우겨우 넘어가면 또 실패의 지뢰가 밟히는 그런 곳. 공모전을 통과해야 비로소 드라마 작가라는 타이틀을 쥐게 되는데, 이 코스를 통과하는 이는 수천 명 중의 5명 정도다. (물론, 비공식적인 루트로 진입하기도 하지만, 공모전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확실하기에 대부분 지망생들은 공식적인 공모에 도전한다.) 살인적인 확률에 늘 도전해야 하니 체력관리 정신관리 단디하고 들어오시길!! 이제는 교육원 전문반을 수료하고, 홀로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당선의 전화는 울리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드라마 대본 쓰기를 사랑하고 지속 중이다. 사랑해야 한다. 이 일에 미쳐야 한다. 그래야 존버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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