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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berMist Feb 12. 2023

그렇게 6시간 비행 내내 울었더랬다

두드리는 자에게 고생문이 열린다 Luke 11:9

어린 시절 아빠는 해외 출장이 잦았고, 돌아오실 때마다 방문한 나라의 초콜릿을 한 상자씩 사다 주셨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져 보이고, 세상 쿨한 직업으로 보이던지... 막연하게 나도 출장을 다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출장을 넘어서서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딱히 공부를 열심히 했다거나 관련된 준비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딱 한 가지... 영어공부 만큼은 비록 조금씩일지라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직장에서든 친구들이든 나를 아는 모든이들이 내가 영어에 관심이 있고 항상 영어책을 들고 다니는 것을 알 정도로 적어도 강도는 낮았을지라도 꾸준히는 했다. 돌아보면 이 자세는 아주 중요했고, 기회를 잡는 큰 역할을 했다.


출장이나 영어 활용의 기회가 그리 흔하지는 않았던 당시의 직장에서 다국적기업으로 미국에 본사가 있는 굵직한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위해 영어 능력이 있는 내부 인력을 선발하는데 많은 선배들이 나를 떠올렸던 것이다. 당시 내 영어는 중급의 독해와 초급의 작문과 리스닝 정도가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사실 해당 프로젝트에서 기대하는 것보다는 미흡한 영어실력이었다. 하지만 저지르고 보는 용감한 성격인 나는 망설임없이 업무에 지원했고, 당시 결정권을 가졌던 상무님도 내 영어실력보다는  나의 업무실력과 적극성을 높이 평가해서 프로젝트에 넣어 주셨다. 덕분에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싱가포르 교육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생애 첫출장! 얼마나 설레었는지 거진 20년 정도 지난 일인데도 그때의 싱가포르 공기와 비행기 좌석이 기억난다.


문제는, 참석했던 교육이 생각했던 것보다 낮은 실무경험과 높은 영어실력을 필요로 하는 내용이었다는데에 있었다.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도 잘 모르겠는 정도로 배운 내용에 확신을 갖지 못한채 교육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은 순간, 알 수 없는 허탈함, 서러움 등이 복받쳐서 6시간 비행 내내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정말 영어를 잘해서 꼭 다시 오겠다고... 그때는 싱가포르에 잡을 구해서 정착하러 오겠다고... 눈물이 범벅이 된 채로 쓰던 그날의 노트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서 나는 결국 5년 후 돌아오기는 했다. 비록 바라던대로 잡을 구해서는 아니고 잡을 구하러 돌아오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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