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정도면 어느정도 구직에 대한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은 나의 대단한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이전 회사의 도움으로 싱가포르 커리어 관리 컨설팅 회사의 자문을 받고있었고, 그 곳에서 오피스 공간과 시설을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해준 덕분에 이력서와 서류, 인터뷰 등을 준비하는데는 큰 차질이 없었다. 문제는 내가 유학이나 해외주재 업무 경력 등이 전혀 없었던데다 영어가 아주 유창하지는 않았다는데 있었다. 한국에서 쌓았던 10년 정도의 관련분야 경력 인정받으며 지원할 수 있는 포지션들은 대부분 팀을 이끌거나 인력관리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싱가포르 현지 경험도 없고, 리더로서의 소양을 충분히 발휘하기에는 영어가 미흡했던것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어느 정도의 퇴보(?)는 감수해야 기회가 와도 올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먹고나니 컨설팅펌에 연계된 리쿠르팅 업체에서 추천해준 포지션중에서 지원하고 싶은 자리가 있었다. 한국에서의 10년을 모두 인정해주는 경력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주니어급 포지션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적어도 앞으로의 경력에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을듯한 자리였다.
지원 후 싱가포르 현지 직속 매니저 인터뷰, 동료(peer) 인터뷰, 화상을 통해서 미국에 있는 매니저의 매니저 인터뷰, 나랑 1차 인터뷰 직후 산휴를 가버린 현지 직속 매니저 백업으로 싱가포르에 와있던 유럽 매니저 대면 인터뷰까지 거치는데 5개월이 더 걸렸다. 인터뷰 1라운드 넘어가는데 1달씩 걸린 셈이다. .. 이제서야 왜 해고 보상금 (달리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영어로는 severance package) 을 6개월치를 주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직에 그 정도 시간은 걸릴 것임을 감안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다시 3개월 단기 렌트를 찾아 옮겨야 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혹시 하는 마음에 인터뷰 중이던 회사가 위치한 센트럴 지역으로 집을 구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일자리 구하느라 너무 피가 말라서 미쳐 깨닫지 못했지만 일자리도 없이 두번이나 비교적 상식적이고 배려심있는 임대인을 만나 안전하고 깨끗한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이지 큰 행운이었고 신의 보살핌이 있었던 것 같다.)
11월이 지나고 12월이 시작될때까지도 기다리던 잡오퍼는 오지 않았다. 점점 더 두렵고 고통스러워졌다. 이러다가 결국 잡도 못 구하고 빈털털이로 오갈데도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갖가지 상상과 번민으로 눈물 흘리며 날이 밝아오는 것을 지켜보던 날이 허다했다. 매일 밤 내방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풀장을 바라보며 제발 해가 바뀌기 전에는 꼭 싱가포르에 정착하게 해달라고, 내가 그렇게다시 오고 싶어했던 이 곳에서 가장 원치 않는 모습으로 버티다가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가게는 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가 1주일 남은 무렵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던 잡오퍼가 왔다! 인사팀 전화가 왔을때, 오차드에서 예전회사 동료였던 A를 만나고 있었는데, 전화를 끊자마자 A를 끌어안고 소리를 지르며 폴짝폴짝 뛰어서 주위 모든 사람들이 다 쳐다보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해냈다... 유학 경험도 없고, 해외 경험도 없고, 영어도 미흡한데 그저 경력만 믿고 용감 무식하게 덤비고 버틴 내가... 진짜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