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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시 Jul 05. 2022

광기: 행복을 위한 용기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돈키호테』. 열린책들(2014)

  말라깽이에 비실해보이는 노인이 제 몸보다도 더 무거울 것 같은 갑옷을 입고 풍차를 향해 맹렬히 돌진한다. 풍차를 거인이라고 굳게 믿으며 전투에서의 승리로 무훈을 세우겠다는 웬 미친 노인네의 이야기를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서 다음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도스토옙스키를 포함한 거장들의 칭송을 받는 명성에 (내가) 힘을 얻어 드디어 『돈키호테』를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1700여 쪽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과 당시의 너무도 후진 여성관이라는 장벽만 넘는다면 우리는 모두 돈키호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돈며들 것이다'


  정말이지 그는 이제 분별력을 완전히 잃어버려, 세상 어느 미치광이도 하지 못했던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명예를 드높이고 아울러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일로, 편력 기사가 되어 무장한 채 말을 타고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읽은 편력 기사들이 행한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실천해 보자는 것이었다. 모든 종류의 모욕을 쳐부수고 수많은 수행과 위험에 몸을 던져 그것들을 극복하면 영원한 이름과 명성을 얻을 것이라고 여겼다. (1권 69쪽)


  돈키호테는 기사소설에 심취해 기사의 삶을 동경하며 실천하고자 한다. 화가의 모방을 예로 들며 소설 속 편력기사들의 행보를 따라하는 것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하기도 한다. '실행이 늦어질 수록 세상이 입을 손실이 크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1쪽 74쪽)'라며 세상의 중심에 자신이 있음을 믿는 돈키호테의 자의식은 경악을 넘어 존경심까지 들게 한다. 이 인간은 뭐하는 인간이지? 라는 갸웃거림과 함께 책장을 넘기다 보면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이야기에 속절없이 빠져들게 된다. 기사도의 측면에선 이렇게 미칠 수 있을까 싶은 사람이 다른 부분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그 이상의 분별력과 지성을 보이는 전환에 감탄하며 말이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행위의 자식이니라."
"그건 그래요. 하지만 제 주인은 대체 어떤 행위의 자식이기에 제 급료의 땀과 수고를 모른 척하는 걸까요?"(1권 93쪽)


  아멘! 읽자마자 맞장구를 쳤더니 산초가 분위기를 깬다. 얼마나 웃었는지.

  옳고 그름의 도덕적인 판단을 떠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목표와 신념을 갖고 행동한다. 가치가 부딪칠 때엔 대화를 통해 상대의 가치를 존중하고 배우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이 믿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향해 맹렬히 달린다. 사랑의 약속을 상대가 지키게 하기 위해, 또는 원치 않는 사랑을 떨쳐내기 위해, 쫓겨나는 처지에도 살고자 하는 곳에 정착하기 위해 등 반짝이면서도 단단한 이들의 열정은 결국 원하는 형태의 삶을 쟁취한다.

  사람의 가치는 학력, 직업, 재산 혹은 그가 내세우는 고귀한 이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결국 결정하는 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다르겠지만 인간이 인간을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 언어와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들, 우린 결국 그런 것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우리 역시 그런 것들로 타인의 눈에 비춰지고 있다.

  법정스님께서 하신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어떤 모습으로 삶을 꾸려갈 것인가 고민하지 않는 이의 자식은 그야말로 방치의 결과일 것이다. 운이 좋아서 잘 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그래서 항상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이를 내면에 체화하여 실천으로 거듭나게 하는 인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니 내 친구 산초여, 지금껏 보지 못한 참으로 희귀한 것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이 흉내 내려는 일을 말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게나." (1권 356쪽)


  당시 편력기사들은 좋은 가문의 부유한 이들만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주인공 돈키호테는 가난하고 늙어 당시 세상의 기준에서는 편력기사가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편력기사를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사소설에 심취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광기를 가져 풍차를 거인으로 보고, 객주집을 성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걸까? 돈키호테의 광기를 웃음거리로 넘기던 중 위의 대사를 읽었을 때 멈칫했다.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이 흉내 내려는 일'

  위대한 기사의 전철을 밟겠다는 의미로 흉내낸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사실 돈키호테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철저하게 현실을 외면하고 광인의 모습으로 편력 기사를 흉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광인이라는 평가는 알론소 키하노라는 사람의 평판을 바닥을 치게 하겠지만 그 자체로 사회의 요구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오롯이 자신이 하고 싶은 모습을 실천할 수 있게 한다. 이전의 삶에서 느끼지 못했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돈키호테는 기꺼이 광인의 모습을 택한 것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정여울 작가의 『헤세』에 이런 말이 있다.

  나만의 꿈을 향해 조금씩 다가오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그것이 '외로울 용기'와 '가난할 용기'라고 생각했다. 타인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외로움, 그리고 남다른 꿈을 오직 내 힘으로 실현하기까지 필연적으로 견뎌야 할 가난. 그 두 가지는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부딪치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꿈, 즉 진정으로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꿈을 위해 외로울 용기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한편 지울 수 없는 이물감이 있다. 편력기사의 길을 걷는 귀족들은 명성과 사랑을 원하고, 이를 위해 험난한 모험을 찾아 위험한 적들과 맞서 싸우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그냥 남을 돕는 것은 폼이 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발로 뛰며 나의 베풂과 멋짐을 돋보이게 할 스토리텔링을 만든다. 더 큰 만족과 행복을 위해 결핍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삶의 유지라는 최전선에서 싸우는 이들에게 이 모습은 얼마나 잔인한 사치로 느껴질까. 꿈과 희망, 행복을 전하는 기사들의 모험담은 그런 삶을 실천할 수 없는 사람들의 대리만족이자 가시같은 이물감이다.


"나도 운명으로 편력 기사도를 수행하는 한 사람이 된 이상 내가 해야 할 일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면 모두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방금 내가 사자에게 도전한 것도 너무나 무모한 일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었던 겁니다. 왜냐하면 나는 용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비겁함과 무모함이라는 극단적인 두 악덕 사이에 놓여있는 미덕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입니다. 용기있는 자는 비겁함으로 내려가 그 한계에 접하는 것보다 무모함으로 올라가 그 한계에 이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욕심쟁이보다 낭비가가 관대해지기 훨씬 쉬운 것과 같은 이치로, 무모한 자가 진정으로 용기 있는 자가 되는 것이 비겁한 자가 진정한 용기로 오르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2권 235쪽)


  모험 초반 편력기사의 기사도에 심취했던 돈키호테는 우연히 주인에게 매맞는 소년을 목격하여 그를 구한다. 하지만 세상을 순수하게 바라보던 돈키호테의 믿음은 소년에게 더 큰 화를 입혔고, 도움을 준 소년에게 저주의 말을 듣는다. 상대방의 상황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은 배려없는 도움은 오지랖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마음 한 구석에선 그를 위로하고 싶었던 마음이 위의 구절을 보고 이해가 됐다. 지탄받아 마땅할 행동이었지만 남을 돕고자 한 선의마저 짓밟힌다면 세상에서 누가 기꺼이 남을 도우려 할까. 너무도 복잡한 세상에 완벽함이란 기대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지식과 경험을 통해 더 나은 걸음을 걷고자 한다면 첫 발을 떼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비겁함보단 무모함이 용기로 이를 수 있는 길임을.


  "물러나는 자는 도망가는 게 아니야. 왜냐하면 산초, 잘 알아 두게. 신중함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용기는 무모함으로 보며, 무모한 자가 이룬 무훈은 그의 용기라기보다 오히려 요행으로 인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지." (2권 360쪽)


  이 대목에서 돈키호테의 성장을 엿볼 수 있었다. 비겁함보단 무모함에서 용기로 이르기 쉽지만, 그 다음 단계는 신중함을 기반으로 한 것이 용기임을. 무모함과의 차이를 인지하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 것이 아닐까? '변덕'보다 '변화'라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나리. 물러나는 것은 달아나는 것이 아니며, 위험이 희망을 앞지를 때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분별있는 행동이 아닙니다요. 지혜로운 자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삼갈 줄 알고, 하루에 모든 것을 모험하지 않습니다요." (1권 322쪽)


  돈키호테 못지 않게 매력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그의 종자인 산초 판사.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다 보면 섬의 통치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그의 여정에 함께 하지만 특유의 넉살과 수다스러움을 온갖 속담과 버무려 표현하기 때문에 돈키호테의 눈총을 자주 받는다. 돈키호테때문에 흠씬 두들겨맞기도 하고, 때론 광기를 역으로 이용해 제 주인을 속여먹기도 하지만 돈키호테와 산초는 서로를 향한 믿음과 존중으로 서로를 보호하며 모험을 이어간다.

  산초에게서 종종 나오는 허를 찌르는 현명함은 낮은 신분에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도 덕과 지혜를 갖출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혈통은 계승되는 것이지만 덕은 획득하는 것이며, 덕은 그 자체만으로도 혈통이 가지지 못하는 가치를 갖기 때문이라네.(2권 513쪽)'라고 말한 돈키호테와 산초는 그 말대로 혈통과 신분, 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기꺼이 생각을 나누며 영향을 주고 받는다. 돈키호테를 위해 그의 모험을 저지하려는 친구들과는 또 다른 관계를 보여주는 산초. 광기로 비춰지는 이상을 공유하는 그들의 관계는 서로에게 얼마나 큰 충족감을 주었을까.



  『돈키호테』의 가장 훌륭한 점은 유머이다. 유쾌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모험의 연속, 살아있는 듯 저마다의 모습과 목소리가 그려지는 생생한 인물들, 멋들어진 말로 기대감을 일으켰다가 광기의 결말로 혼을 쏙 빼놓는 돈키호테는 도저히 책장을 놓을 수 없게 한다. 특히 산초 특유의 '멕이는 화법'은 취향 저격. 실제로 처음 책을 읽었던 바에서 참지 못한 채 육성으로 웃음을 터트려대니 사장님이 다가와 무슨 책을 읽는 거냐고 궁금해하셨다. (스튜디오 포비피엠 사랑합니다)

  유머와 과장은 독자의 경계심을 무너뜨린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해도 훈수라고 느껴지면 마음에 와닿지 않고, 내 치부를 건드리는 말이라면 지난 날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 일으켜 끊임없는 자기반성이나 자기합리화에 갇히게도 한다. 인간의 삶, 그것을 살아내는 나 자신을 대면하게 하는 말들은 모순적이게도 유머와 과장을 통해 충분한 거리를 가졌을 때 부담없이 다가온다. 이러한 거리두기는 감정과 성찰에 머무르기 보다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에 집중하게 한다. 그래서 작품에 묘사된 삶의 모순적인 순간들에도 기꺼이 방황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원작에 대한 애정과 노력이 여실히 느껴지는 번역에 번역가님마저 덕질하고 싶어질 정도. 정말 훌륭한 번역에 불편함 없이, 너무도 즐겁게 이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400년 전의 외국 소설을 읽는 데 느낄 수 밖에 없는 언어와 문화, 배경지식의 차이를 교수님의 훌륭한 번역과 주석이 메워준다.

  『돈키호테』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번역가이신 안영옥 교수님의 해석이나 강의 영상을 추천한다(내 취향은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책을 먼저 읽은 후 관련 정보를 찾고, 다른 사람의 해석과 나의 생각을 비교하는 것이다).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신 번역가님께서 유튜브채널 '플라톤아카데미TV'의 <8대 고전읽기> 시리즈 중 하나로 50여 분의 강연을 해주셨는데 작품이 쓰여진 시대상황이나 작가의 인생,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의 해석을 재미있게 소개해주신다.

https://youtu.be/uEv71KZYa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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