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시 Jan 01. 2024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시간의 흐름을 가장 여실히 느끼는 때가 바로 이 맘때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며 오고가는 인사 속에 스스로를 평가하고 반성하고 슬퍼하다 기쁘기도 한 희노애락의 체험판 같은 날.

  그래서 12월 31일엔 교회를 간다. 한 해 중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간다. 올해는 일이 많아 주말출근까지 불사해야했지만 고민 끝에 왔다. 한 밤의, 잠시 불을 끄며 모두가 고요함 속에서 기도를 올리는 그 온기를 놓칠 수 없다. 늘 사랑과 믿음을 말하는 교회이기에 희노애락의 날에 위로가 된다.


  사랑하는 것을 만들어야지. 어렸을 땐 사랑이 넘쳐 흘러 괴로웠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하는 것이 없어서 힘이 든다. 먹는 것, 입는 것, 노는 것들은 순간의 기쁨에 그치고 공허한 외로움은 공기처럼 내 자리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사랑을 받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는데, 사랑을 잘 받기 위해서도 또 사랑을 받는 것보다도 더 큰 행복임을 알기에 사랑을 주는 것이 행복에 있어서는 더 필요하다. 갈 곳 없는 영혼의 목적지이자 방향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을 주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이 아름답다는 말은 사랑을 나눌, 사랑이 필요한 (모든 생명을 포함한) 이웃이 많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고, 사랑을 주는 것은 언제나 어렵고 위축이 든다. 나의 사랑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어서, 외면받고 거절당할까봐. 그렇게 고인 채 흐르지 못하는 나의 사랑.


  글을 쓰던 지금, 회개의 기도 시간이 되었다. 옆에 앉은 엄마는 무엇을 회개할까. 어린 딸에게 볼을 꼬집히는 아버지는, 몸을 앞뒤로 조용히 흔들며 마스크 속에서 입을 벙긋거리는 할머니는, 모두들 무슨 기도를 올리고 있는 걸까. 이 많은 사람들, 세상의 무수한 사람들은 새해를 많이하는 그 순간에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모든 생명들은 이 버거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딱 한 가지만이라도 사랑을 실천해보고 싶다. 글을 쓰다보니 문득 올해의 목표가 생긴 것이다. 어쩌면 글쓰기도 사랑의 행위인 것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지하철 1호선>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