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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시 Jul 22. 2022

이 책 한 권만 제대로 읽으세요.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이소노미아(2022)

  지난 시즌 독서모임을 가장 감동시켰던 도서는 (아마) 모두가 동의할 『자유론』이었다. 160여 년 전의 철학자가 하는 말이 어떻게 이렇게나 와닿을 수 있을까.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자유가 당연해지지 않았고, 다양한 층위에서 논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밀선생은 우리가 붙인 별칭대로 우리의 스승이 되었고, 지극히 사랑하며 존중하고 그의 연구와 업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아내 해리엇 테일러 밀과의 공동 업적인(학자들은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종속(1869)』은 꼭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이런 『자유론』을 쓴 밀선생이 여성에 대해서 뭐라고 했을까. 그 이성적 사유와 탁월한 논리가 (다소 복잡한 구조의 문장으로) 빛나는 스승들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니!

 * 『여성의 종속』이전에 해리엇 테일러 밀은 『Enfranchisement of Women(1851)』을 저술함


  서병훈 교수님의 번역도 좋았지만 밀선생 특유의 복잡한 문장과 처음에 이론 냅다 던지고 뒤에 각종 사례와 비유로 납득시키는 구조에 얻어맞은 직후라 약간 머뭇거리며 동경만을 품고 있던 그 때, 평소 팔로우하고 있던 읽는페미 계정(@reading.femi)에서 도서나눔 이벤트를 진행했다. 출판사 이소노미아(@isonomia6)에서 2022년 5월 정미화 번역가님을 등에 업고 출간을 하고, 6월에 두 곳이 함께 협업하여 도서나눔 이벤트를 진행한 것이다. 진짜 너무 소름돋는 우연인 게 6월 18일에 『자유론』독서모임하고 뽕에 차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6월 22일에 이벤트가 올라온 것!! 운명이구나 싶어 얼른 신청했고,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서평이나 후기 의무는 1도 없었지만, 읽다보니 모든 구절 구절 구절을 다 밑줄 긋고 필사하고 낭독하고 싶은데 미천한 글이라도 남겨놔야지ㅠㅠ 하는 마음에 열심히 읽고 브런치로 달려왔다.

(첫 문장부터 전율을 일으키는 밀 선생과 개인적으로 서병훈 교수님보다 조금 더 이해가 잘 갔던 역자님의 번역이 시너지를 일으켜 이코노미아에서 역작을 만들었다. 다들 제발 사서 읽으세요. 버릴 문장이 없습니다.)



  밀선생의 글은 에세이이고, 이를 분명하게 밝힌다. 일반인들이(일반인과 높은 수준의 지성인을 명백하게 구분하는 밀선생) 이해하기 쉽도록, 즉 일부 지성인들에게 한정되지 않고 대중에게 통용되는 논리로서 전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글을 썼다. 그리고 『여성의 종속』은 이렇게 시작한다

현재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원리, 즉 한쪽이 다른 한쪽에 법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상태는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며, 인류의 발전을 저해하는 중대한 장애물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평등의 원리로 대체되어야 하며, 한쪽에 권력이나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다른 한쪽도 마찬가지의 조건을 적용해야 합니다.(16쪽)

  밀선생은 인류의 절반에 해당하는 여성의 자유를 빼앗고 사회 진출을 막는 것은 인류 전체 차원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노예제나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던 당시 사회분위기에서 성별로 자유를 빼앗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모순적인 현상인데, 논리적인 사유의 결과나 토론을 통한 정당한 합의여서가 아니라 그저 인류 역사가 처음부터 불공평한 권력 관계를 만들었고 이를 묵인하고 이어가려는 대중의 "감정적인" 반응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감정을 야만적인 면모라고 이야기하면서.


  이 저서는 '여성의 종속'이 주제이기 때문에 결혼관계에 있는 여성과 남성이 중심이 된다. 하지만 연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억압되었다는 주장에 "여자들한테 누가 화장하라고 했어? 집안일 하라고 했어?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선택한 건데 그게 어떻게 억압이야?" 라고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밀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여성은 그 지배자가 실제 복종하는 것 그 이상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종속 계층과는 매우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남성은 단지 여성의 순종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정서까지도 지배하기를 원합니다. 아주 잔인한 부류가 아니라면, 모든 남성은 자신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여성이 강요에 의한 노예가 아니라 자발적인 노예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저 노예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남성은 여성의 마음을 노예처럼 복종시키기 위해 실행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합니다. (48쪽)


"여자랑 남자는 애초에 본성이 다른데 본성을 거스르는 게 맞다는 거야? 타고난 성향이나 성격의 차이가 있어서 그게 자연스러운 거잖아!"

  이성적 사유와 논리, 대화를 통해 설득하려는 밀선생답게 이 모든 말에 구구절절 처음부터 끝까지 옳은 말로 설명한다. 성별에 따른 본성(성향)의 차이라는 주제는 몇년 전 제자와의 이야기에서도 나왔지만 나역시 정말 생물학적 차이에 따른 본성의 차이가 있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지만 밀선생은 여성만 사는 세상이나 현재와 반대인 여성과 남성의 권력구조인 사회였어도 여성들이 지금과 같은 본성을 가졌을 것 같냐고 물으며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나 역시 동의한다. 과연 모든 여성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이걸 갖고 태어난 것일까.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사회에서 이렇게 학습된 것이기 때문에 본성처럼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일은 사회에 필요한 일이다. 강요하지 않으면 여성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강제적으로 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이 주장의 진가는 아주 분명합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루이지애나의 노예 주인들의 생각이 바로 그러니까요. (74쪽)

  익숙하지 않은가. 우스갯소리처럼 저런 말을 내뱉는 인간들이 있는데, 정말 뜬금없는 개소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 갖고 있는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이 깔려 나올 수 있는 소리다. 그리고 밀선생은 이것이 노예 주인들의 생각이라고 말한다. 밀선생은 징병제를 언급하며 징병제는 노동의 대가를 훔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어떤 노예도 아내만큼 오랜 기간을 노예라는 단어 뜻 그대로의 처지에 놓이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 옛날 노예제가 있을 때에도 여성 노예는 주인의 성적 요구를 거부할 권리가 인정되었지만 아내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내가 원치 않는데도 아내이기 때문에 남편의 잠자리 요구를 거부해서는안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많은 남성들에게 자연스럽게 내재되어 있는지 안다면 남자에게 종속된 여자의 처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이 쓰인 건 여성의 참정권도 보장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게 현재 성차별주의자들의 주장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옛날이나 심각했지, 지금은 뭐가 불평등하다고 그러는 거야. 오히려 여자들이 남혐하고, 여자들이 더 살기 좋은 나라잖아?" 애초에 결혼을 통해 여성이 종속될 수 있다는 건 그 사회에서 모든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예전보다 일부분에서 조금 나아졌다는 것이 현재의 여성 권리를 주장하는 페미니즘을 막을 이유는 되지 못한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여성만 살아남자는 것이 아닌데, 동등하게 함께 산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람들은 자신이 쥐고 있는 그 알량한 권력을 놓고싶지 않은 것이다. 정말 알량하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고, 옮겨적고 싶은 말을 다 옮겨적다 보면 저작권에 걸릴 것 같아 『여성의 종속』 후기는 여기서 마무리한다. 제목에도 썼지만 이 책 한 권만 제대로 읽으면 어지간한 문제에 대해서 생각이 트이고 말이 정리될 것이다. 밀선생은 늘 문장이 어려워서 그렇지 내용은 안 그러니 시작의 벽만 무사히 넘겨 끝까지 감동과 깨달음으로 가득 찬 해리엇과 밀의 이야기를 달려보자. 그리고 여성들이 더 많이 자유롭게 욕망하길 바란다.


마지막 편집자들의 대화 중 코디정님의 말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감정적 분노도 이성적 분노도 함께 오래도록 앞을 향해 나아갈 여성들을 위해.

"우리는 감정으로 분노할 수 있지만, 이성으로도 분노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금방 휘발되고 다른 감정을 지닌 사람에게 옮겨 가지는 않지만, 후자는 오래도록 꺼지지 않으며 사건을 해결해 냅니다."



* 226쪽 6번째 줄에 '열중하는 하는' 이라는 오타가 나있다. 앞에도 한 군데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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