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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리 Apr 11. 2023

저녁 밥상

붉은 하늘 노을 밥상

"애들아~밥 먹어라~!!!!"

우리 엄마는 목청도 좋으시다

'밥'에 유독 힘을 실어 넣으며 '애들아'보다 더 크게 외치셨었다.

엄마의 이 외침은 동생과 나에게는 '그만 놀아라'의 신호이자 노느라 정신팔려 고장났던 배꼽시계가 다시 재깍재깍 움직이게 하는 자기장이었던 것이다.


"내일 다시 놀까?"

"밥 먹고 와서 다시 놀면 안돼?"

"밥 먹고 나면 엄마가 숙제하고 자라고 할건데."

"그리고 깜깜해서 못 놀겠다..그냥 챙기고 가자."

진짜 쿨하게 후다닥 챙겨 버린다


결국 엄마의 외침이 아닌 깜깜해진다는 이유로 소꼽장난감을 그물망 바구니에 마구 담아 버린다. 잠깐의 엄마 모드로 나뭇잎을 넙적한 돌 위에 놓고 빻아서 만든 나물 반찬과 공기에 수북히 담긴 거무잡잡한 모래는 잡곡밥이 되어 있었고 반찬이 부실할까 나뭇가지 여러개를 기다란 그릇에 담아 놓고 생선이라고 명명해 주었으며 자갈들이 담긴 종지는 콩자반이 되어 있었다.


세 가지 반찬이면 훌륭하다며 코맹맹이 소리를 내면서 "여보오옹~~출출하시죠? 빨리 식사하세요용~"이라고 말하는 꼬마 엄마와  "어디 한번 먹어볼까?"하며 굵직한 목소리를 흉내내며 음냐음냐 먹어대는 시늉을 내는 꼬마 아빠!


정작 우리 엄마 아빠는 저렇게 말을 안 했는데..우린 왜 저런 목소리와 표정을 어디서 보고 따라한 것일까?

엄마는 컷트머리에 최대한 힘준 퍼머를 해야 했고 아빠는 통 넓은 정장 바지에 어깨뽕이 들어간 자켓을 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 그때의 우리들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잠시의 꼬마 엄마와 아빠가 되었던 아이들은 해가 기울어지는 붉은 하늘 아래 노을 밥상을 앞에 놓고 그렇게나 냠냠쩝쩝 하하호호 하며 먹는 시늉으로 소꼽놀이를 했었더랬다.



그물방 바구니는 마당 한켠에 던져 버리고 신발은 힘차게 신발던지기를 하듯 하늘 높이 솟아오르게 차버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나게 주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손이 얼얼해지는 것도 모르고 추위에 놀던 우리는 나뭇가지 생선대신 윤기 좔좔 엄마표 고등어와 자갈보다 더 작고 볼록한 콩자반과 돌맹이로 빻아 만든 초록 나물대신 들기름향에 어우러진 짭조름함이 매력인 깻잎순나물을 연실 입속으로 가져다 들여 앉힌다. 자연에선 없었던 미역국은 추위에 빨개진 얼굴을 뜨끈하게 데우면서 숙제 따윈 생각하고 싶지 않을만큼의 졸음을 몰고 온다. 


엄마가 담아준 고봉밥을 다 먹었다.

아빠는 밥을 많이 먹어야 키가 큰다고 말씀하셨었다. 그래서 온 가족이 먹던 저녁밥상의 내 밥그릇은 장녀라는 이유로 아빠의 밥그릇과 같은 크기였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내가 밥을 상당히 많이 먹고 있단 것을 깨달았으나 아빠 덕분에 키가 반에서 제일 커져 있었다! 새삼 아빠가 고맙고 고봉밥이 고맙다.


저녁밥상.

동심 가득했던 여자아이 두명이 손 트는 줄 모르고 만들었던, 그야말로 자연에서 얻은 밥과 반찬으로 만든 돌상에 차린 진수성찬을 붉은 하늘을 지붕삼아 노을을 시간 삼아 그리고 너무나 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으로 깔깔대던 추억. 지금의 아이들은 상상도 못하는 우리들만의 아련함.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의 저녁 밥상을 차려 주며 말한다.

"오늘 많이 힘들었지? 맛있게 많~이 드시와용~~"

아이들은 오늘따라 다른 말투의 엄마를 보며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본다.

나는 해맑은 미소로 답한다.

그 붉은 노을아래에서 우리가 바라보고 웃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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