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왕의 경주에서 내려오는 법

속도가 지운 풍경을 다시 줍는 용기에 관하여

by 코사인 Cosine
"여기서는 같은 자리에 머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만약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적어도 그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고 말이야."

현대 사회라는 거울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의 제1원칙은 '가속'입니다.


당신의 발바닥은 뜨겁다.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가열된 런닝머신 위를 맨발로 뛰는 기분일 것이다. 등 뒤에서는 "뒤처지면 끝장"이라는 채찍 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눈앞의 풍경은 쏜살같이 뒤로 밀려난다.

숨은 턱 밑까지 차오르고 종아리 근육은 비명을 지르는데, 기이하게도 주변 풍경은 그대로다. 아무리 달려도 나무 한 그루, 집 한 채 지나치지 못하는 기묘한 정체.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이 악몽 같은 상황을 지배하는 여왕이 등장한다.

붉은 여왕은 숨을 헐떡이는 앨리스의 손목을 낚아채며 서늘하게 속삭인다.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더 바빠야 하고, 작년보다 올해 더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한다. 스마트폰 알림은 24시간 우리의 주의력을 갉아먹고, SNS 타임라인은 타인의 성취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우리의 불안을 연료로 태운다. 우리는 이것을 '성장'이라 부르고 싶어 하지만, 실상은 '현상 유지'를 위한 처절한 사투에 가깝다.


이것이 바로 생물학자 맷 리들리가 명명한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다. 생태계에서 포식자와 피식자가 서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지만, 결국 힘의 균형은 제자리에 머무는 역설.


문제는 이 경주가 끝이 없다는 데 있다.

트랙의 종착점은 결승선이 아니라 탈진(Burnout)이다.


우리는 '바쁨'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산다.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라고 대답할 때, 우리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 대답은 "나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부품이야", "나는 도태되지 않았어"라는 자기 최면과도 같다.

반면 "그냥 좀 쉬고 있어"라는 대답은 마치 죄의 자백처럼 들린다. 공백(Gap)은 죄악이고, 정지는 퇴보라는 등식이 우리의 뇌리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멈추어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속도계의 숫자를 높이는 데 골몰하느라, 나침반의 바늘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수바드라 다스가 말한 '선형적 시간관'은 이 경주를 정당화하는 가장 강력한 최면술사다. 시간은 직선이고, 인생은 우상향해야 하는 그래프라는 믿음. 이 믿음 아래서 우리는 불필요한 일들에 자신의 시간을 제물로 바친다.

원치 않는 술자리에서 억지웃음을 짓고, 내 커리어와 무관한 자격증 시험을 기웃거리며, 영혼 없는 네트워킹 파티에서 명함을 뿌린다. 불안하니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 가속의 런닝머신에서 튕겨 나갈 것 같으니까.


하지만 진정한 '드리밍(Dreaming)'의 세계, 즉 의미의 차원(Dimension of Meaning)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더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런닝머신의 전원을 뽑고 내려오는 용기다.

이것을 나는 '전략적 태만(Strategic Neglect)'이라 부르고 싶다.


세상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한다(Do more)'고 강요하지만,

위대한 성취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Do less)'를 결정하는 순간에 탄생한다.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을 어떻게 조각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대리석에서 다비드가 아닌 부분을 깎아냈을 뿐입니다."

당신의 인생이 하나의 걸작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진흙을 덕지덕지 붙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본질이 아닌 것들을 과감하게 깎아내는 끌질이 필요하다.


당신이 지금 연말 파티의 유혹을 뿌리치고 책상 앞에 앉은 것은, 사회적 고립이 아니라 '다비드가 아닌 부분'을 깎아내는 숭고한 작업이다. 당신이 스스로 정의한 비전—"상대에게 부끄럽지 않고 철학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당신은 소음이라는 불필요한 돌조각들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당신의 멈춤을 보며 "뒤처졌다"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여전히 붉은 여왕의 손에 이끌려 땀범벅이 된 채 달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트랙에서 내려온 당신의 발은 이제 차가운 금속 벨트가 아닌, 단단한 대지(Ground)를 딛고 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고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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