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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책 Feb 26. 2021

6. 엄마를 부탁해

'나는 아동폭력의 생존자입니다'

엄마, 정말 오랜만이에요. 


제가 더 이상은 엄마를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그 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제 아이가 이제는 고등학생이 됐으니까요. 

정확히 몇 년이 지났는지 손가락을 짚으며 헤아려 보려다 그만뒀어요.  

그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거든요. 

물론 엄마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겠죠.   

   

처음엔 저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될 줄 몰랐어요. 

엄마도 기억하시겠지만 저는 그런 아이였죠. 

엄마에게 한껏 맞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가도

엄마가 부르면 그 눈물을 닦으며 엄마에게 달려가서 매달렸어요.

엄마 품에 안기고 싶었고 엄마의 예쁨을 받고 싶었고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었어요. 




스무 살이 지나고 돈을 벌기 시작한 후로  

뺨을 맞고 머리채를 잡히는 일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엄마는 나에게 항상 화가 나 있었죠. 


주말 내내 방학 내내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간신히 모아둔 등록금을 털어드려도, 

점심값 버스비 그런 푼돈을 모아 

제 형편으로는 목돈을 만들어 드려도

엄마는 늘 빌려준 돈을 받는 것처럼 당당하셨어요. 

한 번도 저의 마음을 헤아려 주신 적이 없었죠. 

     

아이 낳고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생각으로 모아 둔 돈을 빌려 가시고는 

갚을 돈도 없고 산바라지도 못 해주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셨어요.

그때 저 갓난아이 안고 많이 울었어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아이를 키우고 직장을 다니며 

발을 동동 구르는 저에게 

엄마는 왜 자신은 돌봐주지 않느냐며 화를 내기 일쑤였죠. 

지 자식만 중요하고 어미 아비는 돌보지 않는 년이라고 욕하셨어요. 

주변 사람들은 엄마에게 딸이 있어서 좋겠다며 부러워들 하던데 

실제로 너는 정말 나에게 하나도 해 주는 게 없다며 한탄하셨어요.  

    

그런데 엄마,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제 인생에서 엄마나 아버지가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부모가 있었다면 당연히 받았어야 할 그 사소한 보살핌도 

저에겐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엄마 말처럼 막돼먹어서 일까요? 

아니면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 걸까요?      




제가 엄마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참아왔지만 

엄마는 저를 자식으로 사랑해 줄 생각이 없으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제가 어떻게 해도 부모님과의 관계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요.     

 

많은 시간이 흐르고 오빠를 통해서 엄마가 미안해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만나고 싶어 하신다는 것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예요. 

엄마가 부르면 언제든 쪼르르 달려가던 딸은 더 이상 없어요.     


엄마는 그 밤을 기억하지 못하실 거예요. 

그날 밤 저를 때리셨던 그 한 대는 엄마에게는 

아무런 의도도 없이 저지른 일이었을 테니까요. 

그러니 엄마는 그저 엄마를 거부하는 제가 당황스러울 뿐이시겠죠. 

그래서 그렇게 쉽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실 수 있는 거예요.     

 



엄마, 지금부터 드리는 이 말을 아마도 엄마는 이해하기 어려우실 거예요.  

그래도 말씀드릴게요.      


저는 얼마나 큰 용기를 내며 살아왔는지 몰라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부모에게 끔찍한 폭력을 수시로 당하며 성장한 아이가

어른이 돼 다른 누구를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사는 게

정말 쉽지 않았어요.      


내 가슴 깊이 박혀 있는 상처가 남편을 찌를까 봐 

나를 사랑해 주는 그 사람을 내가 아프게 할까 봐 

남들 다 하는 평범한 연애도 결혼도 저에게는 태산을 넘는 것처럼 힘들었어요. 

아니 지금도 힘들어요. 


그러니 아이 엄마가 되는 건 어땠겠어요? 

폭력을 당한 사람은 다시 폭력을 쓰는 사람이 된다는 데 

제가 제 아이를 때리는 엄마가 될까 봐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서 늘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어요.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는 건 어려워도 

평범한 아내 평범한 엄마가 되고 싶어서 저는 노력해요. 


그런데 엄마가 남편과 아이가 보는 앞에서 저를 때리신 거예요. 

제가 얼마나 부단히 노력하는지도 모르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그냥 때리셨어요.         



엄마, 어떤 비난을 받아도 저는 엄마를 다시 뵐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제 저는 엄마 딸이기보다 아내이고 엄마인 게 먼저니까요. 

저에게는 지켜야 할 제 가정이 있어요. 

엄마에게 언제든 어떤 이유에서건 맞아도 되는 딸로는 

온전히 제 가정을 지켜낼 자신이 없어요.

그건 안돼요.      


엄마, 다음 생에 좋은 인연으로 만나요. 

이번 생에는 이런 딸이라서 죄송합니다. 

부디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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