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책의 마지막 문장
그도 한때는 숫자를 좋아하는 평범한 어른으로 살아갔던 시기가 있었다.
고액으로 환산되는 넓은 평수의 좋은 집을 위해 그리고 안락한 차를 갖기 위해, 숫자로 가득 채워진 월급봉투를 기다리며 타일 공장의 사무원으로 일하고, 자동차 회사의 판매인으로도 일했다. 생텍쥐페리가 스물두 살을 넘기면서였다.
열두 살 때 처음으로 하늘을 난 이후 늘 창공에서의 삶을 동경해왔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랑은 그에게 지상에서의 삶을 꿈꾸게 만들었다. 공군으로 입대한 뒤 개인교습을 받으면서 어렵게 조종사가 되었지만 그녀 루이즈 드 빌모랭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하면서 그는 숫자로 가득한 삶을 선택했던 거다.
하지만 사랑은 허무하게 무너졌고, 실연의 상처 속에서 완성한 몇 편의 단편 소설이 문단의 주목을 받았을 때도 그는 문학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서 항공사의 영업부장으로 일을 하고 여객기의 정비사로도 일을 했다.
그리고 때론 더 많은 숫자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삼아 야간 비행이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수많은 숫자를 쫓아 헤매던 그가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했던 위험천만한 사고 때문이었다. 1934년 파리에서 출발해 사이공으로 항해하던 중이었다. 최단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하던 중 그는 추락사고를 겪게 된다.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한 그는 무려 닷새 동안 사막을 헤매다 동료들에게 기적적으로 구조됐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 왕자’를 집필하며 이런 서문을 남겼다.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것에 대해 나는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빈다.... 어른들도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애들이었다. (하기야 그걸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만)’
생텍쥐페리가 사막에서 진짜로 어린 왕자를 만나 그에게 양이 든 상자를 그려줬는지, 또 어린 왕자가 여우를 만나 길들여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들었는지, 또 어린 왕자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생텍쥐페리가 닷새 동안 사막을 헤맨 그 시간 덕분에 우리는 오랫동안 읽고 또 읽고도 다시 읽고 싶어 지는 동화책을 만날 수 있다는 거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것이 어디엔가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것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이야!”
모든 것을 감추고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사막을 헤매며 아마도 생텍쥐페리는 지금까지 자신이 잊고 살았던 많은 것들을 다시 돌아봤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까탈스러운 장미를 떠나온 것을 얼마나 가슴 깊이 반성했는지 책의 구석구석에서 찾을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안 보인다.”
여우가 말했다.
“네가 네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에, 네 장미가 그토록 중요하게 된 거야.”
“내가 내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에....”
기억해 두기 위해 어린 왕자가 되풀이했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잊으면 안 돼. 넌 언제까지나 네가 길들인 것에 책임이 있게 되는 거야.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여우가 말했다.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집필하던 기간은 2차 세계대전이 최고조로 치닫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조국인 프랑스를 떠나 미국에 머물던 그는 롱아일랜드의 한적한 농가를 빌려서 오랜만에 집필에만 전념했다. 덕분에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있는 아내 꽁쉬엘로와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꿀 같은 시간도 잠시 생텍쥐페리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안전한 지상이 아니라 위험천만한 창공에 있음을 잊지 않았다.
1943년 ‘어린 왕자’의 성공을 뒤로한 채 생텍쥐페리는 자원입대를 선택했다. 당시 조종사 연령제한인 서른이 훌쩍 넘은 마흔넷의 나이였다. 그의 열정적인 구애를 프랑스 정부는 끝내 거절하지 못했고 그를 위해 정찰기를 내주었다. 그는 창공을 너무나 사랑했다. 하늘을 나는 시간은 사랑하지만 때때로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유명세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7월 31일은 생텍쥐페리가 마지막 비행을 떠난 날이다. 아침 8시 45분 정찰을 위해 부대를 떠났던 생텍쥐페리는 귀대 시간인 오후 1시 30분을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 비행을 했던 곳이 그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기에 그의 실종에 대해 많은 추측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B-612라는 소행성으로 돌아갔다고 믿고 싶어 했다.
어린 왕자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하늘을 보라. 그리고 생각해 보라. ‘양이 꽃을 먹었을까 안 먹었을까?’라고, 그러면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어른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양이 꽃을 먹었을까 안 먹었을까를 떠올려 본 적이 있는 어른인가? 나는 그 중요함을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해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어른 아이로 살고 있는 한 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