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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책 Jun 18. 2021

모든 게 오해였어요, 프랑켄슈타인.

메리 미셸의 '프랑켄슈타인'의 마지막 문장

     오랜만에 본업으로 돌아가서 환경의 날 특집 방송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방송의 매력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The Show must go on’이 아닐까 싶어요. 편성을 받은 후 방송 날짜가 정해지면 그때부터 정말 

상상 이상의 위기와 갈등, 말도 안 되는 사건과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 그 전쟁통 같은 시간 속에서도 방송은 만들어지고 마침내 짠! 하고 전파를 타고나면 복잡했던 감정들이 한순간에 휘발되는 걸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오로지 무사히 해냈구나, 라는 성취감이 남게 되죠. 더불어 우여곡절을 함께 한 스텝들은 끈끈한 전우애를 공유한 세상 특별한 상대가 됩니다.      


   아마도 이런 기묘함 때문에 방송이라는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또 한 가지, 방송 덕분에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는 것도 빼놓을 수가 없어요. 저는 이번 기회에 채식이 지구를 위해, 나를 위해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지를 알게 됐습니다.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방송 후에도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 노력을 계속할 거예요.    

  

    방송을 준비하면서 황윤 감독님이 쓴 ‘사랑할까, 먹을까’를 읽었는데요, 과학 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주인공이 채식주의자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다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이 책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래전에 역시 방송 때문에 숙제처럼 읽었던 책이라서 대충 기억은 나지만 여전히 초면인 듯한 느낌을 받으며 책장을 펼쳤는데, 세상에!!! 이런 실례가 또 없었더라고요.      



    그동안 제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듣고 떠올렸던 이미지들 그러니까 기형적으로 큰 데다 머리에 볼트가 박혀 있고, 피눈물이 흐르는 눈에 상처가 도드라진 얼굴과 땅에 끌릴 만큼 긴 팔에 구부정한 모습은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라 그가 만든 창조물이었던 거예요. 거기다 작품에서 그는 피조물이라는 뜻의 ‘크리처’라는 단어로 불릴 뿐 온전한 이름조차 없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된 ‘프랑켄슈타인’은 그가 아니라 그를 창조해 낸 빅터 프랑켄슈타인이었던 거죠. 너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반면, 대우가 적절하지 않았던 크리처가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두 번에 걸쳐 제작된 영화의 영향이 크다고 해요. 시각적으로 너무나 충격적인 이미지라서 제목이 주인공이겠거니... 저처럼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던 거죠;;)      


   소설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한때 연금술에 빠졌었지만 대학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게 된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의 신비를 밝혀내기 위해 납골당과 사체 안치소에서 재료를 구해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데 성공하죠.    

  

   그 누런 살갗 아래로 근육과 혈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은 찰랑거리고 있었고 이빨은 진주처럼 희었지만 희멀건 눈구멍, 그 구멍과 별 색깔 차이가 나지 않은 채 번득거리는 두 눈, 쭈글쭈글한 얼굴 살갗, 그 모든 것이 일자로 굳게 다문 시커먼 입술과 대비되어 정말로 끔찍해 보였다.   

   


    자신이 창조해 낸 존재를 보고 극심한 공포와 혐오를 느낀 프랑켄슈타인은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말아요.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영문도 모른 채 비참하게 버려진 크리처는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방황하죠. 두 사람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비극적으로 재회합니다. 크리처가 박사의 동생을 빼앗죠.     


“인간들이 나같이 끔찍하게 생긴 존재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나는 이미 다 겪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 나를 창조한 당신까지 나를 혐오하고 내치려 하다니! 나는 네 피조물이 아닌가! 우리는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 한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끈으로 엮여 있다. 나를 죽이겠다고? 넌 그런 식으로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쳤단 말인가! 너는 나에게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다하라. ”      


   크리처는 박사에게 동반자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반려자만 창조해 준다면 조용히 은둔의 삶을 살겠다고요. 하지만 박사는 크리처의 유일한 소원을 들어주지 않지요. 절망에 빠진 크리처는 박사의 아내를 살해합니다. 이제 자신의 손으로 크리처를 없애버리는 것만이 삶의 목표가 된 박사와 그런 박사를 끝까지 조롱하고 싶어진 크리처는 북극의 빙하까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박사의 죽음을 지켜본 크리처도 세상을 떠나게 되죠.      


   작품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이 창조해 낸 크리처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이나 동정, 이해심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어쩌면 진정한 괴물은 그가 아닐까 싶어요.      


   이 소설은 1816년 저자 메리 셸리가 남편과 스위스를 여행하다 썼다고 해요. 시인 바이런 경과 몇 명의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였는데요,  때마침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었고 지루해진 분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만들어내자는 제안에서 출발했다고 해요. 정식으로 발표된 건 1818년이었습니다.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해 저자는 가명으로 출간됐는데요, 문단과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기에 두고두고 화제작으로 꼽히게 되죠.      


   이 작품의 배경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어요. 1815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역사적으로 큰 규모의 화산 폭발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 해는 ‘여름이 사리진 해’로 기록될 정도로 한여름에도 서리가 내리고 폭설이 내리는 등 이상기후가 이어졌다고 해요. 이상기후는 큰 흉년과 대기근으로 이어졌고 전 세계적으로 200만 명 이상이 생명을 잃게 되면서 종말론이 대두되는 등 흉흉한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었던 거죠. 이런 분위기가 크리처라는 괴물을 빚어내는 데 큰 몫을 했다고 합니다. 


  


   저자인 메리 셸리는 유명한 채식주의자였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사상이 크리처를 채식주의자로 만들었겠죠. 자신의 외모만으로 증오를 퍼붓는 사람들에게 끝까지 해를 끼치지 않으려 애를 썼던 크리처는 그래서 더 안쓰러운 존재로 남습니다.      


  이번에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마지막 문장 대신 죽어가는 크리처가 사람들에게 남긴 말 중에서 한 문장을 들려드리면서 이 글은 마무리하겠습니다.    

  

   “물론 당신이 내 불행을 공감해주길 바라며 하는 소리가 아니다. 나는 공감을 구할 대상이 아무도 없는 존재이다. 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나는 혼자서 견디는 것으로 족하다. 내가 죽을 때조차 나는 철저히 혼자이다. 아무도 나를 애도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혐오와 치욕만을 남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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