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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책 Aug 01. 2021

여름이었다. -슬픔을 맞이하는 방법

그 책의 마지막 문장 -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처음엔 이 계절에 빗댄 가벼운 말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여름이었다’라니... 그런데 차츰 이보다 더 멋지고 완벽한 문장이 있을까,라고 고쳐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여름과 한참을 멀어지고 나니 그 계절의 순수함과 대책 없음 그리고 덧없음에 그저 순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그래, ‘여름이었다’는 문장만큼 젊음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다른 표현이 또 있을까?     

 

   며칠 그 문장을 되새기다가 문득 그 문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름 그 자체를 담아낸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펼쳤는데, 놀랍게도 그 문장이 바로 그 책 속에 있었다.      


   나는 새벽부터 물속에 들어갔다. 맑고 투명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지치도록 팔다리를 휘저어대며 파리의 온갖 먼지와 어두운 그림자를 씻어냈다. 모래밭에 길게 누워 손안에 모래를 움켜쥐었다가 손가락 사이로 노랗고 보드라운 모래 폭포를 쏟아내기도 했다. 모래 목포가 시간처럼 모습을 감추고 있다고, 그건 한가로운 생각이라고, 한가로운 생각을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고 느꼈다. 여름이었다




   인생에서의 첫 시련이었을 대입 실패를 경험한 열일곱 살의 세실은 파리를 벗어나 한가로운 해변에서 마음껏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완벽하게 행복했다’는 그녀 곁엔 인생이란 그저 즐거운 것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애인 엘자가 있었다.   

   

   스물다섯에 아내를 잃고 그 후 십오 년 동안 홀아비로 살고 있는 아버지는 6개월짜리 가벼운 연애를 계속해왔고, 그 사실을 굳이 딸에게 숨기지 않았다. 아버지의 그런 애정행각을 지켜보며 자란 세실은 아버지의 새 애인과 금방 친해지는 방법을 터득했고, 이번 연인인 엘자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사교계 출신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엘자는 딱 아버지가 좋아할 만큼 젊었고 가벼웠고 경쾌했다.

세 사람에겐 심각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온전한 여름에 미세한 균열을 내며 두 사람이 찾아온다.      


    첫 번째 등장인물은 요트를 타고 나타나 세실을 바다 한가운데로 이끌고 간 시릴이었다. 명문 법대 출신의 잘생긴 스무 살의 청년은 세실과 한여름 햇볕보다 더 뜨겁고 혹독한 첫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중년의 아버지에게 찾아온 안은 죽은 엄마의 친구이자 아버지와도 오랜 우정을 지켜온 여인이었다. 세월에서 오는 연륜을 성숙으로 가꿔낸 아름다운 안은 어처구니없게도 아버지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만다. 깃털처럼 가벼운 아버지의 마음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자신의 욕망과는 전혀 다르지만 아무튼 새로워서 미치도록 끌리는 안에게 가버린다.      




   그렇게 사랑의 전투에서 완패를 당한 엘자가 떠나버리자 아버지를 차지한 안은 세실의 마음까지 차지하려고 돌진해 온다. 지금까지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과 간섭 없이 혼자 커 온 세실은 안의 애정에 주춤 물러서게 된다. 그리고 처음 경험하게 되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 막연한 겁을 먹게 된다.      


그렇다, 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안이 미웠다. 그녀는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행복과 유쾌함, 태평함에 어울리게 태어난 내가 그녀로 인해 비난과 가책의 세계로 들어왔다. 자기 성찰에 너무나도 서툰 나는 그 세계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안은 내 생활을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나는 그녀의 힘을 가늠해보았다. 그녀는 내 아버지를 원했고 그를 가졌다. 이제는 우리를 조금씩 안 라르센의 남편과 딸로 만들 것이다. 


   열일곱이라는 나이가 피를 나누고 오랜 시간을 공유하며 많은 감정을 쌓아온 친엄마와도 사사건건 부딪치는 시기라는 걸 세실도 안도 알 리가 없다. 안은 점점 엄마라는 책임을 기꺼이 맡기 위해 애를 쓰고, 세실은 처음 경험하는 통제와 간섭에 벌써부터 질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세실과 안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오고 만다.      


 어느 날 저녁 안의 목소리가 그런 우리 둘을 떼어놓았다. 시릴은 내게 몸을 맞대고 길게 누워 있었다. 석양 무렵의 그림자와 불그스름한 빛살 한가운데서 우리는 거의 옷을 벗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안이 착각하도록 했던 것 같다. 그녀가 단호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사실 모든 것이 안의 오해였지만 안은 세실의 그 어떤 설명도 변명이라 생각하고 세실을 다그친다. 엄마의 역할을 처음 맡게 된 안은 엄마보다 더 완벽히 그 시련을 지혜롭게 해결해 내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세실은 자신의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는 안에게 마음을 닫고 만다. 그리고 그날 세실은 안을 아버지와 자신의 곁에서 밀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세실은 아버지에게 아직도 미련이 남은 엘자와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해 낼 수 있는 시릴을 이용해 연극을 꾸민다.      


  사실 세실이 이토록 영악스러울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열일곱 살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 인생의 수많은 단층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악의 모습마저도 그토록 순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혹독한 대가는 아무리 철없는 열일곱 살일지라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안은 울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공격한 대상이 하나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살아 있는 개체였음을. 그녀는 조금 내성적인 어린아이였다가 사춘기 소녀였다가 이윽고 여인이 되었을 터였다. 그녀는 마흔 살이었고 혼자였으며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자 했다. 십 년, 어쩌면 이십 년을. 그런데 내가..... 그 얼굴, 지금 그녀의 그 얼굴, 그 얼굴은 내가 만든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차 문에 기대어 온몸을 떨었다.     


   그저 아버지와 자신의 곁에서 안을 밀어내고 싶었던 세실은 자신의 무모한 연극이 엄청난 비극으로 돌아오는 결말을 견뎌야 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세실은 슬픔을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평생동안 함께 해야 하는 숙명으로 맞이하게 된다.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네며.     




‘슬픔이여 안녕’의 마지막 부분, 남깁니다.      


  다만 파리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만이 들려오는 새벽녘 침대에 누워 있을 때면 때때로 내 기억이 나를 배신한다. 그해 여름과 그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안, 안! 나는 어둠 속에서 아주 나직하게 아주 오랫동안 그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솟아오른다.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이름을 불러 그것을 맞으며 인사를 건넨다. 슬픔이여 안녕.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고 나니 이제야 이 책의 첫 문장이 온전히 이해가 되네요. 

첫 장도 이어드리겠습니다.      


나는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이 감정이 어찌나 압도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내가 줄곧 슬픔을 괜찮은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게까지 느껴진다. 슬픔, 그것은 전에는 모르던 감정이다. 권태와 후회, 그보다 더 드물게 가책을 경험한 적은 있다. 하지만 오늘 무엇인가가 비단 망처럼 보드랍고 미묘하게 나를 덮어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킨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에게도 여름이었던 시기가 있었겠죠? 

  그 혹독한 시절을 당신은 어떻게 지나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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