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셸 누드슨의 그림동화 '도서관에 간 사자'의 마지막 문장
만약 당신이 지난 주말 온 가족과 함께 가까운 공공도서관에 갔다면
온 가족이 서가의 의자에 둘러앉아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산처럼 쌓아놓고 마음껏 읽는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한번 해 볼까요?
그러곤 뿌듯한 마음을 안고서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궁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면
당신은 도서관의 유령 이용객입니다.
유령 이용객이 존재한다는 것을 저는 최근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아니 알 수밖에 없게 됐죠.
저는 도서관의 주말 근로자이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의 근로자가 된다는 건 사실 정말 신나는 일이었어요.
방송 작가로 일하면서 책을 전하는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써왔기 때문에
동네 도서관은 저에게 방송국만큼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습니다.
글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거나 새로운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아서 숨이 턱턱 막힐 때
도서관은 보이지 않던 실마리를 말없이 저에게 찾아주던 곳이었죠.
누구에게나 당황스럽고 힘들었을 코로나19 (아직도 진행 중이긴 하지만요),
사회 전체적으로 잠시 멈춤이 시작되면서
제가 제안한 수많은 기획안이 기약도 없이 밀려나다 마침내 폐기될 때
그 우울함을 위로해 줬던 곳도 바로 도서관이었어요.
자원활동가로서 도서관 봉사를 하면서
저는 프리랜서일 때는 몰랐던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의 기쁨을 알게 됐고
책을 제자리에 꽂으면서 어지러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고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이자 친구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러니 자원활동가를 거쳐 당당히 근로자로 뽑혔을 때 얼마나 기뻤겠어요.
주말마다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습니다.
물론 지금도 도서관에 가는 것은 여전히 즐겁지만
그럼에도 가끔 이 유령 이용객들 때문에 한 번씩 마음이 상할 때가 있어요.
도서관은 매일 반납된 책과 대출된 책의 양을 통해서 이용객을 집계하게 됩니다.
하지만 통계로 잡히지 않는 이용객은 훨씬 더 많죠.
다섯 권의 책을 대출하는 이용객 중에
딱 다섯 권의 책을 서가에서 쏙쏙 빼내 대출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거예요.
대출하고 싶은 다섯 권을 찾기 위해서 많은 책을 꺼내 펼쳐 보는 것을 반복할 테니까요.
그리고 이왕 도서관에 왔으니 보고 싶은 책을 맘껏 읽고 가는 이용객들도 많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책을 장난감 삼아 한참을 가지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이용객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꽂아야 할 책이 산더미처럼 남게 되지요.
절대로 이런 행동이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마음껏 꺼내 읽는 건 세금을 내는 시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해요.
잘못은 유령 이용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근로자의 노동을 ‘그림자 노동’으로 만들어버리는 도서관의 정책들입니다.
근로자가 감당하기 힘든 노동의 양임에도
통계로 잡힌 반납 대출 권수만을 헤아리며
그만큼 힘들지 않다는 답변만 할 뿐이니까요.
정책을 세우는 분들은 아마도 주말의 도서관을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은 분들인가 봅니다.
이분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나, 고민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이전에 이용객들의 불만과 원성을 사겠지요.
결국엔 그 불만과 원성을 받아내야 할 사람은 저희 같은 근로자입니다.
‘그림자 노동’은 증명해 내기 불가능한 노동이네요.
어쩌다 보니 이번 글에는 쓸데없는 푸념만 늘어놓게 됐어요.
제가 이번에 들려주고 싶은 ‘그 책의 마지막 문장’은
미셸 누드슨의 그림동화 ‘도서관에 간 사자’입니다.
실제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쓴 책인데 ‘도서관은 마법과도 같은 장소’라고 한 말에 저 또한 깊이 공감해서 소개하고 싶었어요.
내용은 제목에서 상상할 수 있는 그대로입니다.
어느 날 도서관을 찾아온 사자로 인해서 빚어지는 일들인데요,
공공도서관을 처음 이용하게 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도서관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 읽어주어도 좋고,
저처럼 도서관에 대한 환상과 애정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어른이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치 수수께끼를 던지듯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남기겠습니다.
이튿날, 맥비 씨는 복도를 지나 관장실로 갔습니다.
“무슨 일이지요, 맥비 씨?”
관장님이 조용하고 슬픈 목소리로 물었어요. 요즘 관장님의 목소리는 늘 그랬습니다.
“들으면 기뻐하실 일이 있습니다. 사자가 왔어요. 도서관에요.”
맥비 씨의 말에 관장님은 의자에서 펄쩍 뛰어 일어나 복도를 달려갔어요.
맥비 씨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뛰면 안 됩니다!”
맥비 씨가 관장님에게 소리쳤어요. 하지만 관장님은 못 들은 척했어요.
때로는 규칙을 어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아무리 도서관이라 해도 말이죠.
아무리 도서관이라 해도 규칙을 어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주말엔 저도 반듯하지 않은 서가를 한 번 만들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