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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책 Aug 10. 2020

나는 아동폭력의 생존자입니다

1.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를 이해할 수 없게 됐다

너는 정말 예뻤어.
많이 울지도 않고,
떼도 많이 쓰지 않고
 엄마는 너를 키우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니 추억처럼, 후일담처럼 육아 때 있었던 일들을 아이에게 들려줄 때가 있다. 길을 가다 어린아이를 만났을 때나 텔레비전에서 예쁜 아이가 귀여운 짓을 하는 걸 함께 지켜볼 때. 그때마다 조금은 과장되게 아이에게 얘기를 해 준다.      


아이가 기억을 하든 못하든 그 말을 믿든 안 믿든 엄마가 자신을 키우던 시간에 어려움보다는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았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아이 때부터 내가 참 많이 맞고 살았구나...라는 걸 알게 되면 정말 참담해지니까.

     



엄마가 들려준 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대부분 폭력을 소재로 하고 있다. 내가 이가 나기 시작할 때라니 아마도 8개월쯤은 됐겠지... 그때의 아기는 엄마 젖을 먹다가도 이가 간지러워지면 젖꼭지를 물어버린다. 물론 그게 아프다는 것쯤은 아이를 키워본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때린 적은 없다.      


“젖을 물렸는데 네가 젖꼭지를 물면 순간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나도 모르게 뺨을 찰싹 때리게 되지 뭐야.

  그래야 젖꼭지를 놓거든.” 

 

엄마는 자신의 행동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너는 정말 진절머리 나게 울었어. 네가 울기 시작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한 번은 시루에 콩나물을 키웠는데, 물을 주다가 네가 울어서

    그 물을 그대로 니 얼굴에 쏟아부었지. 잠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네가 

    얼굴이 파래지면서 켁켁대더라.”    

   

한 번도 엄마에게 나를 예뻐했고, 너를 키우는 게 행복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걸 느껴본 적도 없다. 


“너는 나한테 실컷 맞고도, 손에 아직 매체를 들고 있는데도

  엄마한테 와 그러면 울면서도 오는 애였어.”     


그럼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너무 어린아이였으니 엄마의 매를 피할 수도, 맞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엄마 한 사람뿐이었을 테니 엄마가 때려도 나는 엄마의 손을 붙잡아야 했을 것이다. 

엄마는 그걸 자신이 무엇을 해도 내가 엄마에게 저항하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존재로 인식하신 것 같다. 그래서 마음껏 때려도 상관없는 아이로 생각하신 것 같다. 

     

아마 그때의 엄마는 산후 우울증에 육아 우울증을 앓고 있었나 보다. 그때는 그런 말도 없었던 시대니 자신이 아프다는 걸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셨겠지. 또 지금보다 더 모성애를 당연시했던 때였으니 엄마의 노고를 누구에게도 인정받거나 위로받지 못했을 것이다.      



“난 아이 이쁘다는 사람이 제일 이해가 안 가더라. 

  애는 딱 5분만 예뻐.”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건 엄마의 타고난 성품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폭력의 이유로 설명될 수는 없다.   

내가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보니, 

우는 아이를 달래고 보니, 

엄마가 나에게 한 행동들이 명치끝에 맺히게 됐다. 

나는 엄마가 된 이후 엄마를 더 이해할 수 없게 됐다. 

아니 용서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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