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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책 Oct 11. 2020

나는 아동폭력의 생존자입니다.

4.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부모를 (下)

오래전에 심리치료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혹시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시작했지만 상담은 네 번을 끝으로 종료되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일방적인 진료 거부로 끝났다.      


힘들었다. 

내 속에 쌓여있는 상처를 꺼내는 일이. 

그걸 바라보는 일이. 

그리고 그 상처들을 인정하는 일이.      


나는 상담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한 채 도망쳤고 서툴게 건드려진 상처들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그때 조금만 더 참고 용기를 냈다면 나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나에게 브런치가 심리 상담과도 같다. 마지막 글을 올린 후 두 달 가까이 글을 쓰지 않았다. 

이번엔 똑바로 쳐다보리라,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시작한 글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계속 딴청만 피웠다. 

그러다 이따위 글은 쓰지 않으리라, 마음먹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에 대해 예전만큼 아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오랜 친구에게 내 속을 털어놓았을 때였다. 

괜찮았다. 

나는 조금 더 객관적으로 나와 엄마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그게 브런치를 통한 글쓰기 덕분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다시 쓰기로 마음먹었다.       




엄마는.... 앞서 미역국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우체국 말단 공무원인 외할아버지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본래도 건강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평범한 학교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안 좋았다고 한다. 엄마는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 

나약한 몸은 가난과 맞물려 엄마를 더 소극적인 성향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집안에서도 엄마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며 성장했다. 맏아들로 생계를 거들고 있던 큰삼촌과 공부를 잘해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 큰 기대를 받았던 큰 이모 그리고 엄마 아래로 태어난 두 삼촌이 적극적이고 명랑한 성격임에 반해 엄마는 조용조용, 있어도 없는 듯 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엄마는 백화점에 취직을 했고, 상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다 그곳에 점포를 낸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스물여섯, 엄마는 스물한 살 때였다. 엄마는 서둘러 결혼을 하고 첫아들을 가진 후 전업주부가 됐다.      

맏아들로 태어났지만 가족의 질서 속에 인정받지 못했던 아버지와,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엄마의 만남은 어찌 보면 이상적인 궁합이다.      


아버지는 어리고 연약한 데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엄마를 좋아한 것 같다. 엄마는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온갖 사랑을 퍼부어주는 아버지를 좋아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집착에 가까웠다. 엄마가 곱고 예쁜 옷을 입는 게 싫어 엄마의 모든 옷을 직접 골라주셨다. 심지어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 떠는 것도 싫어할 정도로 아버지 외에 그 누구와도 가까이 지내는 걸 참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오로지 엄마가 자신만을 바라봐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에 대해 자신의 방식으로 보답했다.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를 위한 단팥빵이나 과자를 양복 안주머니에 감춰 들고 오셨다. 계절이 변하면 엄마에게 머리를 만지라고 용돈을 주셨고, 엄마가 갖고 싶은 걸 사 주셨다. 이렇게 보면 정말 낭만적이고 자상한 남편이었던 것 같다. 두 분의 관계로만 보면 말이다.     

 



두 분 사이에는 자식이 셋이 있었다. 먼저 태어난 아이 둘은 학교 준비물 살 돈도 아버지에게 달라고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군것질거리를 사달라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렵다는 걸 아주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식이 아닌 엄마에게는 그 가난 속에서도 여유가 있었다.     


그 정도로 가난했으니 두 분도 많이 힘드셨겠지. 가난을 헤쳐나갈 뾰족한 방법이 두 분에게는 없었다. 성실했던 것도 아니고 근성도 없었으니 먹을 게 없으면 없는 대로 굶거나 운 좋게 누군가에게 돈을 빌릴 수 있으면 우선 그것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그 시간들을 버텨나갔다. 그러다 그 가난에 지쳐 울분이 터져 나오면 그것을 어린 자식들에게 쏟아냈고 그 대상은 주로 둘째 딸인 내가 되었다.     


최근 아동폭력에 관한 기사 중에서 가슴 아프게 읽은 게 있다. 폭력을 행사한 부모들도 역시 사회의 피해자라는 내용이다. 부모가 사회가 행사하는 냉대에 시달리다 집으로 돌아와 어린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설명이었다.      


기사를 읽고 말 그대로 참담했다. 그래서 그 폭력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인가? 부모도 자식도 모두가 피해자라는 논리로 그 폭력을 정당화시키고 싶은 것일까?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안다. 아이를 품는 순간 부모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워나가면서 부모 역시 수많은 성장점을 맞게 된다는 것을. 자신이 세상에 내놓은 아이를 키워나가면서 실은 자신이 더 많이 큰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만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부모로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약자에 대한 폭력이다. 하물며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 일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는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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