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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Jan 16. 2022

리뷰: FKA twigs - CAPRISONGS

#2. 아르카적 텍스처 위에서 빚어낸 연옥의 빛

  일렉트로니카를 토대로 동시대 아방가르드를 이끌고 있는 두 뮤지션, FKA 트윅스와 아르카 사이에는 여러 공통점이 많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경계를 둘러싼 권력과 폭력의 문제가 이 둘을 얽고 있고, 또한 이 둘은 이러한 폭력의 경험들을 증언하고 발화하기 위한 음악을 해 왔다. 아픔을 진술하는 데에는 여러 방식이 있지만, FKA 트윅스와 아르카가 가장 탁월했던 순간은 고난의 수행자로서 주체가 투쟁해 온 경로를 처절하게 그려내고, 그렇게 전진한 끝에 숭고의 빛을 찾아낼 때였다. FKA 트윅스의 “Magdalene”(2019, Young Turks) 그리고 아르카의 3집 “Arca”(2017, XL)는 요컨대 21세기의 ‘수난곡’이었다.


  이 두 뮤지션은 단순히 디스코그라피에서의 여러 경향성들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같이 작업하며 서로의 장르음악적 감각에 주요한 영향을 끼쳤다. 가령 아르카가 카녜 최고의 아방가르드 “Yeezus”(2013, Def Jam/Roc-A-Fella)의 프로듀싱에 참여하며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메인스트림에 알리던 해, 그녀는 FKA 트윅스의 정규 데뷔 이전 두 번째 EP “EP2”(2013, Young)의 작곡과 프로듀싱을 전담하기도 했었고 이들의 협업은 FKA 트윅스의 충격적인 데뷔 앨범 “LP1”(2014, Young)으로까지 이어졌다.


  3집까지 디스포리아의 수렁에 질식해가던 아르카는 이후의 “KiCk” 연작들을 통해 수난 이후의 주체가 갖는 임파워링을 당당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랜 동료 FKA 트윅스도 같은 경로에 올라선 걸까. 흉터가 아물고, 진득한 어둠이 걷히고, 먹구름들 사이로 흐린 햇빛이 한 두 줄기 뻗쳐 내려오고 있다. 아르카가 간만에 프로듀싱에 참여한 FKA 트윅스의 새 믹스테잎 “CAPRISONGS”의 첫인상이다.


  FKA 트윅스의 디스코그라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리듬이 “CAPRISONGS”를 지배하고 있다. 사실 아르카는 작곡과 프로듀싱으로 두 곡에만 참여했지만, 아르카의 근작들 중 “KICK ii”(2021, XL)와 “KicK iii”(2021, XL)의 인상은 앨범 전체에 깊게 남아 있다. 앨범은 레게톤과 라틴 트랩의 방법론을 본격적으로 가져온다. 가령 영국 래퍼 파 살리우가 참여한 ‘honda’, 아프로비츠 래퍼 레마와 함께 한 ‘jealousy’, 영국의 하이퍼팝 뮤지션 샤이걸이 피처링한 ‘papi bones’ 등 여러 트랙들에서는 ‘쿵-짝 쿵짝’을 강박적으로 반복해 관능과 선정성을 구축하는 레게톤 베이스 리듬이 공간을 장악한다. 한 편 ‘pamplehouse’는 이런 트랙들에서 선보였던 타악기의 텍스처들을 드럼 앤 베이스와 정글의 속도 위에 다시 변주해 펼쳐 보인다.


  댄서블한 리듬에 여러모로 신경 쓰며, FKA 트윅스는 이전에는 없던 클러버의 바이브를 믹스테잎에 가져 왔다. 하지만 FKA 트윅스가 원래 가지고 있는 멜랑콜리를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그렇게 정동과 우울은 혼재하게 된다. 믹스테잎의 이러한 성격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르카와 위켄드가 참여한 싱글 ‘tears in the club’이다. 일렉트로팝 위에 아르카 특유의 리버브 잔향이 묻어나는 건반 텍스처를 얹고, 위켄드와 FKA 트윅스의 팔세토를 활용한 보컬들도 그들이 으레 그랬듯이 리버브를 짙게 칠해 서늘한 여운을 남긴다.


  EDM을 어느정도 의식하며 만들어진 믹스테잎이지만, FKA 트윅스의 보컬리스트의 면모가 멋지게 드러나는 순간도 남겼다. ‘meta angel’은 “Magdalene”의 정취를 간직한 채, 리버브와 오토튠을 적절히 활용하고 한 편으로는 보컬을 겹겹이 쌓아 믹스테잎 전반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었다. 믹스테잎의 후반부에는 FKA 트윅스 특유의 장르음악들이 네오 소울과 겹쳐지는 듯한 지점들도 있다. 다니엘 시저가 참여한 ‘careless’와 조르자 스미스가 참여한 ‘darjeeling’에서, FKA 트윅스의 목소리는 손님으로 온 두 R&B 보컬들과 대비되어 차가운 텍스처의 매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편 “Magdalene”의 피날레 ‘Cellophane’에서 FKA 트윅스가 천사로서 ‘해방’되어 하늘에 찬란히 다다랐던 것처럼, 아르카의 손을 거친 “CAPRISONGS”의 피날레 ‘thank you song’도 소리와 감정을 쌓고 터트려 환희를 선사하는 경로를 따라가며 문을 닫는다.


  “CAPRISONGS”는 “Magdalene”이 팝적 호소력을 갖고 있었던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팝적이다. “Magdalene”은 21세기의 카논이 될 힘을 가지고 청자와 만나지만 “CAPRISONGS”는 FKA 트윅스의 장르적 감각에 댄서블함을 더해 ‘FKA 트윅스 표 클럽 음악’이 되어 돌아왔다. 과연 이것이 유효한 전략이 될지, 아니면 다음에 발매될 정규 앨범과 “Magdalene” 사이에 있었던 작은 쉼표로 남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FKA 트윅스 본인에게도, 우리 청자들에게도 시도해 볼 가치는 있는 것 같다.


“CAPRISONGS”, FKA twigs


2022년 1월 14일 발매
믹스테잎
장르: 아트 팝, 아방가르드 팝, 일렉트로닉, 레게톤
레이블: Young, Atlantic
평점: 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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