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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Feb 02. 2022

리뷰: Cat Power – Covers

#5. 장르음악을 넘나들며 잿빛 감성을 칠해내는 캣 파워의 주크박스

  캣 파워의 열한 번째 앨범 “Covers”는 캣 파워가 다시 부른 여러 커버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캣 파워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캣 파워 본인의 곡이 아닌 다른 이들의 곡들로 채워진 앨범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캣 파워의 5집 “The Covers Record”(2000, Matador)와 8집 “Jukebox”(2008, Matador)는 조니 미첼과 재니스 조플린, 밥 딜런과 롤링 스톤스 등의 클래식들을 캣 파워의 인디 포크 감성으로 재해석한 곡들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신보는 선곡의 측면에서 캣 파워의 커버 송이 담긴 앨범들 중 가장 다채롭고 동시대적인 취향을 드러내고 있다.


  “Covers”의 문을 여는 첫 트랙부터 인상적이다. 캣 파워가 1번 트랙으로 고른 것은, 무려 프랭크 오션의 전설적인 데뷔작 “channel ORANGE”(2012, Def Jam)에 수록된 ‘Bad Religion’이다. 오르간과 현악 그리고 오션의 촉촉한 보컬로 영성을 구축했던 ‘Bad Religion’은, 캣 파워의 손을 거치며 “Covers” 전체를 관통하는 앙상한 잿빛 우울을 뱉어내는 트랙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사실 캣 파워의 ‘Bad Religion’은 일종의 매쉬업에 가까운데, 캣 파워는 자신의 전작 “Wanderer”(2018, Domino)에 수록된 포크 트랙 ‘In Your Face’의 마이너 코드들을 그대로 가져와 ‘Bad Religion’의 기타 리프를 다시 썼다. 가을 바람처럼 빙글뱅글 맴도는 기타 리프는 오션의 ‘Bad Religion’과는 반대로 서서히 침체하고 하강한다. 무덤덤한 침체와 하강은 “Covers” 전체를 아우르는 정서다.


  두 번째 트랙 ‘Unhate’는 캣 파워 본인의 마스터피스 “The Greatest”(2006, Matador)에 수록되었던 날 것의 블루지함을 담은 트랙 ‘Hate’를 재녹음한 것이다. 일렉트릭 기타 한 대 위에서 노래했던 ‘Hate’는 ‘Unhate’라는 이름으로 재녹음되며 밴드 세션을 통해 풍성하고 정갈해졌는데, 캣 파워는 밥 딜런이 투어를 돌 때 라이브를 위해 자신의 곡들을 편곡하는 방식에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다. 미니멀한 베이스 라인을 토대로 한 세 번째 트랙 ‘Pa Pa Power’는 특이하게도 배우 라이언 고슬링의 고딕 록 프로젝트 데드 맨즈 본즈의 커버인데, 캣 파워의 커버는 원곡의 정적이고 수동적인 우울을 정석적으로 재현해가면서도 “Covers”의 트랙으로 녹아드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네 번째 트랙 ‘White Mustang’은 당연히 라나 델 레이의 ‘White Mustang’이다. 캣 파워는 미니멀한 일렉트로닉 퍼커션 라인 위에 특유의 보컬로 공명하는 쓸쓸함을 칠했던 라나 델 레이의 ‘White Mustang’ 속 감정을 해치지 않고 자신의 신보에 잘 이식해 왔다. 두 싱어송라이터는 캣 파워의 전작 “Wanderer”의 싱글 ‘Woman’에서 듀엣을 한 적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낙엽 같은 쓸쓸함과 특유의 어쿠스틱 감성에서 이미 맞닿아 있다. 그래서 캣 파워의 ‘White Mustang’은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곡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본 이베어의 2집이 가진 목가적 감성을 연상케 하는 다섯 번째 트랙 ‘A Pair of Brown Eyes’는 셀틱 펑크 밴드 더 포그스의 커버다. 원곡은 아코디언 따위를 동원해 셀틱 펑크, 포크 펑크의 고전적인 컨트리함, 혹은 옛 아일랜드 민요나 페어포트 컨벤션 따위의 고전적인 포크 그룹들, 아니면 닉 케이브의 ‘The Ship Song’ 같은 포크 발라드 넘버들을 연상시키는 진득하고 정감 가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캣 파워는 멜로트론만을 활용한 미니멀한 편곡 위에서 무덤덤히 노래하며 원곡의 풍부함을 요즈음 인디 포크의 세련된 서정으로 바꾸어 놓는다. 편곡에서의 이러한 지향은, 밥 시거를 커버한 여섯 번째 트랙 ‘Against the Wind’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캣 파워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떠올리게 하는 담백한 허트랜드 록의 분위기에 본인 특유의 정돈된 서정을 부여한다.


  펑크와 아방가르드 서브컬쳐의 혁명가들, 이기 팝과 니코에 대한 존경을 담아 커버한 다음 트랙들도 인상적이다. 일곱 번째 트랙 ‘Endless Sea’와 여덟 번째 트랙 ‘These Days’가 바로 그것들이다. 두 트랙의 원곡들은 옛 장르음악들의 정수를 머금고 있다. 이기 팝이 처음으로 데이비드 보위의 도움 없이 작업한 3집 “New Values”(1979, Arista)에 수록된 ‘Endless Sea’는 특이하게도 포스트 펑크와 다크 웨이브의 흑색 우울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니코를 상징하는 솔로 데뷔 앨범 “Chelsea Girl”(1967, Verve)에 수록된 ‘These Days’는 당대 바로크 팝의 현악 편성이 갖는 잔잔한 매력을 뽐낸다. 캣 파워의 커버들은 이 트랙들을 앨범 “Covers”의 설계에 들어맞는 레고 블록처럼 재배열한다.


  아홉 번째 트랙 ‘It Wasn’t God Who Made Honky Tonk Angels’는 50년대 컨트리 가수 키티 웰스를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곡이다. 캣 파워는 컨트리 곡으로서 원곡이 간직한 장르음악적 특징들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업라이트 베이스를 동원해 원곡의 홍키 통크 리듬을 더욱 돋보이게 살려낸다. 뒤이어 따라오는 두 트랙은 전설적인 포스트 펑크 밴드들이 선보였던 넘버들이다. 열 번째 트랙 ‘I Had a Dream Joe’는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드의 중기작 “Henry’s Dream”(1992, Mute)에 수록되었던 펑크 블루스다. 그런데 캣 파워의 커버는 닉 케이브의 원곡보다도 닉 케이브같다. 닉 케이브는 6집 “The Good Son”(1990, Mute)에서부터 본인의 전작들에서 드러나던 사악함과 광기를 가라앉히고 포스트 펑크를 이탈해 포크와 블루스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신파적인 발라드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캣 파워는 ‘I Had a Dream Joe’를 커버하며, 닉 케이브가 데뷔했던 밴드 버스데이 파티나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의 초기작들에서 힘을 발휘했던 으스스하게 공명하는 기타 톤과 긴장감을 충실하게 재현해냈다. 열한 번째 트랙 ‘Here Comes the Regular’는 리플레이스먼츠의 메이저 레이블 데뷔 음반 “Tim”(1985, Sire)에 수록되었던 어쿠스틱 발라드 넘버다. 앨범의 문을 닫는 마지막 트랙 ‘I’ll Be Seeing You’는 캣 파워가 이전에도 커버한 적 있었던 전설적인 재즈 싱어 빌리 홀리데이의 곡이다. 기타와 피아노가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캣 파워는 덤덤한 보컬로 빈 공간을 채우며 앨범을 마무리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록과 재즈 그리고 포크(혹은 컨트리)의 클래식들을 다시 호명하는 데에 집중했던 캣 파워의 이전 커버 송 앨범들과 달리, 이번 앨범은 라나 델 레이에서 니코, 프랭크 오션에서 닉 케이브에 이르는 여러 장르음악 뮤지션들의 유산을 다채롭게 가져와 들이마신다. 하지만 경계를 넘나들며 이리저리 종횡하는 선곡들과 다르게, 캣 파워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앨범은 놀라운 일관성과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Covers”, Cat Power
2022년 1월 14일 발매
정규 앨범
장르: 인디 록, 얼터너티브 록
레이블: Domino
평점: 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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