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미츠키가 시도하는 뉴 웨이브? 아니, 미츠키의 뉴 웨이브!
하이프(hype)는 독이 든 성배다. 근세대 평단은 자기들의 정체성을 투사하고 이입할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찾고, 그들에게 요란한 찬사를 보내고, 그러한 찬사에 부응하는 ‘시대의 명반’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결국은 한 명의 개인에 불과한 창작자들을 짓누른다. “Is This It”(2001, RCA / Rough Trade)을 만들었던 스트록스, “Up the Bracket”(2002, Rough Trade)을 만들었던 리버틴즈는 NME의 먹잇감이 되며 하이프를 받다, 유행이 지나자 찬사를 아낌 없이 보내던 바로 그 평론지들에게 온갖 혹평을 들으며 뒤통수를 맞았다. 데뷔 전부터 영국을 들썩였던 악틱 몽키스의 알렉스 터너가, 데뷔 싱글 ‘I Bet You Look Good on the Dancefloor’의 뮤직 비디오에서 괜히 “Don’t believe the hype(하이프를 믿지 말라)”라고 한 게 아니다. 심지어 그랬던 그들 역시 데뷔 앨범의 센세이션 이후 “AM”(2013, Domino)을 통해 영국 주류 평단들이 바라는 ‘영국성’을 드러내는 록 음악으로부터 과감히 이탈하고 전진을 이루어내기 전까지, 확립되지 못한 음악적 정체성 속에서 방황하며 제 2의 스트록스로 전락할 뻔 했다.
평단의 이런 나쁜 버릇은 2010년대와 20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에는 영국의 팝 록 밴드 1975가 하이프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들이 나름 그럴듯하고 또 나름 실험적인 앨범들을 내놓자 평단은 그들에게 시대의 록 스타라는 지위를 부여하려는 듯 떠들썩했다. 졸지에 동시대 얼터너티브-아방가르드의 화신이 되어 버린 1975에게도 세기의 대작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찾아온 것 같다. 이후 스물 두 곡의 장대한 분량으로 만들어진 “Notes on a Conditional Form”(2020, Dirty Hit / Polydor)은 평단이 사랑하는 요소들을 백화점이나 코스트코처럼 마구잡이로 꽉꽉 채워 넣으려다 과유불급의 배탈이 난 비극적인 작품이었다. 여기는 브라이언 이노, 저기는 소닉 유스, 이곳에는 IDM, 또 다른 곳은 밥 딜런 풍의 선언적인 가사를 잘라다 붙인 앨범에 인디펜던트 지는 5점 만점에 1점이라는 가혹한 평점을 매겼다. 여러 옛 거장들의 흔적들을 유기적이기보다는 기계적이고 병렬적으로 기워 넣어 1975 자신들이 사라진, 군데군데 번뜩이지만 앨범으로서는 실패한 안타까운 결과물이 나왔던 것이다.(이거 카녜 웨스트의 "Donda" 이야기인가?) “세기의 아방가르드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유별난 압박이 없었다면, 이들이 이렇게 무너지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물론 앨범 비평을 쓰는 나도 이러한 평단의 악질적 ‘소비’ 행태로부터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을 테다.)
“Be the Cowboy”(2018, Dead Oceans)를 통해 ‘인디 록의 구세주’로 호명‘당한’ 미츠키도 한동안 비슷한 고민과 위기감 속에 던져졌던 것 같다. 나는 사실 한동안 미츠키의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없을 줄 알았다. “Be the Cowboy”로 투어를 하던 미츠키는 2019년 돌연 모든 소셜 미디어 계정들을 없애버리고, 더 이상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래의 구태의연한 내가 과거의 나를 모욕하기 전에 절필하는 문인들이나 ‘박수 칠 때 떠나는’ 사람들, 혹은 미국 진출을 앞두고 “이제 너희들은 U2가 될 수 있다”는 매니저의 이야기에 회의를 느끼며 밴드를 떠난 스미스의 조니 마 같았다.
회의감 속에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영영 그만둘 것 같던 미츠키를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기약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리스너들에게, 그가 4년 만에 회복된 자아와 동적인 힘이 담긴 새 앨범 “Laurel Hell”을 들고 돌아왔다는 것은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츠키가 ‘음악을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 자체로도 좋지만, 앨범은 그것 이상을 담고 또 보여주고 있다. “Laurel Hell” 속의 미츠키의 태도는 마치 2집의 앨범 제목 – “Retired from Sad, New Career in Business (슬픔으로부터 은퇴해,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다)”(2013) 를 연상시킨다.
새 앨범에서 미츠키는 80년대의 뉴 웨이브 문법을 자기의 록 음악에 본격적으로 이식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의 배치는 난잡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우며 유려하다. 신스 사운드가 주도하는 두 트랙 ‘Valentine, Texas’와 ‘Working for the Knife’로 문을 여는 앨범은 이내 기타 팝 사운드, 성찰적 가사, 미츠키의 보컬과 비례를 찾으며 특유의 달곰씁쓸한 분위기를 확연한 형태로 구축해 낸다. ‘Working for the Knife’에서부터는 타악기와 결합한 신디사이저 멜로디 라인의 텍스쳐가 옛 디페쉬 모드의 정취를 떠올리게 하는데, 우울과 동적인 록-댄스 사운드 사이의 놀라운 완급 조절을 선보이는 ‘Black Celebration’ 같은 곡의 탁월함이 ‘Working for the Knife’에도 존재한다. 촉촉하고 풍부한 여운을 남기는 미츠키의 보컬은 이런 다크웨이브 정서와 이상적으로 결합하지만 고딕 록의 보컬보다는 포크 발라드 보컬의 분위기를 부여하며 다채로움을 느끼게 해주는데, ‘Everyone’이나 ‘Heat Lightning’ 혹은 앰비언트의 질감으로 구축된 ‘I Guess’에서 이러한 역량의 진가가 발휘된다.
싱글들이 가진 팝적인 힘도 대단하다. 업템포의 신스 팝 트랙 ‘Love Me More’와 ‘The Only Heartbreaker’는 특유의 자기진술적 분위기를 간직하지만 동시에 80년대 신스 팝 송가들이 위력을 발휘했던 대중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작년 재패니스 브랙퍼스트가 싱글 ‘Be Sweet’을 통해 보여주었던, 신스 팝 페티시즘에 동시대성을 부여하고 오늘날 대중음악시장에 매력적으로 소환해내는 묘기를 미츠키 역시 보여주고 있다. 다만 좀 더 덤덤한 형태일 뿐. 미츠키의 공연장에서 ‘Love Me More’를 다같이 따라 부르며 춤출 날이 어서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츠키가 2018년 써 두었던 “Laurel Hell”의 수록곡들은 팬데믹의 고독한 시간과 여러 고민의 순간들을 지나 마침내 세상의 빛을 봤다. 평단을 환호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말하기를 하기 위해 장르음악을 경유하는 것. 이것은 미츠키의 커리어 속 그가 지켜 왔던 일관된 태도였다. 이를 되새기며 복귀한 미츠키. “Laurel Hell”은 미츠키가 시도하는 뉴 웨이브가 아니고, 미츠키의 뉴 웨이브다.
"Laurel Hell", Mitski
2022년 2월 4일 발매
정규 앨범
장르: 신스 팝, 뉴 웨이브, 다크웨이브, 인디 팝, 얼터너티브 록, 일렉트로닉 록
레이블: Dead Oceans
평점: 7.3/10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