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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소금 Nov 10. 2021

불편하고 사랑하는 나의 엄마

친정엄마와 3일 이상 지내면 불편해지는 딸이 쓰는 고백록

결혼 전에 엄마와 나 사이는 정말 잘 통하는 사이좋은 친구 또는 연인 같은 모녀지간이었다. 엄마는 나의 세상이었고 엄마도 맏딸인 나를 많이 의지하면서 서 “너는 나의 기쁨, 너는 나의 자랑.” 하며 그렇게 사셨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우리 엄마가 나의 양육 방식에 끼어들고(?) 내 살림에 관여할 때마다 나는 긴장한 군인처럼 엄마를 적으로 느끼고 전투태세가 되었다. 그게 다 하나의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왔음에도 아직 몸만 떨어져 나왔지 정서적으로는 독립되지 못한 어른아이 상태였기 때문인걸 발견했다. 그리고는 엄마도 나도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들을 겪었다.


모체에서 나와 하나였던 우리 아이들도 탄생하고 커가면서 탯줄이 끊어지고 젖을 떼고 조금씩 자기만의 공간과 자기 세상을 만난다. 모자동실 하며 같은 공간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자웅동체처럼 꼭 붙어있던 모양을 지나서 조금 떨어진 아기 침대에 눕히고, 컵을 사용하는 시기가 되니 또 몇 발짝 더 떨어졌다가 다시 내 품에 돌아왔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적절한 시기가 되어서는 잠자리도 독립했다. 한 방을 쓰는 남매를 보면서 “내년에는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자. 방이 하나 더 있어야겠어.” 계획을 세운다. 자라는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공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떨어지고 분리되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가 아님에도(오히려 정상적이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임에도)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자식은 곧 ‘나 자신’이라 믿는 신념이 좀 더 강했던 것 같다.



학부 때 종교학 수업을 흥미롭게 들었다. 한국사회에 오래 뿌리내린 유교문화와 그 사상의 근본에는 태어나는 자식이 곧 나의 또 다른 존재라는 의미가 강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운명과 본질을 담는 이름을 지을 때도 조상들이 미리 정해 둔 항렬자에 따라 후대 자손들의 이름을 짓는다. 아버지 이름에서 돌림 자를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짓는 것은 “내 자식은 곧 나”라는 의식을 짙게 반영하는 것이다. 내가 죽고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나와 똑 닮은, 나의 존재와 다름없는 나의 자식들은 여기에 그대로 남아서 가문을 이어가고 조상들의 못다 한 생까지 살아나간다고 믿었다. 자식이 원하든 않든 부모의 동일화는 자식에게 투영된다. 한국인 부모의 밑바닥 저기 어딘가에는 이 유교사상이 알게 모르게 많이 깔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한국 부모의 양육방식을 비교한 다큐멘터리에서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다. 실험을 통해 뇌를 분석하는 장면에서 미국인 엄마와 한국인 엄마의 뇌가 달랐다. 미국 엄마의 뇌는 자녀와 자기 자신을 완전히 분리된 각각의 고유한 개체로 인식하는 반면 한국 엄마의 뇌는 자녀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여 거의 일치된 하나의 존재로 인식했다.




엄마도 나도 서로 사랑할수록, 이 세상에서 대체 불가한 유일무이 소중한 관계일수록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서로의 울타리를 침범하거나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걸 몇 번의 전쟁 끝에 깨달았다. 어지럽게 마구 뒤섞여있는 세상이 아니라 반드시 ‘독립된 자기 세상’에 살면서 질서있게 서로를 사랑해야 함을 온몸으로 배우고 있다.


엄마는 나의 가정을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독립된 가정으로 존중해야 하고 나도 엄마의 새로운 삶을 응원하며 부디 내가 엄마 인생의 유일한 의미가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엄마가 더 이상 자식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로 살면서 그 자식이 보이지 않으면 고개를 숙이는 삶이 아니었으면 한다. 그만큼 더 다양한 삶의 의미를 찾고 이제는 새로운 행복들을 만나기를 누구보다 응원하고 바란다는 말이다. 엄마와 딸이 서로를 아무리 사랑해도, 서로가 아무리 애틋하고 끔찍해도 엄마가 딸의 인생을 대신 살아서는 안되고 딸 역시 엄마의 행복이 자기 인생의 목표가 되어 엄마 인생을 살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서로가 불행해지고 병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오셔서 머물다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엄마가 나의 주방에서 서성이며 내 살림을 자기 방식대로 바꿔놓을 때마다 불편해지는 내 마음이 죄스러웠다. 나는 불효자식이구나 하면서 정말 많이도 괴로워했다. 이제는 내가 너무나 정상이고 그 불편함의 발생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임을 인정한다. 여기는 우리 집,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사는 우리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고 때때로 엄마가 그립지만 여기가 엄마 집이 될 수는 없다.


부모 자식 간에도 지킬 것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그게 독립된 한 인간, 어른다운 어른의 삶이기 때문이다. 많은 육아책에서 양육의 가장 완전한 목표, 반드시 도달해야 할 그 종착점은 자식이 나 없이도 정말 잘 사는 ‘독립’이라고 배웠다. 자식들은 몸과 마음이 커져서 독립해야 한다. 그게 자식이 이루어야 할 인생의 과업이다. 엄마에게 여전히 한 번씩 “난 엄마 없으면 안 돼! 그러니 건강하세요.” 감사하단 말을 그런 표현으로 대신 전하곤 하지만 사실 이제 나는 엄마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부모’가 되어가는 중이다.



요즘도 엄마는 저녁이 되면 카톡을 남긴다.

“딸 뭐해~? 김치를 담갔는데 너무 맛있어서 딸 생각난다. 언제 와서 가져갈래~? 아님 엄마가 가져다줄까?”

엄마는 나와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시시때때로, 자주 이렇게 꼬신다(?) 예전 같았으면 내 생활 내 일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갔을 텐데 그게 내 삶을 너무 피곤하게 하고 무질서하게 만든다는 걸 알았다. 엄마가 너무 외로울까 봐, 우리 엄마 나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런 서글픈 상상을 하면서 아주 작은 일에도 엄마를 가엾게 여기고 거절할 줄을 몰랐다. 어느 날 남편이 갈등하는 나를 보면서 “OO가 장모님의 엄마가 아니잖아.” 하면서 그렇게 힘들어하며 살 필요 없다고 그저 자식 된 삶을 살면 된다 직언하고 위로해주었다.


이제 가끔은 엄마를 거절한다. 나의 생활과 나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먼저 챙겨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나는 불효녀가 아니라   일을 아주 잘하고 있는 책임감 있는 어른이니까. 점점  많이, 엄마도 나를 이해해준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자리를 찾아간다. 장을  때마다 동생과 나를 위한 계절을 장바구니에 고르고 골라 담아서 정성스러운 밥상으로 우리를 키워준 나의 엄마, 라떼는말이야- 하면서 그때  시절에는 남편들이 아기 기저귀  번을  갈아줬고 몸조리도 제대로 못했으니 너는 행복한줄 알아야 한다며 푸념 .  한편으론 달라진 세상을 사는 딸을 보며 부러움 , 안도감  그렇게 엄마의 상처를 툭툭 풀어놓기도 하는 나의 엄마



나도 그런 우리 엄마처럼 살고 싶어서

그리고 엄마와는 정말 다르게 살고 싶어서 내 마음을, 나의 하루를 자주 돌아본다.



여전히 감사하고 사랑하는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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