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걍팍할 때는 온통 자기만으로 가득 차 깃털 하나 꽂을 데 없는 것이 마음이라고 했다. 그 안에 다른 무엇을 들이고 품는 게 쉬울까
대수롭지 않은 주변과 일상이라면 더욱 그렇다. 옆에 있어도 옆에 없고 봐도 본 게 아니며 들어도 들은 적 없다.
오늘 아침에 친한 동생의 연락을 받았다. 온 식구가 백신 2차 접종까지 하고도 코로나에 걸렸다고 떨리는 목소리이지만,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너무 평온한 나날들을 보낸 걸까,
여기 섬에서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산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전활 걸어온 동생의 어머니는 4년째 혈액 암으로 투병 중 이시다. 그런데 코로나까지 보태다니, 너무나 기가 막혔고 걱정스러웠지만 동생은 더 힘들 것 같아서 내색하지 않았다.
동생은 죽을병은 아니지만 죽을 만큼 공포스러운 오한과 두통에 시달리면서 별 뾰족한 수 없이 타이레놀만 먹고 있으면서도 자기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아플까 봐 떨고 있었다. 그냥 우리 가족만 아프고 지나가면 좋겠는데 자기 때문에 또 다른 이웃이 피해를 볼까 봐, 혹여 그 사람들의 생계가 흔들릴까 봐 더 겁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금요일 이후부터는 아무도 안 만났으니 천만다행이란다.
순하고 착한 사람들이 왜 아파야 할까
나는 아직 그 이유를 모른다.
딸이랑 같이 기도했다. 8살 딸은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코로나와 함께’ 사는 세상이 아니라 온 세계에서 그 지겹고 지독한 코로나가 완전히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나는 내 속엔 내가 너무 많다고 기도했다.
백신을 맞아도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리지만 백신을 맞은 사람과 맞지 않은 사람이 점점 더 구분되어서 살아야 하는 세상이 나는 아직 낯설고 의아하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돌같이 딱딱한 굳은 마음은 갈아 엎어지고 여린 새순같이 보드라운 마음이 돋아나면, 그러면 절대 놓치고 살지 말아야 할 것들을 조금 덜 놓치고 살 수 있겠다. 더 많은 것, 소외된 것, 약한 것들을 보며 살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