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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소금 Nov 24. 2021

담백하고 청순한 맛, 양배추감자전

나의 소울푸드 감자전에 아삭함을 더하면

얼마 전 책을 읽다가 빨래 냄새에도 이름이 있다는 걸 새로 알았다. 이제 막 빨아서 다린 옷을 입는 순간은 '인생에 있어 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의 하나'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사람들은 빨래 냄새를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면 캔들이나 방향제로도 런드리(laundry) 향을 따로 만들어 팔고, 그 냄새를 돈 주고 사서 맡는다.


'빨래하여 이제 막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를 나타내는 말에 런드리 향 말고 순수 우리말 명사가 있다. '새물내'다. 빨래 냄새를 분류해서 이름을 붙여주다니 얼마나 섬세하고도 풍부한 언어적 감수성인가, 감탄했다.



"나는 한갓진게 좋고 잠포록한 날씨를 좋아하고 어둑발 내려앉는 시간을 좋아하며 새물내를 좋아하고 얕은맛을 좋아한다."
- 유선경, <어른의 어휘력>, pp166

*새물내; (명사) 빨래하여 이제 막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

*얕은맛; (명사) 진하지 않으면서 산뜻하고 부드러운 맛. 산뜻하고 싹싹하며 부드러운 맛.



순수 우리말 어휘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면서 보통날 처럼 빨래를 돌리고 건조기에서 막 나온 따끈함과 포근함을 느껴본다. 흰 옷은 따로 분류해서 베란다에 널었다. 새하얀 셔츠, 아이의 작은 블라우스를 탁-탁 털 때마다 새물내가 난다. 사부작사부작 집안일에 새물내를 맡고 나니 허기가 진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꽤 고요한 시간, 자극적이지 않고 가벼우면서도 속이 든든해지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팬트리의 그 자리 항상 거기!있는 감자 박스에서 흠이 없는 감자를 골라 씻고 믹서기에 물 없이 갈아준다.

그 옛날 엄마는 뽀얀 감자 한 알 한 알을 강판에 갈아 부쳐주셨다. 그 맛은 어른이 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포근하고 값 비싼 맛이다. 감자만 갈아 부치기가 심심하니 우리집 냉장고에 항상 준비되어 있는 양배추를 채썰어서 듬뿍 넣었다. 소금 한 꼬집 외에 다른 양념은 하지 않는다. 별다른 기술도 필요없이 기름 두른 팬에서 폭닥폭닥 부쳐준다.



감자는 갈고 양배추를 섞는다. 전분가루 1스푼, 물이 너무 많다면 통밀부침가루 1스푼 더. 집에 있는 그 어떤 가루든 상관없다.

기름에 지졌는데도 느끼함이라곤 하나 없는 담백하고 청순한 맛 양배추 감자전!

책에서 본 표현 그대로 '얕은맛'이 난다. 양배추가 들어가서 산뜻하고 싹싹하며 감자의 부드러운 맛이 조화롭다. 딱 얕은맛이었다. 새물내를 맡고 나서 먹기 좋은 얕은맛 양배추 감자전, 고단함은 날아간다. 엄마가 놀러 오시면 강판에 갈지 않아도 이토록 훌륭한 맛이 난다고 자랑하면서 몇 장 부쳐 드려야겠다.



겨울이라고 매일 차갑고 매섭기만 했다면 얼마나 우울했을까? 추운 계절에도 이렇게 말도 안되는 햇살을 느낄 수 있으니 내가 믿는 신은 얼마나 공평한가. 영혼까지 포근하고 한갓진 오후다. 수고롭게 새물내를 맡고 얕은맛을 느껴보는 것은 살림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 자발적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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