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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소금 Dec 18. 2021

노을에게,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글쓰는 신앙인

아빠의 장례를 마치고 급하게 카페를 정리했다.

도망치듯 제주로 왔다. 나는 그리스도인 이지만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해준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멘, 예 그렇습니다. 내가 믿습니다."의 한 문장으로 마침표를 찍거나 무 자르듯이 단칼에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깊은 당혹감과 허망함에

질식하지 않도록, 나는 급하게 이곳으로 빠져 나왔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죄와 죽음 그리고 구원대해서 낱낱이 밝히고 있지만,  활자들이 살아서 나에게 진실한 의미로 이해되기까지 나는 곱씹고  곱씹어 봐야 했다. 꼭꼭 씹고 직접 마주해야만  죽음의 터널을, 슬픔을 통과할  있을  같았다.



아빠에겐 가망이 없으니 곧 죽을 거라 했다. 나는 의사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듣고계신 분이라 철썩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옆에서 그런 나를 어린아이 보듯 안쓰럽게 보았다. 왜 나를 그렇게 보는거냐, 당신은 기적을 믿지 않는거냐고 화를 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눈먼 자를 다시 보게하고 죽은 자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빠를 일으킬거라 믿었다.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내내 아빠를 휠체어에 태우고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나에게는 그런 무모한 신념이 있었다.




다시 삶을 살아가야 할 나에게 주님은 노을을 보게 하셨다. 여기에서 노을을 참 많이도 보았다. 노을은 볼 때마다 경이로웠다. 노을이 입이 있어 무어라 말을 하며 가르쳐준 것은 없지만 노을을 바라보는 그 침묵의 순간이 나에게는 치유였고 황홀경이었다.

분명 노을은 지는 것(go down)인데 우리말은 sunsetsunrise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냥 '노을'이다.

저녁에 해가 지는 일몰과 다시 해가 떠오르는 아침 일출을 구분하지 않는다. 하나는 가는 것이고, 하나는 떠오르는 것. 탄생과 죽음처럼 극과 극이다. 그런데 같은 것이다. 아빠는 sunset의 영역에 있고 나는 아직 sunrise의 시간에 있을 뿐이었다. 같은 노을빛이다.



아빠는 중환자실에서 세례를 받고 그렇게 해 처럼 커다란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영원한 선셋은 없다. 일출과 일몰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아침을 만들고 저녁을 만들듯이 기독교의 죽음과 부활이 그렇다. 영원한 죽음이란 없고 죽음은 다시 영원한 생명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노을이 내게 말씀이 되기까지 아빠의 3주기동안 나는 그 황혼을 음미하고 또 음미했다. 사랑하는 이들이 수도 없이 떠날 앞으로의 또 다른 죽음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그것을 준비하기 위하여. 허울뿐이 아닌 알맹이로 더 확실히 서기 위하여.



매일 노을을 보게 하셨던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딱딱하게 굳어져버린 강한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 아닌 언제든지 뭉그러질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달라는 요청. 신념은 굳게 믿는 마음이다. 무조건 믿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망설임 없이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무섭다.) 사랑이 아닌 겁에 질려서, 정죄와 두려움에 빠져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덮어놓고 진실은 잘 모르지만 믿을 수도 있는 아주 강한 힘이다. 대상은 신이 될수도 있고 자기 자신, 자기 생각, 자기 의, 돈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성공한 사업가들이나 종교지도자, 테러리스트들에게도 붙을 수 있는 말이 바로 신념이다. 신앙은 다르다. 믿고 받들게 되는 의미가 있다.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다. 두려워하고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지만 때로는 질문할 수 있고, 질문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나약함을 끝없이 의뢰하는 것이다.



내 신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 아닌 살다가도 언제든지 내가 틀렸고 당신(you, Lord)은 옳다 이지러질 수 있는 여리고 진실된 신앙인으로 살고 싶다. 어둠이 흩어지고 빛이 스며든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곧 공허한 밤이 되는 저녁 노을을 아침의 노을로 맞이할 수 있는 부활의 힘, 다시 또 아침이 오고 있다.



#새벽에쓰는기도 #노을 #황혼 #제주의노을

#십자가와부활 #죽음을이기는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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