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이야기
구정에 눈이 펑펑 왔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TV를 보니 "캠핑의 꽃은 겨울캠핑"이라고 했다. 겨울에는 추워서 밖에 나가기도 힘든데 무슨 말인가 싶었다. 뭐가 좋다는 건지 알아 볼 겸 계획에도 없었던 불멍을 하기로 했다. 마트에서 가리비와 맥주를 샀다. 구정을 맞아 내려온 어머니와 도련님도 추워서 나오기 싫어했다. 그렇게 춥고 까만 겨울밤, 장작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토치로 장작을 한참 지피니 불이 점점 붙어 불타기 시작했다. 불 앞에 있으니 한 겨울밤인데도 춥지 않았다. 맥주와 주스를 소복이 쌓인 눈에 꽂아 놓았다. 온 세상이 냉장고였다. 불길이 적당한 곳에 석쇠를 깔고 가리비를 올렸다. 잘 될까 싶었는데 금방 가리비가 입을 벌리고 지글지글 끓었다. 꺼내서 겨울바람에 잠시 식혀 먹으니 꿀맛이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니 처음부터 한 가지 음식이었던 것처럼 어우러졌다. 추운 날에 차가운 맥주를 이렇게까지 맛있게 마시게 될 줄을 몰랐다. 눈 때문이었을까? 안에서 먹으면 이 맛이 안 날 것 같았다. 별말 없이 그렇게 있었지만 나오기 싫어했던 어머니와 도련님도 생각보다 오래 자리를 지켰다. 겨울캠핑은 그 특별함이 캠핑의 꽃이라 불릴만했다.
혹한기 정원에 할 일은 많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몇 가지 일이 있었다. 추워서 고양이는 보이지 않지만 고양이 대변은 항상 있다. 고양이 대변을 찾아서 버린다. 고양이는 겨울잠을 자지 않으니 일 년 내내 하는 일이다. 고양이 대변을 다 찾아서 버리면 꼭 빼먹은 게 나오는 게 머피의 법칙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정원에 누워 있는 고양이를 봤다. 판석 위에 누워 있었다. 거기는 우리 집에서 제일 볕이 잘 들고 풀이 없는 곳이다. 이렇게 똑똑한 고양이들인데 대변 찾는 수고라도 줄이게 정해진 곳에만 대변을 누어주었으면 좋겠다.
농사 창고를 지나다 구정 때 뿌리려고 사둔 농약이 보인다. 잔디밭에 잡초가 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농약이다. 잔디가 휴면기인 겨울에 뿌리면 잔디 씨앗은 감싸서 보호하고, 새로운 잡초 씨앗은 발아하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나에게 농약 뿌리기는 아직도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두려움을 꾹 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잔디는 정원의 메인 디쉬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석에서 놀고 있는 자동잔디깎이를 보았다. 올 한 해 얼마나 많은 잔디 깎이를 해야 할지 가늠해 본다. 잔디는 전원주택 마당에 푸르름을 주지만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게 한다.
자꾸 눈이 폭탄처럼 왔다. 발목 위로 오는 눈이 벌써 두 번째다. 내가 사는 전주에는 흔치 않은 일이다. 오랜만에 정원에 나갔다. 지난 구정에 피웠던 화로대를 치웠다. 화려했던 불꽃은 검은 숯이 되어 조용히 남았다. 소복이 쌓인 눈 속에 잔디도 텃밭도 모두 두꺼운 눈이불을 덥고 있다. 또 한 번 잠들 시간이 왔다. 다시 한번 겨울잠들지 않은 동물들만 나와 캠핑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