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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정원 Apr 09. 2024

봄꽃으로 시작된 청춘의 정원

4월 이야기

  아침과 저녁의 온도는 한자리지만, 낮의 열기는 다가올 여름을 미리 보기 해준다. 아침마다 옷장 앞에 서서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입어야 할지 고민이 길어지는 4월이 되었다. 때아닌 봄비가 며칠간 주룩주룩 내렸다. 비옷을 입은 선거원들의 선거 운동도 열기를 더한다. 낮기온이 20도를 넘어가면서 수국과 작약도 깨어났다,

 출퇴근만 반복하는 직장인이지만 거리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먼저 별 존재감이 없던 가로수들이 갑자기 벚꽃 팝콘을 터트리며 거리를 축제분위기로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바람에 날리는 벚꽃은 우수에 젖게 하고, 비 맞아떨어진 모습까지도 아름다웠다.  도로가에 가지런히 심어진 철쭉 꽃망울을 잔뜩 부풀린다. 자주색에서 붉은색까지 색이 다양하다. 노란 개나리도 쏟아질 듯 터져 나왔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한결 같이 봐온 봄 풍경 엄마가 된 지금까지 해마다 이어지는 게 새삼스럽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식물들이 새삼 존경스럽다,  

 주택으로 이사를 오고 세 번째 봄이 시작되었다,  욕심이 가득한 나라서 항상 더 심어 놓을걸 후회를 많이 한다. 2년간의 후회를 통해 얻은 결론은 '심을 거라면 4월에 부지런히 심자'였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3월부터 시작해 11월이면 마감되는데, 일찍 시작할수록 온화한 날씨 덕에 쉽고 오래 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심고 늘려야 하는 4월, 1년에 딱 한 달의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깨달음이 온 김에 몸을 부지런히 움직다.


먼저 화원에 갔다. 이웃집 정원에 화원에서 사다 나른 꽃모종들이 쌓여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화원 앞마당은 역시나 오색의 꽃모종으로 꽉 차 있었다. 보통 한가하던 주차장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사장님도 계산하랴 사람들 질문에 대답하랴 많이 바빠 보였다. 단짝 친구와 꽃쇼핑을 온 아주머니들의 대화가 끊이지 않고 눈빛이 하나같이 반짝거렸다. 일단 항상 고르는 바질과 로즈메리를 담았다. 그리고 올해를 함께할 일년초를 고민했다. 내년이면 사라지겠지만 일 년 내내 꽃이 피고 지는 일년초들은 항상 곁에서 정원에 생기를 더한다. 장마도 더위도 뚫고 오래 남아줄 든든한 바탕색 같은 존재다. 미니 백일홍을 색깔별로 고르고, 버베나도 몇 가지 골랐다. 장미에 꽂을 액체비료와 살충제도 고르니 작은 상자가 가득 찼다. 값을 치르고 차로 실고 오니 차 안에 꽃 향기와 허브향이 가득하다.

집으로 돌아와 꽃모종의 자리를 잡았다. 색이 조화롭도록 이리저리 놓아보고, 다 컸을 때 높이를 고려해서 가리지 않도록 작은 꽃들은 앞으로 큰 꽃들은 뒤로 놓아야 한다. 가장 진지하고 고민되는 순간이다. 자리를 찾았으면 물에 담가서 모종의 흙을 털어낸다. 다음 날 땅에 꽃을 심었다. 백일홍과 버베나가 이미 꽃을 달고 와서 화단이 알록달록해졌다. 아들은 나란히 심은 삼색 백일홍을 보고 신호등 같다고 했다. 하지만 아름다움도 잠시, 가위로 적당한 가지를 찾아서 자른다. 잎과 꽃을 잘라내고 흙에 꽂는다. 일년초들은 흙꽂이가 참 잘된다. 몇 줄기 잘라서 꽃 주변에 꽂았다. 꽃밥 가득했던 싱싱한 버베나가 피곤한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몇 달만 지나면 몰라보게 번식할 모습을 상상하면 그리 슬프지 않았다. 일년초 5 포트로 화단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는다. 3년 차 초보 가드너지만 봄의 기운을 업으면 뭐든지 다 번식시킬 수 있을 것 같을 만큼 봄의 기운은 강력했다. 식물이 주식이라면 나는 워런 버핏이 된 것만 같다.  이렇듯 시작이라는 것은 다가올 미래를 희망으로 그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 것 같다. 그래서 젊음을 청춘, 봄에 빗대나보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는 청춘의 나이는 지났지만 다시 찾아온 봄으로 그때의 싱그러움을 다시금 마음에 품어보고 있다.


장미를 심은지 2주가 지났다. 큰 변화는 없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줄기와 잎들이 조촐하게 돋아나 있었다. 그늘 진 휀스에 심은 장미는 왠지 시들시들하고, 양지바른 정원 입구 아치에 심은 장미는 잎이 싱싱하고 반짝거린다. 지난가을에 미리 심어서 겨울을 지낸 땅장미들은 잎과 줄기의 성장세가 무섭다. 겨우내 얼음 자세로 보냈던 시간을 보상하려는 듯 하루 만에도 잎과 가지가 솟아난다. 여기저기로 정신없이 자라나서 줄기와 잎들로 몰라보게 빽빽해졌다. 빽빽하게 자라버린 장미에 바람도 통하게 해 줄 겸 가지를 좀 치고, 지를 적당 라서 잎을 떼내고 흙에 꽂았다. 우리 집 화단은 하루 종일 그늘지기 때문에 바로 흙에 꽂아도 될 것 같다. 래 장미 주변에 스무 개 정도  꽂았다. 아치에 심은 덩굴장미도 반대 편에 심을 장미가 필요하기 때문에  줄기 땅에 꽂았다. 별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꽂아서 자칫 장미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봄기운과 땅의 힘을 믿어본다. 꽃을 많이 만들라고 액체비료를 꽂아주고, 병해충이 올라오지 말라고 장미 밑에는 이끼이불을 깔아줬다.

불현듯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는 씨앗이 떠올랐다. 1,2년 차 때 사 모았던 씨앗들이다. 하나하나 키울 형편이 못되어서 양이 많은 씨앗을 두 봉지 골랐다. 설악초와 안개초이다. 한 곳에 뭉쳐서 나지 않도록 흙과 섞어서 설설 뿌려줬다. 하얀 야생화 화단으로 군락을 이룰 것이다. 앞으로 물만 말리지 않으면 싹이 우수수 솟아날 것이다.


이제 매일 정원으로 나가 물을 줘야 한다. 씨앗에 물을 줘서 싹을 틔우고 흙에 꽂아놓은 바질, 백일홍, 버베나, 장미에 뿌리가 날 때까지 땅을 촉촉하게 적셔야 한다. 매일 할 일이 생겼지만 식물들이 기운차게 자라 꽃 피울 모습을 상상하면 내 마음은 행복해진다. 봄의 기운이 어찌나 소중한지 가드너들은 이거 하랴 저거 하랴 바쁘고, 다른 집들도 정원이 가족들로 북적거리고, 올해의 정원으로 예쁜 단장을 마쳤다. 봄을 맞은 가드너는 바쁘지만 보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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