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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정원 Jul 02. 2024

모종과 텃밭

5월 이야기

어린이날을 낀 황금연휴가 시작되어 혼자 시장으로 향했다. 어린이날이 오기 몇주 전부터 머리속으로 뭘 심을지 몇개나 살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이 날을 기다려왔다. 2시의 낮 기온이 심상치 않게 더워 차에 에어컨을 틀고 시장으로 갔다. 먼저 농약방으로 들어가 몇 가지 농약을 샀다. 사장님의 설명으로 필요 없는 약은 빼고 필요한 만큼만 살 수 있었다. 농약을 어떻게 뿌릴 건지 물어보시고는 조리개로 뿌린다고 하니 넣어야 할 양을 매직으로 약병에 적어 주셨다. 농약은 생각보다 적은 양이 들어가고 희석이 중요하다. 겨울에 뿌릴 잔디 제초제까지 샀더니 꽤나 무겁다. 그래도 어깨에 짊어지고 근처 단골 카페에서 밀크티를 테이크아웃했다.     

과연 농번기답게 시장 가게마다 모종들이 공장처럼 어마어마하게 진열되어 있다. 긴 겨울을 끝내고 새 농사를 준비하는 농사꾼들의 설렘이 느껴졌다. 판매하는 아주머니께서 친절할 것 같은 가게로 들어갔다. 쉬운 텃밭 작물 옥수수, 부추, 오이를 많이 샀고, 그 외는 실험용으로 최소한으로 골랐다. 모종 종류와 개수를 말하면 아주머니께서 가위로 모종판을 하나하나 잘라 주시는 식인데, 너무 이것저것 조금씩 사니까 죄송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작물마다 장단점이 있고, 올해 기후가 과연 어찌 될지 자신이 없어서 이것저것 맛만 보게 되었다. 청양고추 2개, 방울토마토는 종류별로 1개 씩만, 가지 2개만 골랐다. 그냥 한번 시도해 보는 작물로 실같이 생긴 아스파라거스, 케일, 당귀도 샀다. 내 기억 속에 병해가 없었거나, 없을 것 같은 것들만 추렸다. 특이하게 해바라기 모종이 있어서 울타리에 재미로 심으려고 몇 개 샀다.     

일 년에 딱 하루 어린이날에만 하는 모종 쇼핑에는 특별한 재미가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게에 가서 이렇게 점원을 부리며 "이거 주세요, 저것도 주세요" 하며 끝도 없이 골라본 적이 없는데, 모종 쇼핑은 끝도 없이 고를 수 있다. 초특급 식물 물가로 모종 쇼핑을 할 때면 돈 걱정 없는 쇼핑이 이런 걸까 대리 체험을 하곤 한다. 이 재미 때문에 텃밭을 갖고 나서는 모종 쇼핑이 은근히 기다려진다. 모종을 다 고르고 나면 아주머니의 정겨운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거스름돈으로 축축하게 젖은 천 원짜리 몇 장을 받았다. 친절하게 손잡이를 만들어주신 종이 박스 가득히 올해의 모종들이 실렸다.      

모종 쇼핑

이것저것 사들고 온 정원 한쪽 텃밭은 왠지 막막한 기분이다. 거름을 세 번이나 섞어서 지렁이들로 우글거리는 텃밭을 괜해 호미로 뒤섞어봤다. 일단 모종은 텃밭 한편에 던져 놓았다. 한 번 심으면 1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기에 관리하기 편리하게 심어보고 싶었다. 모종 심기 첫 타자로 옥수수와 해바라기를 집어 들었다. 옆집과 경계를 따라 쭉 심었다. 키가 커서 사생활 보호를 해 볼 심산으로 심었다. 그리고 오이이 지지대를 설치했다. 겨우내 정원 구석에서 놀고 있던 이불빨래 대을 텃밭으로 옮기고, 안 쓰는 장미 휀스도 뽑아다가 덧대어 놓으니 모양새가 합체로봇 같이 생겼다. 6개의 오이를 태울 지지대가 완성됐다.     

대기중인 모종

다음은 부추를 심었다. 어머니가 친구에게 얻어온 부추를 벌써 삼 년째 잘 베어 먹고 있다. 병충해가 없고, 알아서 월동까지 하니 너무 고마운 작물이다. 인터넷에 보니 '부추를 안 키워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키워본 사람을 없다'라고 할 만큼 모두에게 쉬운 작물이었다. 잘 안 가는 옆 텃밭을 통으로 부추밭으로 쓰려고 군데군데 빈자리에 모종을 심고, 잘 번지지만 왠지 손이 안 가는 돌나물과 머위는 뽑았다. 머위 뿌리는 가락국수 면발처럼 굵은 데다가 멀리까지 뻗쳐있었다. 이대로 부추 자동화 공장을 얻은 것 같은 든든함에 주부의 마음이 풍족해졌다. 그 뒤로 나머지 모종은 배치가 고민이 되어서 심지 못하고 텃밭에 두었다.     

무려 이틀이나 모종을 텃밭에 방치했다. 뜨거워지는 날씨에 더위를 고추 모종은 더위를 먹은 듯 누래져서 얼른 심기로 했다. 나중에 따 먹기 쉽게 키순으로 심기로 했다. 키가 큰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는 멀리 심고, 키가 작은 케일, 바질, 당귀, 부추, 아스파라거스는 앞 쪽에 심었다. 올해가 벌써 텃밭 3년째라 경험이 쌓였다.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는 지지대를 미리 세웠다. 간격은 넓게 더 넓게 벌렸다. 예전에는 잘 모르고 가깝게 많이 심었는데, 방울토마토가 워낙에 덩굴져서 자라서 서로 엉켜 열매 수확도 못해서 결국 옮겨야 했고, 고추는 장마에 습할 때에는 통풍이 안돼서 벌레의 온상이 되어 뽑아 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손을 넣을 수 있어야 수확도 가능하다. 지지대를 최대한 힘줘서 깊게 박고, 아직은 키가 작아서 묶는 것도 힘들지만 줄기와 묶어서 고정했다.

고추와 가지 지지대
부추
케일과 당귀

바질을 심었다. 바질은 허브지만 바질페스토와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로 잘 쓰여서 최대한 많이 키워보고 싶다. 참지 못하고 4월 초에 심어놓은 바질 2개는 전혀 새잎을 내지 않고, 꽃대를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환경이 좋지 않으면 꽃을 피우고 빨리 씨앗을 만든다던데, 4월 동안 아침저녁의 냉기가 바질을 얾음 상태로 만들었나 보다. 하지만 뿌리는 아주 건강하게 뻗쳐 있었다. 텃밭에 남는 공간은 바질로 채우기로 하고 키 큰 바질 한 개를 세등분 해서 바질 줄기 2개를 얻었다. 잎과 줄기를 뜯을 때마다 바질 향이 강하게 퍼진다. 바질 줄기를 흙에 깊게 꽂아놓고 뿌리가 나기를 기다린다.     

바질 심기와 흙꽂이

이제 내가 할 일은 80프로 이상 끝났다. 가끔 생각날 때 물 주고, 쓰러지면 지지대에 묶는 정도만 하면 알아서 잘 커서 내 집 앞 공짜 마트가 되어줄 것이다. 아스파라거스는 꼭 민들레 홀씨처럼 생겼는데, 과연 어떻게 통통해질까, 케일은 잘 크고 벌레 뜯어먹지 말라고 화분에 심었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당귀를 원래 그늘에서 키웠는데, 햇볕으로 옮겼으니 더 자주 따먹을 수 있을까. 별별 기대감이 샘솟는다. 모종이 곧 죽을 것 같이 생겼지만 크게 게이치 않았다. 심어만 놓으면 나도 모르는 새 키가 커지고 가지가 뻗어나가 열매가 알알이 맺힐 것이다. 텃밭 농사는 하루 짓고 거저 먹는 것 같기에 모종 쇼핑과 텃밭 가꾸기는 포기할 수가 없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하루하루 변해가는 식물들을 봐주고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단순한 일들일 것이다.

완성된 올해의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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