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정원. 차츰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다. 진작 왔어야 했는데 이제야 만난 가을이 왔다. 이제 차는 집에 두고 출퇴근을 걷기로 했다.
2년 전에 심어놓은 꽃무릇이 나타났다. 2년간 꽃을 못 봐서 포기했는데, 끈질긴 딱 한 송이가 우뚝 솟았다. 한껏 하늘로 치솟아 오른 속눈썹처럼 빨간 꽃송이가 도도하다. 놀라고 예뻐서 눈을 뗄 수 없다. 꽃무릇은 구근 식물이라 땅속에 구근이 크다. 특이하게 줄기와 꽃이 먼저 폈다 쓰러지고 나면 잎이 자라난다. 2년간 전혀 존재를 표현하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난 완벽한 등장에 깜짝 놀라고 기뻤다. 튤립, 백합처럼 구근 식물은 이렇듯 등장과 사라짐을 반복하며 사람을 즐겁게 한다. 정원을 무대 삼고 계절의 지휘 아래 맘껏 연기하는 배우들 같다.
국화의 꽃망울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소식이 없다. 작년 생각이 난다. 가을이 오자 화원과 공원에는 탐스러운 국화꽃이 쏟아졌다. 그래서 정원의 국화꽃이 금방 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국화에는 꽃망울조차 없었다. 그렇게 노지의 국화는 가을 내 주인을 애태우다가 가을이 다 가고 나서야 피어났다.늦게 피어나서 꽃에 눈도 맞았다. 공부를 해보니 국화는 낮이 밤보다 길어야 피어나는 성질을 지녔다고 한다. 가을에 맞춰 쏟아지는 거리의 국화는 비닐하우스에서 광을 조절해 가며 섬세하게 타이밍을 맞춘 거였다. 자연 상태에서는 제법 추워져야 환히 핀 국화꽃을 볼 수 있었다. 국화의 계절은 겨울이라고 놓아주려고 한다. 이제 나에게 가을꽃은 국화가 아니라 꽃무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