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 in May 17. 2022

교문 앞 이방인

 교문 앞에 학부모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습니다. 어느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할지 어색합니다. 모여있는 학부모들과 교집합이 없어 멀찍이 떨어져 아이를 기다립니다. 잠시의 시간이지만 이야기 나눌 상대가 없는 것이 뻘쭘하기도 하고 자처한 고독에 스스로 초라해집니다.


 나는 교문 앞 이방인입니다. 한때는 나도 교문 앞에 모여있는 학부모 그룹 중 한 곳에 속해 있었습니다. 서로의 집을 오가고, 소문난 곳의 브런치를 함께 먹으러 다니고, 학교 생활과 학원 정보를 교환하고 그녀들과 조심스레 우정을 쌓아 나갔습니다. 그러나 학부모 그룹의 아이들끼리 사소한 다툼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오해는 쌓여갔습니다. 오래도록 빛을 낼 것 같았던 유리알 우정은 내 작은 그릇에 담기에는 버거웠는지 조금씩 금이 가더니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진심으로 대했고, 따뜻한 정을 나누었지만 아이의 상처가 고스란히 나의 상처가 되어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시는 학부모들과 깊게 교류하지 않으리라. ‘ 피치 못할 사정으로 또다시 누군가 또는 누군가들과 관계 맺음을 한다면 깨어짐을 염두에 두고 적당히 상처받아도 될 정도만 마음을 내어 보이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방심하고 있던 찰나에 느닷없이 누군가 또 열정적으로 다가옵니다. 굳이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지 않습니다. 마주침을 외면하고 싶지만 피할 도리가 없는 날이 있습니다. 서둘러 발걸음을 돌리려는 나와는 달리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상대방을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내가 상처를 받을까 봐, 내가 상처를 줄까 봐, 행여 나의 마음이 열릴 새라 꽁꽁 잘 닫혀있는지 확인해봅니다. 혹여 내가 헛된 기대를 준 것은 아니었을까? 한편 나한테 뭘 얻고자 하는 걸까? 미안함과 경계심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관계의 계산과는 멀찍이 담을 쌓고 손해 보는 것이 이익을 얻는 것이다라며 여유를 부리며 살았던 나도 학부모의 입장이 되면 예민하게 돌변하게 됩니다. 아이와 나를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기에 아이의 학교생활을 통하여 만나게 되는 학부모와의 관계 맺음이 쉽지 않고 항상 부담감이 따릅니다.


 아이가 학교생활을 즐겁고 편안하게 잘할 수 있도록 아이를 지지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입니다. 관계 맺음에 신경을 기울여야 할 대상은 아이와 나의 관계이지 아이 친구 엄마와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학부모의 길 위에서 누군가 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면 내어주고 이 복잡 미묘하고 모순적인 관계 속에서도 서로 격려할 수 있는 만남이 있다고 일말의 희망을 가져보면서도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기대와 실망 사이에서 초연한 무심한 여유가 언제쯤 생겨날까요?


이곳에서는 누구도 누구를 믿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웃어주고 뒤에서는 비난합니다.


이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절친이 내일의 적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룹을 만들어 편을 가르고,

우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깎아내립니다.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으면 우습게 보고

친절을 가식으로 평가하고,

다정함은 처세술이라고 판단합니다.


한마음으로 즐거워 보이지만, 각자 생각에 빠져있고

칭찬했지만 질투했고, 친했지만 외로웠습니다.


이곳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저울질합니다.

모두가 비즈니스 관계입니다.


차갑고 뜨거운 이곳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무던히 애썼습니다.


비겁함, 속상함, 부끄러움, 쓸쓸함 모두 털어버리려

나만의 월든을 찾아 생각을 비우고 싶습니다.


- 오후 3시 생각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사랑하는 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