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독자분들이 '웬 호들갑'이냐고 할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된 외국 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젊은 나이도 아닌데 (33살에 미국으로 오게 됨) 혼자가 아니라 와이프가 올 때까지 준비해하고 알아야 할 것들이 나에게는 참 많았다. 이제 겨우 집을 마련하고 학교를 왔다 갔다 하고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적응이 되었다 (곧 학생증으로 버스를 공짜로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겨우 첫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온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밥 한 끼 제대로 차려먹지 못했다. (계속해서 라면만 먹고 있었다). 아! 일단 밥솥과 쌀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검색해보니 Hmart에서 전기밥솥과 쌀을 배송해주는 걸 알게 되어 재빨리 주문을 완료하였다. 한국에는 다양한 브랜드의 밥솥도 있고 가격도 다양하지만 일단 미국에서 한국기업의 밥솥은 비싸서, 선뜻 결제를 하지 못하다가 이러다 굶어 죽을 것 같아서 주문 쌀과 함께 완료한다.
어찌 먹고 살래?
며칠 후, 드디어 밥솥과 쌀이 배송이 되었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마주하듯이 학교를 마치고 오자 집 앞에 큰 박스가 떡하니 놓여 있다. (나는 입맛이 완전 한국식이다. 그래서 부모님도 미국에 간다니 제일 처음 하신 말씀이 '어떻게 먹고사느냐?'였다). 몸을 휘날려 박스를 뜯고 쌀을 씻어 처음 밥을 짓는다. 반찬이 당연히 있을 리가 없다. 와이프가 싸준 볶음 고추장과 계란 프라이를 하나 하여 정말 개눈 감추듯 두 그릇을 비워버린다. 생각해보라, 해외 출장을 가도 하루에 한 끼는 쌀과 고춧가루가 들어가야 하는 사람이 거의 10일 동안 쌀을 먹지 못하였다니.. (실제로 첫 10일 만에 몸무게가 7 Kg 정도 빠졌었다). 이제 겨우 사람다운 삶을 살겠구나.
내 인생에 이보다 기다린 택배 박스가 없었다. (박스 뒤로 당시 나의 모든 살림이 보인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왜 이거 딸랑 두 개만 샀을까 싶다. 반찬도 사지..(밥솥이 300불이 넘어서 선뜻 살 수가 없었음)
(급속) 밥이 되는 10여 분이 마치 10일 같이 느껴지는
이렇게 급하게 밥을 지어먹고 해결하긴 했지만,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밥을 먹자 곧 김치를 먹고 싶다.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르는데 주변에 한국사람 (한국 유학생 포함)과 가게는 물론 아무런 정보가 없다. 그런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또 다른 인연을 만난다.
우연한 만남 2 ,한국사람이다!, 그리고 김치다!
지난 편에서 집을 계약하고 돌아가는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만난 외국인 친구를 만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썼다. 인생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게 항상 어떠한 길이 생기는 것 같다. 그렇게 김치를 그리워하며 학교를 갔더니 박사과정 담당 스텝 할머니가 나를 부른다. "여기 한국 방문 연구원이 왔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교수님이 안식년을 오셨나?' , '이 곳 시골까지 오셨네'라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러 갔더니 그 할머니가 생각보다 젊은(?) 학생같이 보이는 한 한국사람을 데리고 나온다.
나: "어..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어디 교수님이신가요?" 하며 너무 젊어보여 긴가민가 하는 마음에 인사를 청했다.
P: "안녕하세요. 네 저 교수는 아니구요. 지금 석사과정에 있는데 방문 연구원으로 왔습니다."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박승호 연구원을 만났다. 당시 박 연구원은 석사과정에 있었는데 학교에서 방문 연구하는 기회를 줘서 기술경영/혁신 쪽에 관심이 있어 Dr. Susan Sanderson 교수를 컨택해서 미국에 오게 된 것이다. 어쨌든 '첫 생각이 한국사람이다. 정말 반갑다' 그렇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 되는 게 맞다. 그렇게 잠시 통성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니 박 연구원이 "형, 그럼 오늘 저녁에 밥 먹으러 오실래요?" 하면서 "제가 김치찌개 끓여드릴게요"하는 것이다. 0.5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김치찌개'라는 말에 무너져 버렸다. "근데 제가 차가 없는데 어떻게 갈까요?" 했더니 직접 라이드를 하러 오겠단다. 김치찌개도 감지덕지인데 라이드까지! 마음속에서 감동의 도가니다.
알고 보니 박 연구원은 이곳으로 오게 되면서 당시 박사과정이었던 다른 한국분과 연락이 되었는데 그 박사과정 분이 한국에 잠시 방문하는 관계로 Sublet(렌트한 방을 다시 렌트함)을 받아서 다른 한국분과 함께 아파트를 쓰고 있었다. 동기가 될 대학원생을 한국에서 잠시 만났지만 미국에서 이미 대학원을 다니는 분들을 만난다는 마음에 너무나 궁금한 것도 많고 하여 나에게는 기쁨이 배가 되었다. 서글서글한 성격이 좋았던 박 연구원은 능숙한 솜씨로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 동공에 지진이 나기 시작했다. '김치다!'.
그렇게 둘은 갓지은 밥과 김치찌개에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반찬 몇 가지를 꺼내어 마치 최후의 만찬 같은 최초의 만찬을 가졌다. 1인당 수 십만 원 하는 Fine dining의 밥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미국에 왜 왔는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비슷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곧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형 자주 봬요' 하면서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날 밤은 아마 내 생애 손꼽을 만큼 행복한 얼굴로 잠에 들지 않았을까.
룸메이트가 오다.
박 연구원을 알게되어 진짜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일단 누군가 물어볼 사람이 있어 좋았고, 필요하면 장 보러 가자며 차로 데려다 주니 기동력이 생겨 더 좋았다. 그즈음 출국 모임에서 만나 함께 지내기로 했던 룸메이트가 Texas에서 차를 끌고 Troy로 오고 있었다. 이 친구는 당시 Texas Austin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기계과 석사과정으로 입학하여 와이프가 올 때까지 잠시 같이 지내기로 하였다. 어차피 나 역시 돈을 아껴야 하고 미국을 좀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꼬박 이틀을 운전하여 나타난 룸메이트를 뒤가 안보일만큼 한 차 가득 살림살이를 싣고 도착했다. 그러면서 집을 둘러보더니 "형! 필요한게 많을 것 같은데요" 한다. 그날부터 바로 인터넷을 뒤져 필요한 중고 가구를 구매하고, 부엌에 필요한 집기들도 사기 시작한다. 마침 한 한국분이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어 가진 가구를 내어놓기에 U-Haul (트럭)을 빌려 그 집의 모든 가구를 가져온다. 그러면서 방안이 하나둘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이제 제법 사람 사는 것 같군.
전..
그리고
후, 이제 뭔가 사람사는 것 같고 안정되어 보인다.
중고로 산 가구들, 의자는 샀는데 책상은 아직 없다.
곧 어디서 책상도 구해와 이제 뭔가 사람사는 것 같다.
미국 생활을 해본 룸메이트가 생기자 살림도 하나둘 늘어나고 이것저것 조언을 많이 해준다. 나는 그냥 따라다니며 필요한 것들을 사다보니 어느새 제법 사람이 살만한 집을 꾸밀 수 있었고, 그때 즈음부터 학교에서도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된다. 학교 오리엔테이션은 많이들 별 신경을 안 쓰는 분들도 많을 테지만 외국생활이 전무할 경우는 시간을 쓰실 것을 추천드린다. 아울러 박사과정의 경우 Teaching Assistantship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즈음에 스피킹 시험을 치게 된다. RPI 경영학과의 경우는 TA를 제공하지 않는데 일괄적으로 스피킹 시험을 치게 했고, 점수를 받아 들자 또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이게 내 영어실력이구나. 그 창피한 점수로 인해서 첫 일 년 동안 영어수업을 들어야 했다. RPI는 학교가 크지 않아 외부에 제공하는 ELS 프로그램이 없고 TA를 지원하기 위한 수업을 몇 개 개설하여 제공하였는데, 결론적으로는 이때 들었던 수업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제 기다리던 첫 "영어"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뭔가 적응된 내 모습
박사과정 라운지에서 바라본 전경
나 같은 경우는 워낙 배경지식이 없어 하나하나 해나가는데 급급해 제대로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에서 돌이켜 보건데 이 기간에 중요한 것이 Primary care를 받을 수 있는 Family Doctor를 선정하면 좋다. 한국은 이 Family Doctor 제도가 익숙지 않은데 미국의 경우는 Family Doctor를 두면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된다 (물론 의료보험에 따라서 부담해야 하는 Co-pay가 만만치 않긴 하다). 특히, 결혼을 해서 가족이 오는 경우와 출산을 생각하고 있는 경우라면 이 부분을 알아두면 여러모로 많이 도움이 된다. 동네에 따라서 Family Doctor가 새로운 환자를 받지 않은 경우도 많고, 아주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 Urgent care나 Emergency room를 이용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둘 중에 차이는 Urgent care는 즉시 목숨에 영향이 없는 경우, Emergency room의 경우는 목숨에 영향이 갈 정도로 구분하면 편하리라 생각한다. 본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서 한국에서 미리 검진을 받아 오면 좋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오자마자 병원을 알아보고 예약을 미리 해놓는 편이 좋다. 이것도 학교마다 다르지만, 학교에서 의료보험을 들게 하는데 보통 학생들이 드는 의료보험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 나의 경우는 큰 문제는 없었다.
이제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 다음 편에서는 긴장감 팍! 들어간 첫 수업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다.
출처: https://07701.tistory.com/114 [강박의 2 c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