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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LKIVE Apr 11. 2020

#B7. 책거리

후문 상가 2편


나는 피아노를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배웠던 것 같다. 후문 상가 피아노 학원에선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배웠는데 그 이후에 배운 피아노보다는 훨씬 재밌게 배웠던 것 같다. 체르니 40번까지 마쳤던 학원인만큼 나에게 애착이 큰 곳이었다. 후문 상가에만 피아노 학원이 3곳이 있었는데 내가 다녔던 학원이 가장 넓은 학원이었다. 그만큼 피아노 연습실도 많았고 학원생들도 많았다. 학원엔 진흥아파트에 살던 아이들은 거의 다 있었던 것 같다. 피아노 학원은 학원이라는 의미를 떠나 진흥 아파트 아이들의 광장 같은 곳이었다. 각 아이들의 집안 소식들을 알게 되는 소식의 장이기도 했다.

물론 항상 피아노 학원에서 모든 아이들이 다 같이 모이는 상황은 자주 없었다. 서로 학원에 오는 시간대가 자주 엇갈렸기에 다 같이 모이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유일하게 모든 학원생들이 모이는 때가 있었는데 바로 책거리 시간이었다. 지금도 책거리 개념이 있으려나 싶은데 내가 어렸을 때 학원에서는 진도 별 책 한 권을 모두 배우게 되면 축하의 의미로 해당 아이의 부모님이 간식을 학원에 돌리곤 했다. 보통 책거리 간식으로는 초코파이와 요구르트가 주 였고 그 외에 떡이나 식혜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들을 보내 학원생들 모두 모여 나눠 먹고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유일하게 그 때 모든 아이들이 모이는 데 책 한 권을 마쳤다는 의미로 주인공 친구에게 축하를 보내기도 하고 일찍 책을 마친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책 한 권을 마치고 나도 얼른 책거리의 주인공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을 다잡기도 했었던 것 같다. 생일 이외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 친구들의 축하를 받거나 부러움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어렸던 나는 얼른 책거리를 하고 싶어 했다. 조촐한 시간이었지만 학원생 아이들에게는 소소한 동네잔치의 의미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책 한 권 뗐을 뿐인데 누군가로부터 축하를 받는다는 게 얼마나 귀여운 일인가. 어른이 된 지금은 어떤 어려움 하나 극복을 해도 칭찬과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이 아닌 평범한 일상 속 퀘스트 하나 마쳤을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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