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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LKIVE Apr 27. 2020

#A9. 떠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마지막편>

그동안 고마웠어 우리집

떠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너무 당연하고 익숙해서 잊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든 끝은 정해져 있다는 것. 지금 우리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


태어나서 지금까지 30년을 살아온 내 고향. 안양1동 진흥아파트. 너무 당연했던 우리집, 우리 동네가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한 켠이 저릿하다. 내 기억 속 스쳐 지나간 모든 것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라서 더 그렇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추억, 우리 가족의 역사, 30년 동안 이 곳에서 만나고 헤어진 친구, 이웃들 너무 많은 기억이 쌓여있다. 이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주고 지켜봐 온 한 세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파트는 콘크리트 건물, 부동산으로 불리지만 나에게는 ‘우리집’이다. 가끔 세상이 싫어지고 나 자신이 미워질 때, 그저 아파트 단지를 따라서 걷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졌다. 걷다가 놀이터를 보면 해맑게 뛰어다니던 초등학생의 내가 거기에 있다. 그때 그 친구들은 뭐하나? 떠올린다. 늦은 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며 무거운 시기를 보냈던 나도 보이고, 그 시간을 지나 보내고 성장한 나도 있다. 여기에 쌓여있는 기억들 덕분에 우리집, 이 공간이 너무 소중하고 애틋하다.


30년 넘게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인생의 중요한 한 페이지에 함께 했을 진흥아파트. 아파트는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다. 내 고향, 내가 살던 곳, 우리집, 우리 동네이다. 재건축이 가까워오면서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 보면서, 음악 들으면서 빠르게만 걸었던 아파트 단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걷는다. 혹시 지금의 모습을 잊을까봐 카메라를 연신 눌러댄다. 가다 서서 한참을 지켜본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나무도 한 번 만져보고, 그네에 앉아 보고,  복도도 서성거린다. 여기에 내가 살았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이제 이곳을 온기로 채웠던 사람들은 떠나지만, 새로 지어질 아파트는 누군가에게 다시 고향이 되어 줄것이다. 빠르게 지나간 세월 탓을 해본다.


내가 이곳에 살았던 그 순간순간에 자주 봐 두고, 기록해 놓을 걸. 그러면 더 오래, 더 선명하게 우리 동네를 기억할 수 있었을 텐데...... 영원히 우리집일 줄 알고 너무 대수롭지 않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떠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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