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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미준 Jul 29. 2024

마라탕 좋아하세요? (2편)

저는 그닥이지만, 좋아하는 딸과 자주 먹은 결과를 나누려 합니다.

딸이 물어봅니다. 


"아빠도 마라탕 좋아하세요?"


뭐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응 아빠도 좋아해"라고 했죠.. 그리고 먹고 싶으면 언제라도 아빠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 동안 꽤 다양한 마라탕집을 같이 다녔습니다. 자기 용돈으로 사 먹긴 살짝 부담스러운 마라샹궈도 같이 먹고요. 마라탕집에서 파는 모든 메뉴를 다 시켜서 먹기도 했었죠. 


그러다가 자기 학교친구들도 몇 번 만났습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너네 아빠도 마라탕 좋아해? 우리 아빤 아닌데?'라고 말하더군요. 저희 아이의 눈빛도 '너네는 아빠랑 못 오지? 마라탕 아빠랑 먹을 있다'였습니다. 


회사에서 젊은 여성인재(저희 회사에서는 여직원이라고 안 합니다)들에게 딸이랑 마라탕집을 다니고 있으며, 이제 나만의 조합을 완성했다고 말하니 직원들이 놀라며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더라고요. 

딸이랑 마라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축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끔씩 메신저로 자기가 마라탕 먹으러 갈 때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하네요. 


뭔가 마음을 얻는다는 것.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이 예전에 비해 쉽진 않은 시대인 거 같습니다. 

직장 선배들에게 사춘기 딸과 아들이 있고, 그들과 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다 그렇다고..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자기 방에 들어가서 안 나온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듣곤 했습니다. 


그런데 마라탕, 이거 별거 아닌데 그냥 몇 번 사 줬다고, 요즘은 딸이랑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춘기가 오기 전, 초등학생 때의 딸은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았습니다. 같이 차에 타고 가고 있노라면 저는 '응', '그랬구나',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만 계속 반복하는 상황이었고, 너무 피곤하다.. 쟤는 누구를 닮아서 저리 말이 많냐.. 등의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춘기가 되어서는 제가 무엇을 물어봐도 '네', '아니요'만 반복하는 딸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 기분 안 맞으면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상황도 겪었고요. 


뭐.. 사춘기가 끝나가는 중3시점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주변 여성인재분들이 이 나이에도 한 방은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하긴 했었습니다만..) 마라탕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대화하는 시간이 싫지는 않네요. 뭔가 와이프 하고 못하는 데이트를 하는 느낌도 나고요. 딸 키우는 재미는 '자기 이야기를 공유하려는 딸의 모습을 보는 거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언제 이렇게 해 보겠습니까.. 고등학생되면 바빠질 거고, 남자친구라도 생기면 배 나온 아빠는 뒷전일 텐데 말입니다. 


마라탕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1단계라도 도전해서, 마라탕 좋아하는 분과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한번 나눠보심은 어떠신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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