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불혹(不惑) - 어떤 상황에도 미혹되지 않고 정확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 논어 위정 편
40세를 지칭하는 불혹(不惑)을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웠습니다.
한국나이로 18세였죠. 그때는 제가 40이 된다는 생각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40이 훌쩍 넘은 지금, 40대 이전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물론 저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게는 대단히 실례가 되는 것이지만 이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량과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고, 기억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회사에서 나도 언제라도 잘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과거대비 늘고 있다.
회사에서 부하직원들이 쓰는 단축어 중에 이해 안 되는 것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화장품, 향수, 옷에 투자하는 비용이 늘었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버럭하는 횟수가 줄었고, 와이프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을 때도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는 횟수가 늘었다. (참고 좋게 표현하는 것이 지름길임을 깨달았다)
뭐, 찾다 보면 더 있겠죠.
그런데, 저런 외적 변화보다, 40이 넘고 나서는 내면에서 계속 이 질문이 올라오는 차이가 있습니다.
40이 넘었다는 것은, 지나간 삶이 40년이 넘었다는 겁니다.
지나간 40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40년간의 여러 가지 들이 뭉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고요.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앞의 삶은 더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40을 넘어서는 확실히 강렬해지는 것 같습니다.
자문자답을 꽤 오랜 기간동안 해 봤는데요.
지금 누가 저 질문을 제게 한다면
'최대한 필요한 답을 주는 사람이 되자'로 답을 하고 싶습니다. '구루'나 '현자', '현인' 같은 거죠.
100세 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공자님이 40에 불혹(不惑)을 말씀하시고, 50이 되면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신 걸 제 나름대로 적용해 보면, 앞으로 50이 될 때까지 어떤 삶을 살지 잘 생각해 보고, 인생의 나머지 1/2을 그것을 위해 열심히 살라고 말씀하신 거 같네요.
최근에 큰 별 최태성 선생님이 쓴 「다시, 역사의 쓸모」라는 책을 읽었는데,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님은 생전에 다른 사람들이 '페치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페치카는 러시아식 난로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이 가는 별명이라 생각이 됩니다.
계속 되뇌어 보고 더 좋은 비전이 생기면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