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것을 그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찌 보면 내 말이 맞다는 생각조차 안 할지 모른다.
대학생 때까지 난 남들과 다르면 스스로 압박을 받았다. 그러던 중 복수 전공으로 문예창작학과를 선택하며 그 생각이 부서졌다. 신문방송학과에서 글을 전공하던 나는 문학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무턱대고 문예창작학과를 복수 전공했다. 단, 한 명도 복수전공자 졸업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방송 작가가 꿈이었던 후배와 함께 덜컥 복수 전공을 신청했다. 2학년인 상태로 문창과 1학년 학생들과 수업을 들었다. 난 상당히 위축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에는 내 기준으로 특이한 사람들이 한가득하였다. 줄담배를 피우며 매일 시를 쓰고 있는 프랑스의 시인 랭보가 생각날 듯한 3학년 선배, 그 당시에는 처음 보는 히메컷을 하고 신춘 문예 희곡 부문 최종 결선에서 아쉽게 떨어진 1학년 후배, 딱 봐도 책을 문학책 500권은 읽었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한 트럭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더욱 그들이 말하는 것과 선생님(문창과에서는 교수님을 선생님이라 부른다)들이 말씀하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의 확정을 절제시켰다.
그러던 중 남들과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계기가 있었다. 전공 수업 중에는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원작 소설 작가인 이만교 선생님이 수업을 맡은 소설론 시간이 있었다. 해당 강의는 특이했다. 매주 선생님이 미리 전달 준 단편 소설이나 텍스트 등을 읽고 함께 받은 질문지를 작성해 선생님 메일로 제출했다.
이어 본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이 제출한 질문지를 기반으로 선생님이 그 질문지에 직접 빙의해 학생의 입장에서 질문지들을 선생님이 소개했다. 그리곤 일반적 글의 해석도 함께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학생, 선생님, 일반적인 해석 등을 모두 자유롭게 공유하며 생각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수업이었다. 그런데 당시 나는 남들과 다른 답변을 작성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책을 이렇게나 많이 읽은 친구들이 하는 답변이 나보다 월등하게 좋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문창과에 타 학과 복수 전공자가 딱 2명이다 보니 항상 선생님은 “아~ 오늘은 신방과 훈기가 뭐라고 썼을까?” 하며 꼭 수업 시간마다 내 질문을 펼치셨다. 매번 스스로 창피했다.
그렇게 학기를 보내며 수업에도 익숙해질 무렵 일이 발생했다. 그날 읽은 소설은 에이빈트 욘손의 ‘보트 속의 남자’이다. 기억을 더듬어 스토리를 떠올려보자면 어린 형제 둘이 보트를 타고 호수로 나갔는데, 형이 물에 빠져 죽게 돼 이를 통해 성숙해지는 무언가에 충격으로 성장하는 그런 스토리이다.
그 날따라 선생님이 내 질문지를 보지 않아 너무 안심이라고 느꼈다. 이유는 난 전혀 저렇게 이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주인공 형제가 아닌 주인공 남자 1명이고, 2명처럼 묘사되는 것은 주인공이 미성숙한 상태로 자신을 이중인격으로 나누어서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기준에서 호수에서 물에 빠질 위험을 겪으면서 하나의 자아가 사라지고 온전한 자아 하나만 남으면서 성장한다고 소설을 읽었다.
수업이 중반부에 다다랐을 때 선생님은 내 질문지를 꺼냈다. 앞 사람들이 대부분 형제의 스토리라고 썼기에 나는 더욱 창피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이중인격이라고? 흠 생각 좀 해보자”
선생님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학생들이 쓴 답변에 스스로가 빙의해 대변하여 설명해 주시곤 한다. 그에게도 이중인격이라는 해석은 처음이었나보다.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았다.
“아주 흥미로운데? 내가 훈기의 생각을 해석해 볼게”라고 운을 띄우시더니 다중인격이라는 주제로 소설을 다들 한번 생각해 보라고 권하시기까지 했다. 그러곤 한참을 다중인격 중심으로 소설을 해석하고 학생들과 토론을 이어갔다.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객관식의 답과 정해진 것들을 외우며 살아온 나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심지어 수업이 끝나고는 친한 수업 듣는 문창과 후배들이 신기하다는 눈동자로 어찌 이리 해석했냐고 물어보러 올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난 소설을 똑바로 안 읽고 졸면서 대충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텍스트를 아직도 갖고 있어 다시 읽어봤는데, 다중인격이 아닌 것 같다. 그 당시 난 뭘 생각한 걸까.
그날 이후로 난 내 생각의 확장성을 즐기고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주눅이 들지 않고 소설과 시, 희곡 등의 졸업 작품집까지 발간하면서 모교에서 처음으로 문예 창작 복수전공 졸업자가 됐다. 아무튼 남들과 다른 의견일 수 있고 당장은 틀릴 수 있지만, 내 의견이 다른 뿐 잘못된 것이 아닌 것은 확실히 알았다.
그래서 지금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조금은 다를 수 있는 의견을 내고자 노력한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을 다른 의견으로 환기 시키는 것도 좋은 의견 도출에 열쇠가 된다.
평소 남들과 똑같은 생각만 하고 있거나 다른 생각을 갖고 싶어도 쉽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꼭 떠올려보자. 지금 가진 생각의 다른 의견을 스스로 만들어 의견을 확장시켜보자. 사고 확장에 도움이 분명 된다. 또는 모두가 yes라고 말하고 있을 때 과감하게 no라고 말하며 모두의 의견을 활성화해 보자.
그렇게 한다면 결국엔 당신의 의견은 다른 뿐 틀린 의견은 아니라는 점이 확실해진다.